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정 Mar 06. 2024

한없이 달콤한 열등함

부족함을 인정할 때 찾아오는 것들

열등하다는 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남보다, 평균보다 못하다는 게 어찌 즐거운 일일 수 있겠는가. 학교에서는 남보다 못하면 ‘학생의 본분인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열등생’으로 낙인찍혀 무시당하기 일쑤인 데다 팀별 과제에서도 은근히 소외되고, 사회에서는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열등감과 열패감에 사로잡힌 ‘루저’라고 조롱받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남보다 나은 면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은밀하게 힐끗힐끗 상대를 관찰한다. 그런 고군분투 끝에 티끌만 한 우위라도 발견하면 당장 확대경을 들이대 자신이 가진 장점을 수십, 수백 곱절 부풀려서 받아들인다. 이런 식의 긍정이 버거운 삶을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것’으로 바꾸는 마법의 만트라가 된다고 해서 비교를 통해서 우위를 확인하는 태도를 권장하기는 어렵다.     


정신 건강 전문가들은 자존감을 강조하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미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서열을 정하는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존심을 세우기에 급급하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겉모습이 비슷하고 그 의미마저도 닮은 구석이 있지만 둘의 실체는 판이하다. 아름답게 빛나건 형편없이 망가지건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자존감은 건강한 삶의 자양분이 되지만 오로지 남에게 굽히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존심만 세우면 될 일도 안 되고 쉽게 끝날 일도 어려워진다.      


열등함과 열등감 역시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서로 전혀 다르다. 무언가를 잘하지 못하는 열등함이 열등감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남보다 못하거나 무가치한 사람으로 단정짓기보다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실 자체를 거름으로 삼으면 열등함 자체를 얼마든지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그냥저냥 나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내심 평균은 되리라 믿으며 살았다. 평균은 된다는 빈약한 믿음은 내 삶이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다는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평균 가까이에서 근근이 버텨내라는 채찍질이 되기도 했다. 평균의 대열에서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불안함에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적당히 잘 될 일만 골라서, 적당한 속도로 적당히 그 일을 해내면서 실패의 그림자와 마주하지 않도록 애썼다. 나쁘지 않았다. 물론, 끝없이 실패하면서도 자꾸만 일어서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하지만 나는 실패할 만한 일에는 애당초 발을 들이지 않았고 뿌옇게 흙먼지가 날아오르는 흙길 위에서 지친 두 발을 힘겹게 옮기며 살 생각 같은 건 없었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적당히 매끈하게 닦인 포장도로 위에 서서 평균에 만족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나의 열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기어이 찾아왔다. 거지도 영어로 구걸하고 세 살 먹은 아이도 영어로 떼를 쓰는 나라 캐나다에서 영어로 소설을 쓰고 법을 공부하면서 그동안 나의 밥벌이가 되어준 미천한 영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열등감은 나의 입을 막고 나의 숨을 조였다. 그들보다 나의 영어가 하찮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다듬은 후에야 말을 내뱉고 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계속되자 나는 피곤했다. 끝없이 피곤한 나날을 견뎌내며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할바에야 내 영어의 열등함을 인정하고 제대로 배우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등함을 인정하면 열등감이라는 덫에 사로잡혀 불편하고 초라한 나날이 계속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지만 늘 그렇듯 불안이 부추긴 나의 근거 없는 짐작은 틀렸다. 열등함을 인정한 후에 찾아온 것은 열등감이 아닌 용기였다. 매일 질문하고, 매일 틀린 말을 하겠다고 다짐하자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다. 그들의 모국어보다 나의 외국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낼 용기, 모를 아는 체하지 않을 용기, 당당하게 틀릴 용기.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자신의 열등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다른 누군가의 먹잇감이 돼 끝없는 열등감의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열등함을 인정하는 일은 꽤 달콤하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열등함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세상은 제법 친절하다. 자존심이라는 갑옷을 풀어헤치고 자신을 좀 더 나은 성장의 길로 이끌어줄 것을 부탁하는 사람에게 날카로운 단검을 냅다 꽂을 사람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드미트리 시쉬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