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서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아라의 소설>은 정세랑 작가가 오랫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짤막한 소설을 모은 엽편 소설집이다. 스무 편이 넘는 미니 픽션을 책 한 권에 담아낸 <아라의 소설>은 정세랑 작가의 전작 <피프티 피플>과 묘하게 닮았다.
그러나, <피프티 피플>은 51명에 달하는 주인공을 앞세워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 나가는 반면, <아라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닮은 점이 있지만 명확한 접점은 없다. 시큰둥하게 책장을 넘긴 이야기도 있었고, 흠뻑 빠져든 이야기도 있었다.
책에 담긴 여러 편의 글 중 나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건 마지막 글 ‘현정’이었다. 내용을 읽기도 전부터 난 이미 빠져들 준비가 돼 있었다.
흔하디흔한 이름 ‘현정’.
인상적인 이미지도, 특별한 흔적도 남지 않는 무색무취의 이름.
현정.
첫 줄을 읽기도 전부터 완벽하게 글 속에 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탓인지,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글 속에서 현정은 서점에 갔다가 지진 때문에 책더미에 갇히고 만다. 무너진 잔해들이 만들어낸 좁은 공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현정은 생각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책이나 실컷 읽자.’라고.
현정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주위의 책을 한 권씩 읽어나간다.
뜯기고 찢겨 나간 낱장까지 소중하게 주워들고 글을 읽던 현정은 <왕좌의 게임>을 쓴 작가 조지 R. R. 마틴의 말을 떠올린다.
"독서가는 죽기 전에 천 번의 삶을 산다."
독서가가 죽기 전에 천 번의 삶을 사는 것이 맞다면,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의 삶을 산 걸까? 내가 읽을 책을 이리 쌓아두고 사는 건 살고 싶은 만큼 제대로 살지 못해서일까.
무언가를 사 모으는 데 큰 취미는 없었다. 딱히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겠다는 삶의 원칙 같은 것도 없지만 정해놓고 특정한 무언가를 열심히 모으는 일 같은 건 없었다. 어쩌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별생각 없이 소비하는 특색 없는 인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기념 우표나 신발, 음반같이 딱 하나를 정해놓고 공들여 사 모으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확고한 취향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게도 감춰진 욕망이 있었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내가 사 모으고 싶었던 건, 지금도 끝없이 수집하고 싶은 건. 어쩌면 수집품으로서의 덕목이 최하에 가까운 그런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무겁고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환금성도 거의 없는 그것.
바로 책이다.
사실 책을 살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안 읽은 책이 뻔히 있는데, 그 위에 또 다른 책을 사서 얹는 건 염치없이 욕심만 내는 일 같았다. 자꾸만 책을 사고 싶은 욕망과 그건 덧없는 욕심에 불과하다는 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의 내적 갈등에 종지부를 찍어준 건 한강 작가였다.
어디에서 나온 구절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다만, 한강 작가가 자신의 서재를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많은 서재”라고 묘사했던 기억만큼은 틀림없다. 한강 작가의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마저도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을 더 많이 쌓아두고 사는데, 나 같은 사람이 읽을 책을 쌓아두고 사는 건 당연한 일이구나. 어쩌면 진작에 그랬어야 하는지도 몰라.’
얼토당토않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기적의 논리 같은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많은’ 수준을 넘어서서 ‘새로 책을 사도 꽂을 곳이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지만, 보고 싶은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책꽂이를 보면 그냥 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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