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식 불심검문, carding
캐나다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나라다. 미국, 중국, 일본의 뒤를 이어 한국인이 네 번째로 많이 이주하는 나라이니 그저 좋아만 하는 나라라기보다 이상향으로 여기는 나라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사실, 캐나다는 한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캐나다로 떠나고 싶은 전 세계인의 열망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세계에서 이민자를 여덟 번째로 많이 받은 나라가 바로 캐나다다.
캐나다의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열광케 하는 걸까?
내가 상상했던 캐나다는 이랬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하늘.
한없이 투명한 공기.
널따란 대지 위에 끝없이 늘어선 지평선.
잔잔한 호수에서 평화롭게 헤엄치는 사람들.
걱정 없이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다양한 인종이 함께 만들어낸 다채롭고 풍요로운 공동체.
낯선 사람에게도 웃어주는 친절한 사람들.
캐나다는 정말 그런 나라였다. 내가 꿈꾸었던 하늘과 땅, 물과 바람, 사람이 모두 한 치의 과장도 없이 그곳에 있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캐나다가 정말이지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 같은 나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광활하고 풍요로운 땅 위에 자리했을 뿐 아니라 탄탄한 시장 경제와 견고한 사회복지제도가 공존하고, 인종차별적인 언행은 허락되지 않는 이상적인 나라. 그곳이 캐나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속사정이 있듯 모든 나라에도 저마다의 속사정이 있다.
‘카딩’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카드(card)’라는 단어에 ‘현재 진행’의 의미가 있는 ‘~ing’를 붙인 영어 단어 ‘카딩(carding)’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신용카드를 훔쳐 불법으로 사용하는 방식의 사기’라는 뜻이 가장 많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드물기는 하지만 ‘양모나 섬유를 가지런히 하는 과정’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려는 건 그냥 ‘carding’이라는 단어만 입력해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이야기. ‘카드’와는 상관이 있지만 ‘신용카드’나 ‘양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카딩’ 이야기다.
캐나다 경찰은 ‘카딩’이라고 불리는 불심검문을 시행한다. 불심검문은 사회 안정을 위해 어느 나라에서나 경찰이 공권력을 정당하게 집행하는 행위다. ‘stop and frisk(정지 및 신체 수색)’, ‘stop-and-identify(정지 및 신원 확인)’, ‘police stop and question(경찰의 정지 지시 및 심문)’ 등 불심검문을 묘사하는 영어 표현도 다양하다.
그러나 통틀어 ‘불심검문’으로 번역하기에는 ‘카딩’은 조금 남다르다. 불심검문이 정당화되려면 일정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검문 대상자의 미심쩍은 행동이 바로 그 조건이다. 그러나 카딩을 시행할 때는 의심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어도 경찰관이 마음대로 길 가는 사람을 불러세울 수 있다.
카딩이라는 표현이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캐나다 동부가 카딩의 진원지라는 게 정설에 가깝다. 그렇다면, 불심검문에 왜 ‘카딩’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경찰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붙잡아서 심문한 후 관련 내용을 인덱스 카드에 일일이 기록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사회 안정이라는 대의보다 경찰관 개개인의 호불호가 검문 대상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카딩의 문제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색인종, 그중에서도 특히 흑인과 원주민에게 불심검문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흑인 언론인 겸 활동가 데스몬드 콜은 토론토에서 무려 50회 이상 카딩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동양인이나 백인들은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특정 인종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카딩을 불법으로 규정한 주가 많지만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거리 곳곳에서 미묘하게 자행되고 있다. 겉모습만 보고 환호했던 나라의 속사정을 들춰 보고 나니 괜히 마음이 아렸다. 내가 본 캐나다의 맑은 하늘과 따뜻한 미소는 분명 진짜였지만, 동시에 가려진 차별의 그림자도 존재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캐나다는 더 이상 완벽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빛과 그늘을 함께 지닌 현실의 나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사정을 아는 일은, 그 나라를 진짜로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노예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긴 하지만 캐나다는 노예제를 향한 비난에서 대체로 자유로운 나라다. 그러나 겉모습만 보면 그저 평온해만 보이는 캐나다에서도 약 200년간 노예제가 유지됐다.
캐나다의 노예들은 대개 미국이나 서인도 제도에서 건너온 흑인들이었다. 미국이나 중남미에서는 노예들이 목화, 사탕수수, 담배, 커피 등 노동집약적인 작물을 수확하는 농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캐나다의 노예들은 대개 가정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