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밥!"
"나는 치킨!"
점심으로 뭘 먹을까 얘기를 하는데 두 가지 의견이 나왔다. 의견이 열두 개도 아니고 딱 두 개뿐이니 김밥은 사오고 치킨은 시켜서 흥겹고 신나는 먹거리들로 점심상을 차리기로 했다. 쌀가루 옷을 입고 기름에 들어갔다 나온 후라이드 치킨과 거기에다 양념까지 덧입은 깐풍치킨에 간장양념 치킨, 단무지 대신 감밥집 주인장이 직접 담근 비트와 새우튀김, 돈까스를 품은 김밥까지. 간단하게 먹기로 한 점심식사는 화려한 만찬 못지않게 훌륭했다.
거기까진 좋았다.
점심을 먹고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데 딱히 꼬집어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묘하게 불쾌한 기분이 밀려왔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아침인지 밤인지 분간도 되지 않고 이 넓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운 기분이 들어 웬만해선 낮잠을 자지 않지만 머리가 무거워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지만 옅은 두통은 시작에 불과했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려고 따뜻한 차도 마셔 보고 등도 두드려봤지만 점심 시간에 뱃속으로 들어간 음식물들은 기어이 목구멍 밖으로 되돌아나왔다. 속에 있는 음식물들을 게워내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곱게 속이 비워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뭘 잘못 먹어 토악질을 하면 숙여진 등을 따라 음식물이 거꾸로 넘어갈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꼭 창자가 목구멍을 따라 입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고통스럽고 괴롭다. 몇 차례 화장실을 드나들며 속을 진정시키려고 입에 털어넣은 한약 소화제까지 도로 뱉어내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겨워하는 아이를 돌보랴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랴 정신이 없었던 남편은 꾀를 냈다. 일곱 살이 다 되어갈 무렵부터 작은 심부름이라도 시킬라치면 군소리를 하고 하루종일 놀아달라 졸라대는 아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남편이 생각해낸 것은 '마니또 게임'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젖을 먹겠다고 찾아온 둘째를 기운 없이 어르고 있는데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종이 하나를 손에 꼭 쥐고 들어왔다.
"엄마! 아빠랑 마니또 게임 하고 있어요! 내 마니또가 누군지 궁금하죠? 이거 보여줄까요?"
아들의 비밀 친구가 누구일지 정말 궁금해서 아들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경고를 했다.
"그럼 반칙이야. 마니또 게임을 할 때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상대방한테 들키면 안 돼! 들키면 지는 거야!"
아이는 아쉬운 듯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펼쳐보이려다 다시 움켜쥐었다. 잠시 후, 거실에서 놀던 아이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엄마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동생을 붙들었다.
"엄마, 내가 동생이랑 놀아줄게요. 그럼 엄마가 편하게 쉴 수 있잖아요!"
물론 오빠가 온다고 어떻게 해서든 엄마 품을 사수하겠다고 작정한 아기가 엄마 곁에서 떨어질 리는 없었지만 엄마를 조금이나마 돕겠다는 아이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아이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마니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손에 쥔 채 방을 들락날락하며 엄마가 필요한 게 없는지 살폈다.
뜬금없는 배탈에 푸른 위액까지 쏟아내야 했던 날.
그 날, 내 아들이 비밀 친구가 되어 지켜준 마니또는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