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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Mar 27. 2016

커피 한 잔

총알 한 잔 주세요

진실은 투명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실이 항상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사실 얼떨결에 진실을 알게 됐지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스타벅스가 그랬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특별한 삶을 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소비를 할 수밖에 없다. 먹고살기 위해서 소비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단계를 넘어서 좀 더 고차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비를 하는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소비해야만 한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습관처럼 스타벅스에 들러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치킨이나 피자를 먹을 때면 으레 코카콜라를 함께 들이키며 친구들과 모여 루미큐브 게임을 즐기고 에스티로더를 즐겨 바르며 백화점에 들러 왠지 멋져 보이는 랄프로렌과 캘빈 클라인을 입어보고 목이 마를 때면 웰치 주스를 마시고 인텔 로고가 박혀 있는 컴퓨터를 열어 인터넷을 한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온 탓에 이제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 기업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기업들은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을 일컫는 시오니즘.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유대인들의 오랜 꿈이 담겨 있는 시오니즘. 지금의 이스라엘이 생겨나는 근거가 된 시오니즘. 그 꿈이 문제가 되는 건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죄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서 꿈과 희망,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와는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그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쩌면 우리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마신 커피가 총알이 되어 누군가의 머리에 박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마신 커피가 거꾸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기프티콘을 선물할 때도 선물 받는 사람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민없이 스타벅스를 골고 친구와 수다를 떨 때도 가깝다는 이유로 스타벅스를 찾다. 투박한 스타벅스 머그컵에 열광했고 심지어 외국 여행지에서도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스타벅스를 즐겨 마셨다. 그런데, 그 커피잔에 커피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총알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스타벅스를 찾기가 힘들었다.


소비에 신념이 더해지자 삶이 불편해졌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한 잔 하자는 친구의 제안이 불편해졌고 스타벅스가 매년 연말 선보이는 다이어리를 얻어보겠다고 프리퀀시를 모으는 사람들이 우스워 보이기 시작했으며 꽤 의식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에서 새로 출시한 텀블러나 럭키백을 구입하겠다고 새벽 댓바람부터 몇 시간씩 줄을 서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당신이 지불하는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끓어올랐다. 사실 어지간한 시골 읍내에서도 언제든지 카페라떼 한 잔 쯤은 쉽게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커피의 인기가 높다 보니 스타벅스에 발길을 끊는다고 해서 크레마가 풍성하고 우유 거품이 탄탄하게 올라간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스타벅스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덕에 상가 뒤쪽에 자리를 잡고 있어 큰 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직접 볶은 원두로 내린 신선하고 풍미 좋은 커피를 스타벅스보다 싼 값에 파는 작은 로스터리 카페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소비에 잘못된 신념이 더해지면 단순히 내 삶이 불편해지는 데서 끝이 나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 대한 나의 믿음에 오류가 있으면 크건 작건 누군가가 피해를 입게 된다.


스타벅스가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풍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타벅스를 불매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유명한 기업들의 로고가 주르륵 박혀 있는 불매 기업 목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꽤 정성을 들인 듯 여러 기업들의 이름을 분야별로 깔끔하게 정렬해 놓은 불매 기업 목록은 제법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도 이스라엘의 전쟁을 후원하는, 다시 말해서 온전한 유대인의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내는 기업들의 목록을 보고 스타벅스를 불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신념과 무관하게 스타벅스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반복되자 과연 스타벅스를 불매하겠다는 나의 결정이 옳은 건지 의문이 생겼다.


스타벅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후원하는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은 Ziopedia라는 반유대주의 사이트가 공개한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Ziopedia는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가 고객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를 공개했다.  그 편지에서 슐츠는 스타벅스가 커피를 팔아서 번 돈이 이스라엘이 치르는 '테러와의 전쟁'에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편지가 공개되자 아랍이 분노로 들끓었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Ziopedia의 운영자는 차후에 이 편지를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결국 시오니즘을 혐오하는 사람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작정으로 거짓으로 작성한 한 통의 편지가 스타벅스 불매 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하워드 슐츠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타벅스가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소문은 한없이 커져만 갔고 스타벅스는 자사가 시오니스트 기업이 아니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해명의 글을 홈페이지에 기고하기에 이르렀다. 스타벅스의 홈페이지에는 자사가 이스라엘 정부나 이스라엘 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일단 공개적인 자료를 뒤져 본 결과만 놓고 본다면 스타벅스는 시오니스트 기업이 아니다. 비단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스라엘을 후원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는 현지 커피 기업들의 공세에 눌려 철수를 한 반면 여러 아랍 국가에서는 활발하게 영업을 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시오니스트 기업이 틀림없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나의 불매 운동은 어떻게 돼야 할까?


스타벅스 커피가 맛이 없다거나 스타벅스의 서비스가 불친절하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스타벅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완전한 오해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나의 잘못된 신념 때문에 스타벅스가 커피 한 잔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벅스가 공식적으로 자사는 시오니스트 기업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스타벅스의 수익이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데 쓰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아직은 진실이 완전히 투명하게 밝혀진 게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는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스타벅스는 아주 단정하지만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그런 해명의 글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아직 확신을 갖고 어느 한쪽을 온전히 지지할 수 없다면 적어도 투명하게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나의 사소한 선택이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남겨 두지 않는 편이 옳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 함께 커피를 마실 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스타벅스를 가게 되더라도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겠지만 내가 산 커피가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는 총알이 될 가능성이 1%도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에 단순히 내 입의 호사만을 위해 스타벅스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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