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살이

꽈배기와 슈크림

by 김현정

올해 일곱 살이 된 아들은 먹성이 좋다. 물론

돌이 갓 지났을 무렵 이유식을 거부하고 오직 우유만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채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기와 스파게티만 주야장천 찾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한없이 순하지만 일단 뿔이 났다 하면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뚝심과 고집을 가진 아빠와의 대결에서 무참히 패배한 아들은 언젠가부터 밥 잘 먹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네 살이 되어 어른이 먹는 음식을 제법 잘 먹게 되자 아이와 단 둘이 식당에 가는 일도 많아졌다. 둘이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나란히 카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기도 하고 가볍게 식사를 하러 들른 식당에서 거창하게 무려 꽃등심을 구워먹은 날도 있었다.


아들은 꽤 다양한 범주의 음식을 좋아한다. 초콜릿이나 케익, 과자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까스, 스파게티, 피자에서부터 한국의 맛을 좀 안다 할만한 어른들이 좋아할 법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상추쌈, 깻잎 김치에 이르기까지 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은 셀 수 없이 많다.


엄마란 매일 아들에게 밥을 해 먹이고 오늘은 어떤 음식을 해 줄지 고민하는 사람이다. 부모는 어디 밖에서 외식을 하게 되더라도 '내 입에 뭐가 맞을까'가 아니라 '아이가 무엇을 잘 먹을지' 먼저 고민하는 자리다. 그러니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수십 개, 아니 수백 개라도 막힘 없이 줄줄이 읊어댈 수 있다.


내 아이의 입맛을 제대로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자랑스럽기도 했다. 아이의 입맛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언제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밥상을 차려내기 위해 애쓰는 엄마,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 호불호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엄마임을 증명하는 근거라도 되듯 남몰래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며칠 전 나의 반쪽짜리 자부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엄마의 손에 들려 있던 봉투에는 슈크림과 팥빵, 그리고 미니 롤빵 한 봉지가 들어있었다. 빵 봉투를 살피는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내 아들 T군이 좋아하는 꽈배기가 없다는 거였다. 아니나다를까 빵 봉투를 본 아이는 자연스레 꽤배기를 찾았고 엄마는 시간에 쫓기며 급하게 빵을 사느라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빵을 살 수 없었다며 꽈배기가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뒤이어 엄마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반짝반짝 빛나던 나의 자부심은 부끄러운 잿빛으로 뒤덮였다.


"슈크림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건데, 한 번 먹어봐. 아주 달콤하고 맛있을 거야."


제과점에 들른 T군을 사로잡는 건 언제나 꽈배기와 모카빵이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T군이 나의 아들이었던 것보다 훨씬 오랜 기간동안 나의 엄마였던 그녀가 무슨 빵을 좋아하는지 난 정말 몰랐다. 들기름을 넣고 슬쩍 볶다가 맑은 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마늘과 집간장을 더한 엄마표 콩나물을 내놓으면 수북이 쌓여 있는 콩나물 접시도 혼자서 거뜬히 비워내는 딸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콩나물을 먹이려고 직접 콩을 고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콩나물시루를 들여다보며 물을 주는 엄마. 꼬들꼬들한 밥보다 진밥을 좋아하는 내 입맛을 귀신같이 살펴주는 우리 엄마. 계란 좋아하는 손주에게 줄 계란후라이를 할 때면 계란사랑의 원조격인 둘째딸을 위한 계란후라이도 잊지 않는 엄마.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내 입맛을 살펴준 엄마가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난 정말 몰랐다.


오랜 세월 동안 입에 단 음식보다 몸에 좋은 음식만 고집해 온 엄마가 늘 답답했는데,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한없이 까다로운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사실은 속이 늘 좋지 않아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없었을 뿐, 실은 달콤한 슈크림과 뜨끈한 라면을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내 아들의 입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서푼짜리 자부심이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엄마의 '엄마살이'도 꽤 고단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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