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살이

내 이름은 엄마입니다

by 김현정

내 이름은 김현정이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김현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회사에서도 김현정씨, 혹은 현정씨라고 불렸다. 김대리나 김과장 같은 새로운 호칭을 달아보지도 못한 채 입사한 지 3년 만에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김현정씨, 혹은 김현정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다. 10년이 넘게 번역일을 하면서 내놓은 역서나 잡지 원고에도 어김없이 김현정이라는 세 글자가 꼭꼭 박혀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김규리라는 이름도 있다.


내가 갓 직장인이 되었을 무렵, 엄마는 자식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는 게 좋다는 작명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세 딸에게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안겨주셨다. 그 날 이후, 엄마는 마치 내가 태어날 때부터 김규리였던 것처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나를 규리라고 불러주셨다.


새 이름이 내게 좋다는 말에 시어머니 역시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한결같이 나를 규리라고 불러주셨고 지인들에게도 어김없이 며느리의 이름을 김규리로 소개하셨다. 결혼식날, 신부 이름이 김규리인 줄 알고 계셨던 시댁쪽 친척분이 신부대기실에 들러 신부 이름이 김현정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그새 신부가 바뀐 건가 해서 당황하신 적도 있었다. 그동안 들었던 이름과 결혼식장에서 확인한 신부의 이름이 다른 걸 보고 점잖은 줄 알았던 조카가 사실은 결혼할 여자가 있다더니 몇 달 만에 새 여자를 꿰차고 나타나는 파렴치한 바람둥이였다는 그럴듯한 결론을 내린 후 자신도 모르게 신부에게 이름을 묻는 어른 앞에서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내 이름은 김현정이기도 하고 김규리이기도 하다고 설명을 했다.


두 아이가 생기고 나서 김현정, 혹은 김규리라고 불리는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은 새 이름이 생겼다. 그 이름은 바로 엄마다.


이름이란 누군가가 나를 부르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름에는 나의 정체성이 함축돼 있고 이름은 나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사실 엄마는 나에게만 허락된 단어가 아니기에 엄마가 나의 이름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 노릇을 하는 지금 누군가가 나를 부르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단연코 엄마다.


주말에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장시간의 드라이브가 지루한지 끊임없이 '엄마!'를 외쳐댔다. 아이들은 묻고 싶은 게 있을 때도, 먹고 싶은 게 있을 때도, 필요한 게 있을 때도, 심심할 때도, 기분이 좋을 때도, 기분이 나쁠 때도 엄마를 불렀다. 오빠가 엄마를 부르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오빠를 따라 엄마를 외쳤고 동생이 엄마를 부르면 괜한 경쟁심에 일단 엄마를 불렀다. 아이들이 부를 때마다 착실하게 대답을 하려니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 옆에 가만히 앉아서 가는 데도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진이 빠졌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집에서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집에 있어도 아이들은 필요한 게 있거나 문제가 생기면 으레 엄마를 부른다. 밥을 먹다가 물이 필요해도 엄마를 부르고 잠이 와도 엄마를 부르고 장난감을 찾을 때도 엄마를 부른다.


엄마를 찾는 아이의 목소리에 사랑이 담겨 있을 때도 있고 슬픔이 담겨 있을 때도 있고 기쁨이 담겨 있을 때도 있고 짜증이 담겨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어떤 이유로, 어떤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건 언제라도 자식을 품어주기 위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쉼없이 엄마의 자리를 지킨다.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의 손길은 간섭으로, 엄마의 말은 잔소리로 여길 때가 되면 엄마보다 김현정, 혹은 김규리라는 원래의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엄마라는 단어 속에 감춰져 있었던 내 이름을 드디어 되찾았다며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엄마라는 이름이 가장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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