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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Dec 25. 2015

배신자

난 그랬다.
 
술자리에선 항상 영락없는 배신자가 되고 말았다.
 3차로 4차로 이어지는 길고 긴 술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끝까지 살아남아


아니, 말짱한 정신으로
 맞은편에 앉은 이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며
 툭툭 털어내듯 목구멍 속으로 사라지는
 소주가 모두 몇 잔인지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끝까지 버텨보기만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늘. 다들 신이 나 부어라 마셔라 할 무렵
 자리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게 나였다.
 
떠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이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했는데..
 
난 항상.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했다.
 
술 한 잔 제대로 못하는 나같은 쑥맥들은
 일찍 사라져 주는 게 좋은 건지.
 
술도 못 마시면서. 괜히 이제 그만 들어가야겠다며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이나 끼얹지 말고
 조용히, 혹은 취한 척 떠들어대며 자리를 지켜야 하는 건지.
 
다들 믿지 못하겠지만.
 난, 다만 내가 그 자리의 주인이 아닌 것 같아..
 항상 일찍 떠나오곤 했지만..
 

항상. 월세가 밀린 세입자를 밀어내고 들어앉은 주인처럼
 당당한 표정으로 웃고 떠들며
 자리를 지키는 그대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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