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송송. 계란탁
라면을 끓였다.
점심 무렵이었다. 식사를 해야 할 사람은 셋이었다. 육아 휴직 중이라 매일 점심 식사를 함께 하는 남편과 아직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딸. 그리고 나. 키가 한참 크는 시기라 그런지 매일 고기가 가득한 밥상을 원하는 아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터라 그나마 준비하기가 조금은 수월할 수도 있는 밥상이었다. 여기저기 탈이 나 몸이 좋지 않은 남편과 요즘 들어 부쩍 밥숟가락 앞에서 입을 벌리려 들지 않는 딸, 17개월이 되도록 아직 젖을 먹는 딸을 위해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는 나. 세 사람 모두에게 제격인 메뉴를 내놓을 재료가 하나도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었다.
꽁꽁 언 채로 냉동실 지퍼백 속에 나란히 누워 있는 어른 손바닥보다 큰 전복 세 마리, 성인 남자 검지 손가락 만한 왕새우 여섯 마리, 푸른 비닐 덮개 밑에 숨어 싱싱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불빛과 공기로부터 몸을 숨기고 있는 양송이버섯, 그리고 언제든 요리에 투입될 수 있도록 단장을 한 채 냉장고에서 숨죽이고 차례를 기다리는 양파와 당근.
정석대로라면 쌀을 불렸다가 죽을 끓여야 하지만 좀 더 빨리 죽을 끓여내기 위해 미리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담고 취사 버튼을 눌렀다. 밥솥에서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뜨겁게 달군 냄비에 참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두어 공기 분량의 밥을 냄비에 쏟아부었다. 고요한 호수 가장자리에서 가볍게 일렁이는 물결처럼 따뜻하게 달궈진 냄비 비닥에 물결 문양을 만들며 좌르륵 흩어진 참기름이 뜨끈한 밥을 알알이 감쌌다. 웬만큼 밥을 볶았다 싶어 이번에는 다시마 육수를 넉넉히 붓고 아기 이로도 꼭꼭 씹는 데 무리가 없도록 잘게 썬 채소를 냄비에 차례차례 집어넣었다. 전복의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을 잘 살려낼 수 있도록 커다란 냄비 속에서 다시마 육수가 부르르 끓어오르고 밥알이 제법 퍼진 느낌이 들 때 정갈하게 손질해 놓은 전복과 새우를 밀어 넣었다. 좀 더 깊은 맛을 내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에 국간장도 조금 넣었고 간장을 너무 많이 넣으면 죽 색깔이 탁해질까 하는 걱정에 소금으로도 함께 간을 했다. 죽이 부르르 끓어오르자 밥알이 먹기 좋을 정도로 풀어지고 냄비 속의 여러 재료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약불로 줄이고 잠깐 기다렸다.
알맞게 잘 익은 전복죽을 커다란 국그릇에 담아낸 다음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볶은 참깨를 솔솔 뿌려주니 바다 내음이 배어 있는 고소한 죽 냄새가 식탁 주위로 퍼져나갔다. 남편과 딸에게 죽이 담긴 그릇을 하나씩 내밀고 나자 나도 그냥 점심으로 전복죽을 먹고 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사실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점심 메뉴는 따로 있었다. 내가 원했던 점심 메뉴는 값비싼 부재료가 올라가지도, 화려한 기교가 더해지지도 않는 그냥 라면, 대충 끓어 오른 후에 송송 썬 파와 무심하게 깨어 넣은 계란 한 알이 더해진 그런 라면이었다. 아침부터 라면이 먹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벌써 며칠째 라면 하나 끓여먹어야지 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식단을 조절해야 하는 남편에게 라면을 주려니 마음에 걸려서, 젖 먹는 아이를 생각하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가 미안해서, 다른 식구들을 위한 밥상을 차려낸 다음 내 입 하나 호사를 누리게 해주자고 따로 라면 한 그릇을 끓여내기가 머쓱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엄마가, 아내가 해 주는 밥을 먹기만 하는 사람들은 요리를 하는 주부가 늘 마음대로 자신의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 늘 엄마가 해주는 밥을 얻어먹기만 하던 시절에는 나도 그런 철없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가, 아내가 되고 보니 주부는 내가 먹고 싶은 걸 요리하기보다 식구들이 먹고 싶은 걸 고민하고 식구들에게 먹이면 좋을 음식을 만드는 자리였다. 바쁘게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려내고 나면 내 입이 원하는 음식을 따로 만들어낼 시간 같은 건 좀처럼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끔씩 나 하나 좋자고 몸에 좋을 것도 없고 호사라 할 만한 것도 없는 라면을 굳이 끓여낼 때가 있다. 별 것도 없이 끓는 물에 끓여낸 라면이 이상하게 커다란 위로가 되어서다.
첫째가 태어난 후 지금의 둘째가 생기기 전에 두 번째로 뱃속의 아이를 잃고 난 아침에도 그랬다. 남편과 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여 보낸 후 고요한 주방에 홀로 서서 라면을 끓였다. 태아의 건강과 안위를 가장 우선시하며 태아가 잘 자라 주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보낸 몇 주의 시간에 대한 고별과 또다시 찾아온 절망에 대한 울분과 아이를 잃은 아픔에 대한 위로가 고스란히 담긴 라면 한 그릇을 아침부터 꾸역꾸역 입 속에 밀어 넣었던 아침. 유산을 하고 나면 건강을 생각해서 몸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 날 아침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는 내 마음을 달래 주는 라면 한 그릇이 없었다면 몸을 추스르기 위한 마음의 평정 같은 건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라면은 무엇을 위한 라면이었을까.
나는 모른다.
무엇을 위로하기 위한 라면이었는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는 보통의 라면 한 그릇이 오늘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