술은 참 요물이다. 대개 어떤 일을 못 하는 사람은 조롱받아도 잘하는 사람은 칭찬받게 마련인데, 술은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묘하게 조롱받는다. 술에 환장한 사람들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마시는 탓에 술고래라고 불린다. 커다란 입으로 먹이를 빨아들이는 고래처럼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다. 술을 아예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나마 좀 나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악이라고 해봐야 분위기 띄울 줄 모르는 샌님 정도로 여겨졌을 뿐이다. 재미는 없지만 그래도 제법 점잖은 사람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알쓰(알코올을 마시지 못하는 쓰레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말았다!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쓰레기가 돼버린 것이다.
사실 ‘알쓰’는 웃음을 앞세워 사람을 은근히 까 내리는 표현이다.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는 ‘맘충’이나 알지도 못하면서 특정 성별을 싸잡아 비난하는 ‘김치녀’, ‘된장녀’, ‘개저씨’ 같은 표현들과 다를 바가 없다. 이유도 모르는 채 벌레나 썩은 내 나는 음식이 되어 눈치받지 않으려고 나름 애쓰며 살아왔다. 이런 말들에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드는데 웬일인지 알쓰라는 말을 들으면 피식 웃음이 난다. 먼저 나를 딱 알맞게 표현한 말 같아서 마음에 든다. 술잔을 받아들고 “죄송해요, 제가 원래 술을 잘 못 마셔요.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엄청나게 빨개져요.”라며 구구절절 사과할 필요가 없어져서 좋은 건지도 모른다. 이제 “저 알쓰예요.”라고 한 마디만 던지면 듣는 사람도 재미있어하며 슬쩍 웃는다. 거기에다가, 신조어가 생겨날 만큼 술 못 마시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괜히 반가웠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집안 내력이었다. 정말로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대개는 술이 한 잔만 들어가도 얼굴이 불콰해졌다. 그러니, 딱히 내가 술을 잘 마실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대학 시절의 술자리는 늘 딜레마였다. 억지로 술을 먹이는 사람은 없었다. 딱히 나를 대단히 존중해서는 아니었다. 주종을 막론하고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두 잔 들어가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그 꼴을 몇 번 보고 나니 ‘억지로 술 먹여서 신입생을 죽게 만든 선배’가 되지 않으려면 안 먹이는 게 상책이라고 결론을 내린 듯했다. 억지로 술을 먹이는 사람이 없는데도 술자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다 함께 정신이 말똥말똥할 때는 웃고 떠드는 시간이 좋았다. 술자리에서만 통용되는 왠지 낯간지러운 속 이야기들이 술잔 위로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표정은 좀 더 부드러워졌다. 맨정신일 때는 시답잖은 이야기만 주고받던 사람들의 대화가 빈 술병이 늘어날수록 농밀해졌다. 알코올이 비밀 창고의 문을 여는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던 고민을 술의 힘을 빌려 끄집어내는 사람도 있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내 마음은 술집 밖으로 자꾸만 튕겨 나갔다. 술상 앞에 앉은 사람들은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대나무숲에서 임금님의 비밀을 털어내는 두건장이처럼 사람들은 서로를 대나무 삼아 숨겨둔 이야기를 슬쩍 끄집어냈다. 술고래들은 술이 들어간 양만큼 마음속에서 부유하는 이야기를 뱉어내는 것 같았다. 들어간 술의 양과 뱉어내는 이야기의 양이 같아야 몸과 마음의 균형이 잡혀서일까?
취기가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져 심연의 입구에 다다를 때쯤이 되면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조용히 일어섰다. 다들 입 밖으로 뱉어낸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사라지기를 바랐을 거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속에 아로새겨졌다. 대나무 숲을 영원히 떠돌며 비밀을 발설하는 메아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엄연히 초대받은 자리였지만 술이 사람들을 먹어 치우는 순간이 되면 왠지 불청객이 된 것만 같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꼬인 혀로 맨 밑바닥에 오래 가라앉아 있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힐끔 쳐다보면 술 안 먹을 사람은 그만 일어서라는 무언의 압박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술에도 조합이 있다. 술 좀 하는 사람들은 얼큰한 국물을 보면 자연스레 소주를 떠올리고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을 보면 맥주를 생각한다. 뭔가 쿵짝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있긴 하다. 알쓰인 내게 갓 튀겨진 뜨거운 치킨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짝꿍은 시원한 콜라였다. 뭔가 모르게 청량감이 떨어지는 펩시콜라나 미묘하게 밍밍한 제로 콜라는 별로였다. 치킨과 같이 먹기에는 냉장고에 충분히 오랫동안 넣어둔 코카콜라가 제격이었다. 대학에서도, 직장에서도, 술이 풍기는 기이한 이질감에 질려 마음 편히 술과 친해져 볼 생각 같은 건 못 했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주량을 늘리기 위해 굳이 애써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딱 한 번 남들은 다 잘 마시는데 혼자만 못 마시는 게 억울해서 집에서 소주를 마셔본 적은 있다. 얼굴이 빨개지긴 하지만, 그다음에는 무서울 정도로 핏기가 사라지긴 하지만, 어쩌면 엄청난 알코올 분해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니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취해 본 경험이 없어서 내게 어떤 주사가 있는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혹시 엉뚱한 짓을 하더라도 민망하지 않도록 아무도 몰래 혼자 사는 집에서 조용히 소주병을 땄다. 조금씩 잔에 따라서 소주 한 병 반을 꼴깍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가 통째로 날아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캐나다에서 얼떨결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후 맥주와의 낯선 동거가 시작됐다. 냉장고에는 언제나 처음 보는 맥주가 그득했다. 캐나다의 주류 전문매장에서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맥주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은 틈나는 대로 냉장고에 온갖 맥주를 채워 넣었다. 처음부터 맥주에 손이 갔던 건 아니다. 팔자에도 없는 유학생이 돼 매일 공부를 하려니 머리도 아프고 몸도 힘들었다. 책가방에 온갖 교재와 노트북을 챙겨 넣고 온종일 학교를 누비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몸이 노곤했다. 밤이 늦도록 동동거리며 아이들을 챙기고 나면 온라인으로 쪽지 시험을 치러야 했다. 쪽지 시험 결과가 그대로 성적의 일부가 되니 대충 칠 수도 없었다. 늦은 밤 홀로 식탁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하다 보면 늘 배가 고팠다. 그럴 땐 이상하게도 건강에 좋은 음식에는 전혀 손이 가지 않았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짜증이라도 낼 텐데 자존심 때문에 책을 붙들고 있으려니 딱히 탓할 사람도 없었다.
그럴 때 바닥에 탁 주저앉고 싶은 내 마음을 토닥여준 것이 라면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요한 집에 매콤한 라면 냄새가 퍼지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몰래 먹는 라면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알 거다. 아이들이 자다가 라면 냄새를 맡고 홀린 듯 내려오지는 않는지 이 층을 살피며 몰래 라면을 먹다 보면 골치 아픈 생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펄펄 끓는 라면이 담긴 작은 냄비를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놓고 후루룩 라면을 한 그릇 먹고 나면 속은 뜨끈했지만 입은 매웠다. 알쓰일 뿐 아니라 ‘맵찔(매운 음식을 못 먹는 찌질한 사람)’이기도 해서 라면을 먹고 나면 불이 난 듯 입 안이 화끈거렸다. 부리나케 냉장고로 달려가 무엇이든 시원한 걸 꺼내 마셨다.
콜라가 없었던 밤이었을까? 라면을 먹고 냉장고를 여니 처음 보는 맥주캔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더 불량스러워지고 싶었던 밤이었다. 손을 뻗어 시원하게 캔을 따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매콤한 열기를 걷어냈다. 바로 이 맛이었다! 수없이 들었던 상쾌하고 청량한 맥주의 맛!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차가운 오타와, 한없이 투명한 밤공기를 매콤하게 물들이는 한국 라면, 그리고 유럽 맥주. 이 엉뚱한 조합이 한없이 불량해지고 싶은 내게 묘한 위로가 됐다. 그날부터 늦은 밤 주방의 전등만 밝혀놓고 혼자 공부하다가 괜히 냉장고를 뒤적여 맥주를 마시는 날이 늘어났다. 한 모금은 두 모금이 됐고, 두 모금은 세 모금이 됐지만, 주량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완전한 알쓰에서 반 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실력이 됐으니 늘긴 했지만, 웬만한 사람들의 주량과 비교하면 늘었다는 말이 무색하다. 그래도, 술이 참 요물이긴 하다. 단 한 모금일지라도 ‘제대로’ 즐기는 사람에게는 온전한 기쁨을 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