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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Apr 01. 2024

의자를 찾아라!

무스코카 의자 투어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땅덩어리가 부족해 건물을 위로 쭉쭉 뽑아 올릴 수밖에 없는 도시에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파트라는 공간이 가진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내 머리 위에도 똑같이 생긴 사각형 집에서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고, 내 발밑에도 똑같은 위치의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똑같은 위치의 침실에서 잠을 자는 누군가가 있고, 데칼코마니처럼 우리 집과 대칭을 이루는 옆집에도 동시에 대문이 열리는 순간 서로를 보며 화들짝 놀라는 이웃이 있다.


사방이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우리 집과 이웃집을 가르는 콘크리트 경계가 너무도 분명해 마치 진공 상태의 공간이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기라도 한 듯 이웃의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고독감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반면, 햇볕이 따뜻하게 쏟아지는 날 고요한 집의 오롯한 안온함을 느끼고 싶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앉아 있는데 같은 건물 어딘가에 사는 이웃이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시위라도 하듯 쿵쿵대며 문을 여닫고 요란하게 드릴을 박으며 평온을 깨뜨릴 때도 있다. 고독이 필요한 순간과 온기가 필요한 순간이 서로 엇갈리는 불협화음에 지친 사람들은 마당 있는 주택을 꿈꾼다.


마당을 꿈꾸는 사람이 그리는 마당은 저마다 다르다. 골프장이 부럽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관리된 잔디 위에 잘 가꿔진 공간의 품격을 한층 높여줄 장식품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흠 잡을 데 없는 마당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커다란 트램펄린과 미끄럼틀이 설치된 마당을 상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잠시만 소홀해도 잔디가 웃자라 마당이 정글로 바뀌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아예 처음부터 콘크리트로 뒤덮인 마당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테다.


언젠가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되면 볕 좋은 자리에 늘어져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잘 수 있는 편안한 의자를 놓고 싶다는 상상을 했었다.


캐나다는 땅이 넓은 나라라 공간에 대한 인심이 후해서인지 느긋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서 멋진 풍경을 바라보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곳에 거대한 나무 의자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메이플 공원의 무스코카 체어와 밴프 터널 마운틴 정상의 무스코카 체어


언젠가 마당을 갖게 되면 어떤 의자를 놓을지 구체적인 모양을 그려본 적은 없었다. 내 상상 속 마당에서 비어 있었던 의자 자리에 콕 들어와 박힌 게 바로 캐나다에서 만난 무스코카 체어였다. 물론, 무스코카 체어의 모양새 자체가 매우 특별하거나 다른 의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건 아니다. 사실, 미국에도 높이가 2인치 더 높고 폭이 2인치 더 넓다는 차이가 있을 뿐 무스코카 체어와 모양이 거의 비슷한 아디론댁 체어가 있다.


나무로 만든 휴식용 의자인 아디론댁 체어와 무스코카 체어는 각자 다른 이름을 붙여서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의자에 앉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쌍의 닮은 꼴이다. 1903년에 뉴욕주 북부의 아디론댁 산을 찾은 토머스 리(Thomas Lee)라는 사람이 탄생시킨 아디론댁 체어를 본떠서 만든 것이 무스코카 체어이니 당연한 일이다. 가급적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편인 개인적인 선호에도 불구하고 무스코카 체어가 흔들림 없는 나의 원픽이 된 건 '무스코카'라는 이름 때문이다.


차를 타고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2시간쯤 올라가면 나오는 무스코카는 헌츠빌, 알곤퀸 주립공원과 함께 캐나다의 단풍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무려 1,600개의 호수가 있어 토론토 사람들이 휴양과 여가를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한 무스코카는 서울로 치자면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가 여유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향하는 가평이나 양평쯤 되지 않을까 싶다. 무스코카(Muskoka)라는 지명은 무스콰키(Musquakie, '전쟁에서 쉽게 돌아서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라는 원주민 족장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무리 예뻐 봐야 단풍은 단풍이고, 아무리 근사해 봐야 호수는 호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오산이다. 무스코카의 단풍은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아름답고 알곤퀸에서 발원해 조지아만까지 서쪽으로 흘러가는 무스코카의 물길은 세상의 모든 감탄사를 삼켜버릴 만큼 투명하게 일렁인다.


무스코카의 관광업이 성황기에 접어든 무렵, 편안한 의자를 찾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스코카의 장인들이 아디론댁 체어와 거의 비슷한 모양새로 만들어 무스코카라는 지명을 붙인 의자가 바로 무스코카 체어다. 무스코카 체어가 그저 지나가다 한 번 앉았다 일어서고 마는, 이름 없는 흔하디흔한 의자가 됐을 수도 있다. 길가에 놓여 있는 세상 모든 벤치에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닐 테니.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원조인 아디론댁 체어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 평범한 나무 의자에 무스코카라는 이름이 붙어, 무스코카 체어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단풍과 호수라는 막강한 관광자원으로 무장한 무스코카의 관광청은 무스코카가 자랑하는 10곳의 절경 앞에 그곳의 단풍을 닮은 아름다운 색깔을 덧입은 무스코카 체어를 놓아두었다. 언제나 귀한 것을 얻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듯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면 '정말로 이 길을 따라가면 무언가 볼 만한 것이 나올까?'라는 의심을 꾹꾹 밀어 누른 채 산길을 굽이굽이 운전하고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 무스코카 관광청에서 제공하는 위치 정보(https://www.discovermuskoka.ca/view-lakes-chair-tour/)를 믿고 걷고 또 걷다 보면 결국 무스코카 체어가 나온다. 그곳에 도착한 사람에게는 뜻밖의 기회가 주어진다.


더는 관찰자가 아닌 그 풍경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놀라운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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