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 스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패스트푸드점이다. 차를 몰고 패스트푸드점을 빙 둘러싼 통로를 따라 들어가 첫 번째 창구에서 마이크를 통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한 다음 두 번째 창구에서 음식을 받는 그런 모습 말이다. 한때 드라이브 스루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도 이제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제법 많다. 도심과 가깝고 차량 통행이 많은 곳에서는 이제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스루 매장뿐 아니라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도 종종 보인다.
세계 최초의 드라이브 스루 음식점은 1948년에 고객이 자동차에 앉은 채로 음식을 주문하고 받아갈 수 있도록 양방향 스피커 시스템을 도입한 미국의 유명 버거 체인 인앤아웃 버거(In-N-Out Burger)다.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드라이브 스루 시스템은 이후 많은 나라로 퍼져나갔고, 특히 땅이 넓고 인구 밀도가 낮아 미국과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차를 타고(drive) 지나가는(through, thru) 드라이브 스루(drive-thru) 방식과 거의 유사한 드라이브 인(drive-in)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보다 훨씬 빠른 무려 1921년이었다. 당시, 테네시 스타일로 바비큐 한 돼지고기가 들어간 버거를 판매하던 피그 스탠드(Pig Stand)라는 음식점은 자동차를 타고 온 고객들이 차에 앉은 채 음식을 주문한 후 그대로 받아서 먹을 수 있는 드라이브 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피그 스탠드 드라이브 스루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고 드라이브 인은 자동차를 타고 매장으로 들어가 자동차에 앉은 채로 해당 매장의 서비스를 즐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동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캐나다는 땅이 넓은 나라여서 그런지 자동차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다.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대도시의 도심이 아니라면 건물을 굳이 고층으로 쌓아 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땅이 넘쳐나는 나라이다 보니 교외 쇼핑몰은 대개 단층 건물이 기다랗게 늘어선 형태를 띤다. 규모가 크지 않은 쇼핑몰에 가도 어디에서든 드라이브 스루 매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팀홀튼 드라이브 스루,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캐나다 국민 버거인 A&W 드라이브 스루 등 식음료 드라이브 스루 매장뿐 아니라 자동차에 앉은 채 ATM에서 돈을 뽑을 수 있는 은행 드라이브 스루도 곳곳에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커피 매장 드라이브 스루야 패스트푸드 드라이브 스루와 메뉴가 약간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 운영 방식이나 서비스 카테고리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나마 조금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은행 드라이브 스루뿐이다.
드라이브 스루나 드라이브 인의 적용 범위는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비즈니스 영역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동차를 적극 활용하는 서비스 방식은 상상력 넘치는 기발한 예술의 영역도 깊이 파고들었다. 캐나다에서 만난 드라이브 스루 중에는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너무도 기발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거대한 공룡 모형이 곳곳에 전시돼 있는 온타리오주 인디언 리버의 드라이브 스루 공룡 공원은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실제 크기 공룡 모형들이 곳곳에 설치된 공원을 따라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영화 속 주라기 공원을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드라이브 스루 공룡 공원(Dinosaur Park)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캐나다 곳곳에서 화려한 LED 조명을 활용한 드라이브 스루 행사가 개최된다. 빛의 마법(Magic of Lights) 행사가 개최되는 오타와의 웨슬리 클로버 공원은 매해 겨울 평범한 공원에서 LED 조명과 갖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며진 화려한 드라이브 스루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드라이브 스루 공원
전 세계가 코로나로 고통받았던 2020년 겨울에는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한편에 폴라 드라이브 스루가 설치됐다. LED 조명을 이용해 건물 여러 층을 빛의 터널, 크리스마스트리, 엘프, 루돌프 등이 가득한 크리스마스 마을로 꾸며놓은 30분 길이의 드라이브 스루 전시 공간은 말 그대로 환상의 나라였다.
피어슨 공항의 폴라 드라이브 스루(Polar Drive-Thru) 폴라 드라이브 스루 끝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는 손님들을 맞이할 채비 중인 산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충격을 준 캐나다 최고의 드라이브 인은 몰입형 고흐 전시회였다. 몰입형 고흐 전시회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19년 프랑스에서였다. 하지만 드라이브 인 형태의 몰입형 고흐 전시회가 세계 최초로 개최된 곳은 토론토였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0년, 캐나다 정부는 매우 강력한 코로나 대응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이런 정부 대응에 발맞춰 예술이 진화한 결과가 바로 드라이브 인 전시회였다.
있는 그대로의 그림을 전시하는 대신 다양한 효과와 장치가 추가된 미디어 아트를 보여주는 몰입형 전시회에 대해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토론토에서 드라이브 인 전시회를 만나기 전에는 나 역시 원작자의 의도나 본질을 뒤덮는 불필요한 외부적인 효과가 가미됐다는 생각 때문에 미디어 아트형 전시회를 불호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토론토 도심으로 내려가 신문사 인쇄 시설을 개조한 드라이브 인 전시회장으로 들어가 지정된 자리에 차를 세우니 상상하지 못했던 별세계가 펼쳐졌다. 사방을 에워싼 벽면과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 바닥까지 눈길이 닿는 곳은 모조리 고흐 세상이었다. 정지 상태의 그림을 보며 관람객이 각자 나름의 상상력을 펼쳐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보다 원작을 생동감 넘치는 미디어로 재탄생시켜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로 관림객을 이끌어가는 미디어 크리에이터의 해석과 설명이 미디어 아트에 아름답게 녹아들어 있었다.
드라이브 인 반고흐 전시회에서 차에 앉아 바라본 전시회장 규모나 웅장함만 따진다면 2022년에 워커힐 빛의 시어터에서 관람한 클림트 전시회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화려하고 근사했다. 하지만 자동차에 앉아서 사방을 에워싼 그림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서서히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말 그대로 전시회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기분이었다. 화려하고 말끔한 도심 한복판 호텔방보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강가 통나무집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좀 더 깊이 동화되는 그런 차이랄까.
워커힐에서 진행된 빛의 시어터 세상 모든 것이 텍스트보다는 미디어 중심으로 바뀌는 트렌드에 따라 전시 분야에서도 미디어 아트 전시회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 덕에 미디어 아트 전시회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토론토에서의 드라이브 인 고흐 전시회가 아니었다면 미디어 아트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놓치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썩 내키지 않아도 막상 해보면 좋은 그런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