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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Feb 17. 2024

당신이 몰랐던 캐나다

배드랜드-후두

캘거리 근교에 있는 드럼헬러에는 CNN이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 박물관 중 하나로 꼽은 로열 티렐 박물관(Royal Tyrrell Museum)이 있다. 인간이 근사하게 만들어놓은 공룡 모형이 잔뜩 들어찬 공룡 박물관이야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수억 년 전에 공룡이 뛰어놀았던 바로 그 땅 위에 지어진 로열 티렐 박물관에는 '진짜' 공룡의 흔적들이 그득하다.


캘거리 시내에서 한 시간쯤 달려가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밭과 평지가 사라지고 몇 억 년 전에 공룡이 뛰어놀았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이하고 신기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넓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광활한 땅에 거대한 협곡과 켜켜이 쌓인 지층이 훤히 보이는 암석층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캘거리에서 드럼헬러로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등장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낯선 풍경을 즐기며 조금 더 달려가면 로열 티렐 박물관이 나온다. 세계 공룡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공룡 화석이 발견된 드럼헬러에 세워진 로열 티렐 박물관은 캘거리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곳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


박물관에 전시된 매머드


로열 티렐 박물관에는 6,900만 년 전의 은행잎 화석, 삼엽충 화석, 모형이 아닌 실제 공룡뼈를 발굴해 복원한 공룡 두개골 등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전시물이 즐비하다. 거기에다 전문가들이 투명한 유리 뒤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직접 화석 발굴 작업을 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곳이기에 로열 티렐 박물관은 공룡을 유달리 사랑하는 덕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가볼 만한 멋진 곳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드럼헬러의 진짜 매력은 배드랜드에 있다. 한국어로는 '침식 불모지'로 번역되는 배드랜드는 부드러운 퇴적암과 점토가 풍부한 토양이 광범위하게 침식된 건조한 지형으로, 식물이 살 수 없는 황무지를 뜻한다. 배드랜드가 캐나다 드럼헬러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배드랜드가 있다고 한다.  


안내 표지판도 없고 정보도 귀한 드럼헬러 배드랜드의 주차장에 들어서자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캘거리에서 드럼헬러로 넘어가는 길 양쪽에 장벽처럼 늘어서 있던 지형에 눈이 익숙해진 탓인지 주차장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대충 길목을 막고 주차요금을 받는 주차장 시스템이 너무도 어설퍼 보였다. 실상은 특별히 볼 것도 없는 곳을 대단히 볼거리가 있는 것처럼 꾸며두고 괜히 주차요금이나 뜯어가는 곳인가 싶은 생각에 속이 쓰렸다.  


드럼헬러의 배드랜드 주차장에서 바라본 풍경

하지만 눈앞의 돌산이 가까워질수록 상상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지구의 한 부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모습을 한 바위 기둥 후두(hoodoo, 침식 작용으로 생긴 기괴한 바위 기둥)가 곳곳에 솟아 있었다. 


드럼헬러 배드랜드의 후두

돌산을 타고 올라가 신비로운 광경을 내려다보니 온갖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옛날 옛적에 강력하고 거대한 공룡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가다가 바위 기둥을 차례로 들이받아 퇴적암이 깎여나가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번뜩이는가 싶더니 낮동안 조용히 바위 기둥 아래에 숨어 있던 외계인이 밤마다 은밀하게 숨겨진 문을 열고 나와 기둥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장면이 그려졌다. 기이한 장면을 보고 떠오른 터무니없는 상상이 웃겨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가까이서 촬영한 후두


드럼헬러에서 만난 배드랜드가 남긴 강렬한 인상은 온타리오로도 이어졌다. 토론토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칼레돈이라는 작은 도시에는 드럼헬러와는 다른 모습을 한 배드랜드가 있다. 칼레돈의 배드랜드는 드럼헬러의 배드랜드와는 달리 붉은색 퇴적암이 켜켜이 쌓인 형태를 띠고 있다. 단단해 보이는 토질과 기이하게 솟은 바위 기둥이 드럼헬러 배드랜드의 매력이었다면, 1990년에 유네스코가 세계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나이아가라 절벽의 일부인 칼레돈 배드랜드의 매력은 황토 카펫을 깔아놓은 듯 부드러워 보이는 토질이었다. 사람의 발이 닫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되는 칼레돈 배드랜드 주위에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누구든 낯설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그 풍경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듯하다. 


온타리오주 칼레돈의 배드랜드

이 세상은 아름답고 신나는 곳들로 가득하다. 평생 동안 매일 쉼 없이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지구상의 모든 길에 발도장을 찍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눈에 담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도시,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먼저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곳들부터 찾는다. 시간과 돈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생각하면 당연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리가 몰랐지만, 알았더라면 반드시 가봤을 만한 그런 멋진 곳이 많다. 어떤 광경을 보고 내 심장이 뜨겁게 반응할지 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덜 알려진 곳이나 이름 없는 것에도 가끔은 눈을 돌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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