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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30. 2024

몸은 기억한다

생 라자르 기차역(La Gare Saint-Lazare),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설렘과 걱정그 사이 어디쯤

기차표를 끊어놓고 밤새 뒤척였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려니 미리 생각해둬야 할 게 많았다. 여행이 한참 남았을 때는 그저 설레기만 했는데, 떠날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지막으로 기차를 탄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남편은 출장을 다닐 때마다 KTX니, SRT니 하는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 서울, 세종, 어디든 쉽게 오갔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기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떠날 일이 없었다. 장거리 이동은 늘 아이들과 함께이다 보니 커다란 SUV를 타고 다니는 게 제일 마음 편했다. 직접 운전을 하면 몸이 피곤하고 이동 시간도 길다. 그래도 필요한 짐을 대충 욱여넣고 마음 내킬 때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려면 그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낯선 것투성이인 여정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광명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까지 이동한 다음 청도행 무궁화호를 갈아타는 여정이었다.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다. 광명역은 차를 타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아봤을 뿐이고, 동대구역은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다. 최종 목적지인 청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청도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들른 게 전부였다. ‘KTX 205’라는 열차 번호만 보고 제대로 플랫폼을 찾아갈 수 있을지, 동대구에 무사히 내릴 수 있을지, 청도행 무궁화호에 잘 올라탈 수 있을지 오만가지 걱정이 머리에 가득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했던 일도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으니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고마워. 잘 다녀올게!” 역까지 태워준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들며 애써 씩씩한 척했다. 제법 이른 시간이었지만 역전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목적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미 늦은 듯 다급하게 역을 빠져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인파를 뚫고 역으로 들어가니 한결 마음이 느긋해졌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역 한가운데 서서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천장 한가운데 매달린 전광판에는 어디로 가야 동대구행 기차를 탈 수 있는지 적혀 있었다. 집에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만 했을 때는 도대체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막상 기차역에 도착하니 머리가 답을 내놓기 전에 몸이 저절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4번 플랫폼

4번 플랫폼은 한산했다. 기차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바로 옆 플랫폼에서 부산행 열차가 출발할 때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쉿’하는 조용한 쇳소리를 내며 들어온 열차가 조용히 기다리던 사람들을 싣고 떠나자 플랫폼은 다시 텅 비었다. 기차가 올 때까지 이어폰을 끼고 노래라도 들을까 하다 관뒀다. 혹시 중요한 안내 방송을 놓치는 참사를 겪고 싶진 않았다. 하릴없이 주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마흔쯤 돼 보이는 남자에게 눈이 간 건 빼어나게 잘생겼다거나 눈길을 끌만큼 특이한 차림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남자의 몸은 리듬감 있게 들썩였다. 딱히 할 일도 없던 차에 남자를 관찰했다. 검은색 백팩을 둘러멘 남자는 두 손을 맞잡은 채 오른쪽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가 부드럽게 휘두르는 동작을 반복했다. 리듬감 있는 손놀림에 맞춰 남자의 두 다리도 슬쩍 오른쪽을 향했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팔과 다리는 많이 본 듯한 궤도로 움직였다. 골프 스윙이었다. 남자는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프로는 아니었다. 익숙하고 부드럽지만 덜 다듬어진 동작인 걸로 봐서 남자는 취미로 골프를 즐기는 사람인 듯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몸은 그가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 많은 힌트를 남겼다. 어쩌면 우리 몸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내 몸은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생각에 잠기려는 찰나, 갓 뽑아낸 아메리카노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손에 든 여자가 옆으로 다가오자 오래전 기차에서 마셨던 커피가 입안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일 년에 몇 번씩 기차를 탔던 대학 시절에는 늘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KTX가 생기기 전, 새마을호를 타고 부산에 갈 때면 혼자 기차에 앉아 4시간 30분을 보내야 했다. 그 시절의 휴대전화는 간신히 전화와 문자 기능만 있는 조악한 기계였다. 기차에서 몇 시간을 보내려면 뭐가 됐든 단단히 준비해야만 했다. 듣고 싶은 노래를 미리 MP3에 넣고 읽을 책도 챙겼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얼마간 시간을 보내면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간식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천 원짜리 지폐를 두어 장 내밀면 승무원은 커피포트에서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담아 건넸다. 그때의 커피는 그저 뜨겁기만 한, 별다른 향은 없는 커피였다. 그래도 왠지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들고 있으면 객차 내의 무겁고 텁텁한 공기가 조금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몸은 곧 삶

동대구행 KTX가 플랫폼에 멈춰 섰다.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타야 할 열차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계단 높이만큼 자연스럽게 다리가 올라갔다. 안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객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내 손은 이미 개폐장치를 여는 법을 기억해냈다. 길쭉한 개폐장치를 옆으로 젖히자 커다란 찜솥에서 날 법한 ‘치잇’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오랜만에 탄 기차였지만 따지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내 몸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답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일정하게 진동하는 KTX에 내 몸을 맡긴 채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나의 정신일까? 아니면, 빛이 바랜 채 어딘가로 흩어져버려 쉬이 생각나지 않는 지난 순간을 본능적으로 기억해내는 나의 몸일까? 인간의 존재 이유는 아무래도 몸보다는 정신에 있다는 게 나의 오랜 믿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낯선 플랫폼에서 나를 도운 건 몸이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날카롭게 벼리고 다듬은 정신은 나를 돕지 못했다. 내가 스쳐온 시간을 차곡차곡 저장해둔 몸은 생각이 파고들 새도 없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기억해냈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실내 공기, 객차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객차가 조용할 때 유난히 크게 울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정차할 역이 가까워질수록 느려지는 속도. 머릿속에서는 재생되지 않았던 모든 장면을 몸은 당연하게 기억해냈다. 내가 살아내는 매 순간은 있는 그대로 몸에 각인된다. 그렇기에, 언젠가 내 몸이 기억해낼 오늘 하루를 더욱 나답게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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