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살이

이제 나도 좀 말아요

by 김현정

첫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봄이 되면 한 가지 남모를 고민에 빠졌다. 3월이 되어 신학기가 시작되고 같은 반에 배정된 아이들이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서로의 존재를 반가워할 정도로 시간이 흐르면 어김없이 소풍의 계절이 찾아온다.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일 년 내내 도서관으로, 텃밭으로, 딸기밭으로, 공연장으로, 근처 놀이동산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데리고 다니신다. 정말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나는 소풍 일정이 잡힐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덕목 중 하나인 '김밥 싸기' 기술을 미처 연마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늦봄, 서른을 훌쩍 넘긴 어찌 보면 늦은 것도 같고 결혼이 늦은 요즘 추세를 생각하면 그리 늦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여동생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캐나다에 살고 있는 언니가 두 조카를 데리고 한국을 찾았다. 우리 아이들이 일 년 만에 만난 이종사촌들과 좀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언니의 일정과 여동생의 결혼 날짜를 고려해 친정집에 며칠을 머물렀다. 엄마는 겨우 기어 다니는 둘째를 제외한 세 손자 손녀들의 입을 즐겁게 해 줄 메뉴로 김밥을 생각해 냈다. 엄마살이 6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김밥 한 줄 제대로 말 줄 모른다는 게 내심 부끄러워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괜히 입을 닫고 말았다.


뭐라도 거들어야지 싶어 주방에서 서성거리는데 때마침 엄마가 돈가스도 함께 만드는 게 좋겠다며 돈가스용 돼지고기 한 봉지와 빵가루로 재탄생할 식빵 한 봉지를 내놓으셨다. 뭐 먹을 거라도 있나 싶어 주방을 기웃대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한 돼지고기를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에 차례차례 담그면서 슬그머니 언니한테 물었다.


"언니도 김밥 싸 봤어? 캐나다에서도 김밥 자주 싸?"


우리나라도 아닌 외국에 살면서 소풍을 갈 때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싸진 않을 테니 나 말고도 김밥을 쌀 줄 모르는 사람을 하나 더 찾아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태연하게 답했다.


"그냥 하면 되지 뭐."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친구에게 어떻게 공부하는지 물었다가 교과서라는 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우리 동네 어떤 엄마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김밥 준비를 한다는데 진짜 웃기지 않니?"


언니는 김밥이 뭐 대수라고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느냐며 그녀의 호들갑은 못 말린다고 덧붙였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새벽 4시부터 준비해서라도 김밥을 쌀 수 있는 그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국의 어느 아줌마를 향한 존경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도 김밥이 쉽지만은 않은 요리라는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김밥을 써는 게 특히 어렵지 않냐고 재차 물었다. 신혼 초에 솜씨 자랑 좀 해보겠다며 냉동실에 들어 있는 성긴 파래김으로 김밥을 말았다가 김밥 옆구리를 모두 터뜨린 일화를 슬그머니 끌어댔지만 주부가 된 지 10년이 넘은 언니에게는 허점이 없었다.


"두 줄을 나란히 붙여서 썰면 잘 돼."


이제 솔직히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려 김밥 옆구리를 있는 대로 터뜨리거나 속재료들을 얼기설기 집어넣어 형태를 알 수 없는 김밥을 내놓았다가 모처럼 먹게 될 집 김밥 생각에 들떠 있는 온 식구들의 눈총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날 저녁, 엄마와 언니가 내놓은 김밥은 완벽했다.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들어가는 집 김밥 특유의 맛깔스러움도, 질 좋은 김과 잘 지어진 밥,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속재료들의 자연스러운 어우러짐도,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준 엄마의 소풍 김밥과 꼭 닮은 예쁘고 단정한 모양도.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사실 그동안은 아직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점심 도시락이 필요할 정도로 먼 곳으로는 소풍을 보내지 않았다. 물론 재미삼아 비엔나 소시지의 한 쪽 끝에 칼집을 내어 만든 문어 소시지와 꼬마 돈가스, 마트에서 파는 꼬마 김밥 재료들로 만든 김밥, 과일로 2단 도시락을 싸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우엉이니 시금치니 하는 재료를 제대로 다듬어 어릴 적 엄마가 싸 주셨던 진짜 김밥,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예쁘고 맛 좋은 집 김밥은 왠지 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프리랜서로 하는 일이긴 하지만 하루 종일 일에 메여 사느라 손이 많이 가는 요리에 감히 도전장을 던질 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나름 부족한 요리 실력을 정당화시켜주는 핑계라면 핑계였다.


하지만 아이가 일곱 살이 되고 보니 이제 정말이지 제대로 준비를 해 둬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마음을 먹고 마트에서 우엉과 단무지, 시금치, 당근, 김밥용 김을 사다 놓고도 며칠 동안 끙끙 앓는 기분으로 머릿속으로만 열 번도 넘게 김밥을 말았다가 풀었다. 사실 넘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막상 오르기 전에는 그저 한없이 높아 보이는 동네 뒷산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주말 오후, 마침내 김밥을 말아보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먼저 흙 묻은 우엉의 껍질을 벗겨 가느다랗게 채를 썬 후 간장과 물엿을 풀어 달짝지근하게 조리고선 흙을 털어낸 시금치의 꼭지를 잘라내고 살풋 데친 후 참기름과 소금, 국간장과 다진 마늘로 양념을 했다. 당근과 햄을 차례대로 볶고 혹시나 실패할까 조바심을 내며 조심스레 계란을 말아두고 불고기 양념을 한 소고기까지 바특하게 볶아내 스텐 쟁반에 주르륵 늘어놓으니 '이제 한 고개는 넘었다' 하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제대로는 못하지만 얼렁뚱땅 흉내라도 내보려고 숱한 요리 사이트와 요리 블로그들을 기웃대며 산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어렵게만 느껴지던 일을 막상 벌이고 나니 언젠가 어디선가 주워 들었던 온갖 비법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마치 옥수수 알맹이가 하나씩 부풀어 '팡' 하고 터지면서 팝콘이 되듯이 밥을 가능한 얇게 펼치는 게 좋다든지 단무지나 햄처럼 단단한 재료를 양끝에 보초병처럼 세우고 다른 재료들을 중간에 넣어야 흐트러지지 않고 잘 말린다든지 참기름을 살짝 바른 후 김밥을 두 줄씩 붙여 자르면 좀 더 수월하다든지 먹고 남은 김밥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계란물을 입혀 후라이팬에 살짝 구워주면 맛있다든지 하는 온갖 비법들이 차례차례 생각이 났다.


그 날 저녁으로 옆구리 터진 곳 하나 없이 매끈한 김밥을 내놓았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날의 김밥은 내가 상상하며 두려워했던 머릿속 김밥에 비해서 훨씬 그럴듯하고 꽤 먹을만한, '역시 집에서 싼 김밥이 맛있어!'라는 평가는 슬쩍 받아낼 수 있었던 그런 김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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