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정 Mar 25. 2024

코로나에 대처하는 캐나다의 자세(1)

닫고, 닫고, 닫고

캐나다에서 늦깎이 대학생이 돼 팔자에도 없는 남의 나라 법을 공부했던 2020년, 중국에서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돈다는 뉴스가 나왔다. 중국과 캐나다를 오가는 인구가 많기는 했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안심하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이웃 나라로 퍼져나간다는 뉴스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코로나 환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듣고도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은 자신들의 안위나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염려도 하지 않은 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괜찮아?"라고 물으며 하필이면 중국이 한국 옆 나라인 게 안쓰러운 듯 그저 나를 위로했다. 캐나다와 아시아 사이에는 태평양이 있고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사는 아시아와 달리 캐나다는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이니 호흡기 질환이 대유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었다. 


하지만 2020년 3월이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코로나 환자 발병 국가가 동아시아에 국한돼 있었을 때만 해도 캐나다 정부는 수선을 떠는 법 없이 차분하게 상황을 관망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고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도 코로나 환자가 여럿 나타나자 이런저런 대응 방안을 고심하던 정부는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단숨에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캐나다 정부가 내놓은 히든카드는 국경 폐쇄였다.


캐나다 정부는 곧 국경을 폐쇄할 예정이니 해외에 체류 중인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중 귀국을 계획 중인 사람은 국경이 폐쇄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고 통보했다. 당시 우리 과에는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가진 교수가 무려 셋이나 있었고 데이비드 3인방 중 하나였던 불법행위법(tort law) 교수는 학기 중이었음에도 개인 사정으로 국경 폐쇄 발표 직전 네팔로 떠난 참이었다. 


캐나다 정부는 국경과 함께 많은 것을 닫아걸었다. 그중 하나가 학교였다. 국경 폐쇄와 함께 대학 캠퍼스도 폐쇄돼 현장 실습이 필수인 일부 학과를 제외한 모든 과의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항상 법정 드라마에서 갓 튀어나온 배우처럼 완벽한 슈트핏을 자랑하는 변호사였던 데이비드 교수는 네팔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며 운동복 차림의 꾀죄죄한 몰골로 줌(Zoom) 온라인 강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와 퀘벡주 가티노를 잇는 알렉산드라 다리 위에서 통행을 제한하는 경찰


캐나다가 닫아건 것은 국경과 대학 캠퍼스만이 아니었다. 코로나 확산을 경계한 캐나다 정부는 국경을 닫아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주 경계도 폐쇄했다. 온타리오주와 퀘벡주를 가르는 오타와강의 다리는 모두 폐쇄됐고 거주지와 근무지가 온타리오주와 퀘벡주로 나뉘어 있던 사람들은 출퇴근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


캐나다 정부가 오타와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을 폐쇄한다고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캐나다 총리 트뤼도의 아내 소피(현재는 이혼)가 SNS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 코로나로 커다란 불편을 겪고 있던 수많은 캐나다인을 분노케 했다. 선량하게 생긴 훈남 이미지로 많은 캐나다인의 지지를 받으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사과를 망설이지 않는 프로 사과러인 트뤼도. 그의 아내 소피는 온타리오주 오타와의 답답한 총리 관저를 벗어나 강 건너 퀘벡주에 있는 마당 넓은 별장에서 세 자녀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괘념치 않는다는 무언의 신호였을까, 선량한 미소 때문에 언제든 옳은 일만 할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이미 여러 차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는 트뤼도가 한 번 더 사과를 하는 것쯤이야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었을까.


놀이터 폐쇄를 알리는 경고문


캐나다의 폐쇄 행렬에는 놀이터도 포함됐다. 국경 폐쇄와 동시에 학교 교정도 이미 모두 폐쇄된 상태였던 데다 코로나를 예방하려면 일단 2주 정도 되도록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요란한 경고가 방송을 통해 날마다 나오는 나날이었으니 놀이터 폐쇄는 애교로 보이기도 했다. 온타리오주의 모든 놀이터를 폐쇄한다는 발표만으로는 아이들의 놀이기구 접근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졌는지 놀이터 앞에는 폐쇄를 알리는 노란색 경고문이 설치됐고 그네와 미끄럼틀은 접근을 막는 노란색 테이프로 칭칭 휘감겼다.


치료제도, 치료법도, 백신도 없던 때였으니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모든 것을 폐쇄하고 금지하는 것뿐이었다. 택배가 오거든 차고에 이틀쯤 두었다가 내용물을 꺼내고, 밖에서 들여온 모든 물건은 닦거나 씻어서 사용하고, 조깅을 할 때도 바로 앞에서 달리던 사람의 호흡기에서 나온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올 수 있으니 엇갈리게 뛰어야 한다는 식의 원시적인 예방법을 매일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시절이었으니 모든 것을 차례로 닫고 또 닫아걸었던 캐나다 정부의 노력은 말 그대로 눈물겨웠다. 




어떤 방법이 옳은지, 어디까지 애써야 할지 그 무엇도 분명하지 않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집 앞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에게도,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수다를 떠는 사람에게도, 같은 집에 살지 않는 누군가와 같은 차를 탄 사람에게도 벌금을 매겼던 시절. 안개가 걷히고 모든 것이 선명해진 지금에 와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캐나다 정부의 행정이 막무가내에다 과도하게 방어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듯 무엇 하나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던 그때로서는 닫고, 닫고, 또 닫는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캐나다식 대응이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선은 되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트 세인트 제임스에는 누가 사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