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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Feb 26. 2024

포트 세인트 제임스에는 누가 사는가

캐나다 데이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

한국에 해방과 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광복절이 있듯 캐나다에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건국을 기리는 캐나다 데이(Canada Day)가 있다. 매년 7월 1일이면 캐나다 데이를 기념하는 퍼레이드와 축제로 캐나다 전역이 떠들썩해진다. 캐나다 사람들의 국기 사랑은 원래도 유별난 편이지만 캐나다 데이가 가까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새빨간 단풍잎이 그려진 캐나다 국기를 내걸고 조국을 향한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전 국민이 대동단결해 광복절을 기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캐나다에는 캐나다 데이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유럽인들이 캐나다 땅을 밟기 오래전부터 그 땅에 뿌리를 내고 살았던 원주민이 바로 그들이다. 캐나다 정부는 유럽인의 이주 전부터 북미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그 누구보다 앞서 그 땅에 뿌리를 내렸다는 의미를 담아 원주민을 'First Nations'라고 부르며 오랫동안 이들을 괴롭혔던 제도적인 차별을 없애고 그동안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가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건 원주민들에게 지금의 부강한 경제 대국 캐나다는 땅의 주인으로서 천하를 호령했던 선조들에게서 삶의 터전을 빼앗고 후손들의 삶을 망가뜨린 괴물일 뿐이다. 캐나다 정부는 19~20세기에 원주민 자녀들에게 캐나다식 생활양식과 교육 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기숙학교를 설립했고, 당시 기숙학교에서 생활했던 원주민 학생들은 폭력과 강압에 시달렸다. 원주민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대신

그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켜 철저하게 짓밟는 쪽을 택했던 캐나다 정부는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체벌과 학대를 외면했다.


당시, 캐나다 정부를 대신해 기숙학교를 위탁 운영했던 카톨릭 교구의 미흡한 관리로 많은 원주민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과거의 기숙학교 부지 곳곳에서 수백 구씩 유골이 발견되면서 당시의 끔찍했던 학교 운영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기숙학교 부지에서 집단 매장된 유골이 속속 발견되자 카톨릭의 대응에 세계의 눈길이 쏠렸다. 한동안 무대응이라는 실망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캐나다를 방문 원주민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전했다.




흔히 BC주라고 불리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중북부에는 과거 모피 교역의 중심지였던 포트 세인트 제임스가 있다. 캐나다 최대 소매업체인 허드슨 베이 컴퍼니의 무역 사무소였던 곳이 이제 캐나다의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지정돼 관광객들에게 개방돼 있다.


BC주 중북부 최대 도시인 프린스 조지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들판을 한없이 따라 간 에 만난 포트 세인트 제임스는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그 하늘을 떠받치는 스튜어트 호수를 배경으로 건설된 포트 세인트 제임스는 아름답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을 만큼 눈부셨다. 호수에서 일렁이는 물결은 잔잔하면서도 압도적이었고, 그곳에서 한가로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다. 과거 허드슨 베이 직원들이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당시 그곳에 있었던 작은 상점이 어떻게 운영됐는지 소개하는 포트 세인트 제임스는  캐나다의 옛 모습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 유적이었다.


 그곳에는 볼거리가 많았고, 먹거리도 맛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아름다운 풍경도, 역사적인 가치도, 맛있는 음식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를 가장 강렬하게 매혹시킨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역사 유적 내 모피가 쌓인 건물에 자리 잡은 그녀는 스튜어트호 주변의 원주민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설명해 줬다. 원주민들이 어떻게 곰을 비롯한 각종 동물을 사냥해 모피를 만들어내는지, 호수 주위에 어떤 전설이 내려오는지, 자신은 어떤 유년기를 보냈는지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던 순간, 그녀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원주민은 캐나다 데이를 기리 않습니다."


그곳에는 원주민의 흔적이 많았다. 프린스 조지에서 포트 세인트 제임스로 가는 길 곳곳에는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었고,

유적지 내에서는 원주민이 유창한 영어로 방문객을 안내하며 실제로 원주민이 사냥해서 만든 모피를 소개했고, 기념품 가게에는 원주민들이 만든 각종 공예품과 원주민 화가가 그린 다양한 작품이 있었다. 그들은 이제 모두 강압적인 캐나다의 원주민 동화 정책에서 해방돼 원주민 혈통이 확인된 사람들에게만 부여하는 특별 지위를 인정받고 캐나다인으로서 캐나다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터다.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환한 목소리로 방문객을 반기는 그들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캐나다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정복의 역사를 아름답게 포장한 조국의 탄생을 축하하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술집이나 식당에서 얼굴 색깔과 태생이 다른 원주민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안내받지 못하는 차별의 세월을 견뎌냈던 그들, 폭력적인 동화 정책에 희생돼 점점 희미해지는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캐나다인이라는 강요된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들의 미소가 조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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