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랜드-후두
안내 표지판도 없고 정보도 귀한 드럼헬러 배드랜드의 주차장에 들어서자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캘거리에서 드럼헬러로 넘어가는 길 양쪽에 장벽처럼 늘어서 있던 지형에 눈이 익숙해진 탓인지 주차장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대충 길목을 막고 주차요금을 받는 주차장 시스템이 너무도 어설퍼 보였다. 실상은 특별히 볼 것도 없는 곳을 대단히 볼거리가 있는 것처럼 꾸며두고 괜히 주차요금이나 뜯어가는 곳인가 싶은 생각에 속이 쓰렸다.
돌산을 타고 올라가 신비로운 광경을 내려다보니 온갖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피어났다. 옛날 옛적에 강력하고 거대한 공룡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가다가 바위 기둥을 차례로 들이받아 퇴적암이 깎여나가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번뜩이는가 싶더니 낮동안 조용히 바위 기둥 아래에 숨어 있던 외계인이 밤마다 은밀하게 숨겨진 문을 열고 나와 기둥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장면이 그려졌다. 기이한 장면을 보고 떠오른 터무니없는 상상이 웃겨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드럼헬러에서 만난 배드랜드가 남긴 강렬한 인상은 온타리오로도 이어졌다. 토론토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칼레돈이라는 작은 도시에는 드럼헬러와는 다른 모습을 한 배드랜드가 있다. 칼레돈의 배드랜드는 드럼헬러의 배드랜드와는 달리 붉은색 퇴적암이 켜켜이 쌓인 형태를 띠고 있다. 단단해 보이는 토질과 기이하게 솟은 바위 기둥이 드럼헬러 배드랜드의 매력이었다면, 1990년에 유네스코가 세계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한 나이아가라 절벽의 일부인 칼레돈 배드랜드의 매력은 황토 카펫을 깔아놓은 듯 부드러워 보이는 토질이었다. 사람의 발이 닫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되는 칼레돈 배드랜드 주위에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누구든 낯설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그 풍경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 세상은 아름답고 신나는 곳들로 가득하다. 평생 동안 매일 쉼 없이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지구상의 모든 길에 발도장을 찍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눈에 담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도시,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먼저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곳들부터 찾는다. 시간과 돈이라는 제한된 자원을 생각하면 당연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리가 몰랐지만, 알았더라면 반드시 가봤을 만한 그런 멋진 곳이 많다. 어떤 광경을 보고 내 심장이 뜨겁게 반응할지 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덜 알려진 곳이나 이름 없는 것에도 가끔은 눈을 돌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