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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pr 03. 2016

4천 원어치 허기

세종에서 한 시간 떨어진 부여에는 꽤 규모가 큰 브랜드 아울렛이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명품 아울렛을 입맛대로 골라 다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배지로 쫓겨나듯 타의에 의해서 세종시로 내려와 제대로 된 쇼핑몰 하나 없이 필요한 옷을 사러 대전으로, 천안으로, 청주로 원정 쇼핑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부여 아울렛 정도면 상당히 훌륭한 쇼핑 장소다. 그래서인지 지역 카페에는 부여 아울렛에서 열리는 특가 할인 행사에 관한 소식이 자주 올라오고 아울렛을 찾아 원하는 물건을 구입했다는 소식도 자주 올라온다.


아울렛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넓디넓은 주차장은 언제나 자동차로 그득하고 점심시간이면 이탈리아 요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는 뷔페 식당의 넓은 홀이 손님들로 가득 찬다. 목이 마른 사람들은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고 널따란 아울렛 마당에 위치한 인공 연못 주위에는 쇼핑을 하다 한숨을 돌리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아울렛 2층 식당가 화장실 뒤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는 곳이다. 아니, 비밀이 아닐 뿐 아니라 비밀이어서는 안 되는 통로가 그곳에 있다. 아울렛 뒤편에 조성되어 있는 백제문화단지로 이어지는 통로가 바로 그것이다. 아울렛 곳곳에는 2층 화장실 뒤편으로 가면 백제문화단지로 갈 수 있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지만 그걸 눈여겨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사실 나 역시도 서너 번쯤 아울렛을 방문하고 나서야 아울렛에서 백제문화단지로 곧장 넘어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저리 가면 길이 있다'고 알려주는 표지판이 버젓이 세워져 있지만 막상 그 길을 아는 사람도, 그 길을 따라 걷는 사람도 많지 않은 '비밀 통로'를 지나 백제문화단지로 넘어섰다. 아울렛에서 백제문화단지로 넘어가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이미 이전에도 백제문화단지를 두 번이나 찾았었다. 세종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변에 갈 만한 곳을 찾다가 우연히 들른 백제문화단지는 기대 이상이었다. 궁궐에서부터 사찰, 귀족들이 사는 마을, 평민들이 사는 마을, 요새, 망루에 이르기까지 백제 시대의 문화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갖은 공간이 설치되어 있었고 미디어를 이용한 학습 자료에서부터 다양한 체험 자료까지 제법 정성이 들어간 듯 보이는 장치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로운 길을 지나 3년 만에 찾은 백제문화단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뜨거운 햇살 아래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꽃이며 망가진 곳이나 훼손된 곳 없이 3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깔끔하게 관리된 시설물이며 갓 밭에서 따온 딸기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시는 마음씨 좋은 매점 아주머니까지 백제문화단지는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정갈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제문화단지에 한 가지 없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물론 백제문화단지를 돌아보는 몇 시간 동안 사람 구경을 전혀 못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화창한 어느 봄날의 토요일 오후에 100만 평이 넘는 땅에 들어선 6천 억 원 규모의 역사문화단지를 찾은 방문객이라고 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도 적었다. 물론 쾌청한 날씨 덕에 어딜 가나 인파로 북적일 거라는 우려를 내려놓고 넓은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으니 우리는 좋았다. 하지만 텅 비다시피 한 백제문화단지는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바로 옆 아울렛을 찾은 사람들은 줄을 서서 옷을 산다. 하지만 몇 걸음 너머에 있는 역사문화단지에서는 그 무엇을 하기 위해서도 줄을 설 필요가 없다. 곤장 체험을 하는 곳에서도 투호 놀이를 하는 곳에서도 기운 넘치는 아이들이 체험을 한답시고 한참을 장난을 치고 웃고 떠들어도 누구 하나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쇼핑을 하면서 인파에 치인 사람들은 4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잠깐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겠다고 앉을자리 하나 없이 손님들로 빽빽하게 들어찬 카페에 들어가 한참을 기다렸다 커피를 주문하고는 동그란 진동벨을 소중하게 받아 든다. 하지만 한 층 위에 있는 백제문화단지 매표소 앞에는 4천 원짜리 입장권을 사겠다고 지갑을 꺼내 드는 사람이 없다.




옷이 고픈 사람은 옷을 사고 커피가 고픈 사람은 커피를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도 사도 고픈 마음이 가시질 않고 마셔도 마셔도 타는 목을 축일 수 없다면 내게, 우리에게 미처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허기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4천 원짜리 커피가 아니라 4천원 짜리 입장권 한 장이 내가 진짜로 고픈 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진짜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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