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며 아침을 먹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오늘은 날씨가 어때요?"
"좋은 것 같은데!"
아들은 내 답을 듣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미세먼지 말이에요."
미.세.먼.지
고작 일곱 살, 그것도 만으로는 이제 다섯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전문적이고 어려운 어휘다.
하지만 슬프게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일곱 살들은 대부분 미세먼지라는 단어에 아주 익숙할 것 같다. 매년 봄 뉴스만 틀면 주야장천 미세먼지에 관한 소식이 흘러나오는 데다 유치원 선생님은 툭하면 미세먼지 때문에 바깥놀이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주말 나들이를 약속한 엄마 아빠도 이따금씩 미세먼지를 이유로 소풍을 취소한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미세먼지는 '그게 뭔지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지만 기다리고 기다렸던 화창한 봄날이 되었는데도 마음껏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장애물'쯤 되지 않을까. 내가 어렸을 적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대기를 떠도는 오염물질들이 섞여 있는 산성비와 봄이 되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먼지 섞인 황사 바람이 그 주인공이었다. 우산을 손에 쥐고도 장난을 치느라 홀딱 빗물을 뒤집어쓰는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한 부모들은 황사비를 맞으면 대머리가 될 거라고 진심 어린 경고를 하셨고 하늘이 온통 누렇게 뒤덮인 날에는 황사는 몸에 좋지 않다며 오늘은 밖에 나가 놀지 않는 게 좋겠다며 어린 자녀들을 다독이셨다.
이제 거기에다 겨우내 움츠린 채 따뜻한 봄을 학수고대했던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서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또 하나 늘어났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온갖 오염물질들에 배기가스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갖은 오염물질이 더해진 미세먼지는 '미세' 먼지라는 이름 답게 조그마한 몸집으로 호흡기를 통해 우리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우리를 병들게 한다.
미세먼지 앱을 휴대폰에 깔아놓고 매일 아침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대한민국의 엄마들에게 미세먼지는 보이지 않는 적이다. 후쿠시마에서 지진이 일어나 원전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방사능을 한반도와 반대쪽으로 밀어내 주는 편서풍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는데 이제 그 편서풍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화창한 봄날에 밖으로 나오라고 화려한 색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봄꽃을 외면한 채 내일은 날씨가 또 어떨지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집안에서 숨을 죽인다.
황사. 방사능. 도둑. 강도. 폭력. 감옥. 이혼. 당뇨. 암. 싸움. 살인. 벌금. 징역. 사망....
아이는 어른들이 무심결에 틀어 놓은 뉴스를 보고 제법 굵어진 머리로 어려운 책을 읽으며 아직은 몰랐으면 하는 수많은 말들을 배운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아이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지는 못한 수많은 말들 중 아이에게 가장 커다란 고난을 주고 있는 말은 단연코 미세먼지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가 몰랐더라면 좋았을 첫 번째 말로 다름 아닌 '미세먼지'를 꼽게 된다.
우리 어른들이 그동안 놓쳐왔던 문제들을 바로잡는 데 좀 더 커다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은 더 이상 '오늘의 일기예보'를 걱정하지 않고 비가 내리면 비가 오는 대로 신나게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두꺼운 점퍼 하나 걸쳐 입고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세상이 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