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한테 아동용 책가방이 웬 말
미국에서 12학년(한국으로 치면 고3)을 찾아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푸석푸석한 피부에 눈 아래까지 깊이 드리운 다크서클?
밤새워 공부하느라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반항적인 눈빛?
모두 틀렸다.
힌트는 뒷모습에 있다. 미국 고등학교 앞에 서서 가방을 유심히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누가 졸업반인지, 누가 곧 성인이 될 사람인지.
그들이 택한 ‘졸업반의 표식’은 다름 아닌 가방이다. ‘나는 졸업을 앞둔 학생’임을 모두에게 공표하는 역할을 하는 ‘졸업반을 위한 특별 가방’이 어떤 모양일지 상상이 가는가? 가방에 ‘senior year(가장 높은 학년)’라는 글씨를 새겨넣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1~2학년에 비해 유달리 어른스러운 디자인일까?
놀랍게도, 정반대다.
12학년은 머지않아 성인이 될 청소년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높은 학년’임을 증명하기 위해 선택하는 가방은 ‘어른스러움’과는 가장 거리가 먼 ‘아동용 가방’이다. 스파이더맨, 페파 피그, 디즈니 공주, 바비가 웃고 있는 유치한 가방이 졸업반의 상징이다.
실제로 미국 최대 쇼핑 사이트 아마존(Amazon)에서 ‘senior backpack(12학년용 책가방)’ 혹은 ‘senior year backpack(졸업반용 책가방)’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아래와 같은 이미지가 주르륵 올라온다. '제대로 검색을 한 걸까?'라는 의구심이 든다면 실구매자가 올려놓은 리뷰를 찬찬히 읽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구매자가 ‘고등학교 졸업반인 우리 아이가 이 가방을 구매했어요.’라는 내용이 담긴 리뷰를 적어두었다.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이 유행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senior backpack trend(졸업반 책가방 유행)'라고 불리는 이 흥미로운 현상은 이미 미국 전역으로 번져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미국 부모들은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매김 중인 ‘아동용 책가방 메기 열풍’에 당황하고 있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부풀어 어른 흉내를 내느라 바빴다. 그랬던 자신들과는 정반대로 굳이 아동용 책가방을 집어 드는 자녀들을 보며 부모들은 그 속내를 궁금해한다.
12학년이 볼 법한 무거운 책을 견디기에 아동용 가방은 터무니없이 허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작은 가방 속에 담긴 건 책만이 아니다. 그들의 등에 붙어 있는 가방의 지퍼를 조심스레 열면 이런 마음들이 하나둘 튀어나올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불안함
걱정 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조금은 철이 없어도 용인되는 미성년의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누리겠다는 결의
무거운 입시와 대학의 문턱 앞에서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고 싶은 장난기.
결국, 아동용 책가방은 ‘나는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라는 그들의 조용한 고백 같기도 하다.
아동용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12학년은 키덜트(kidult)의 청소년 버전이다. 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어른을 뜻하는 ‘adult’가 더해져서 생겨난 단어, ‘키덜트’는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영화나 장난감 등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성인을 뜻한다. 아동과 성인의 갈림길에 서 있든, 이미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하나만 있어도 인생이 한없이 행복했던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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