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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Aug 30.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일곱째 날

Larrabetzu-Bilbao 13.99km

2023.4.20


해가 뜨기 전인 새벽 5시 반. 새벽 일찍 깨신 어르신들이 짐을 챙기시는 소리에 나도 잠이 깼다. 짐을 챙기고 있는데 내 옆에 그 남자도 일어났는지 갑자기 연극에 나오듯이 큰 소리로 “하하하, 하하하” 하고 웃어서 나는 조금 자리를 피했었더랬다. 나만 그 남자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나 보다. 내가 배낭을 식탁 의자로 옮겼을 때, 알고 보니 사실 모두들 그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카미노 길에 이처럼 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처음 보다 보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짐을 다 싸고 해가 뜨는 것을 보면서 알베르게를 나왔다. 걸으며 점점 주변이 환해지고 코끝이 시린 공기가 따뜻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30분쯤 산등성이를 향해 걷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곰 한 마리가 나를 항해 무심히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개는 처음 봤다.

산등성이에서 만난 늑대처럼 큰 양치기 개

잠시 인사를 나누고 다시 빌바오를 향해 걸었다. 오늘 걷는 거리는 약 14킬로. 짧은 거리라고 만만하게 봤지만 14km 중 거의 10km가 매우 가파른 등산길이다. 

빌바오 가는 길, 10.6km가 남았다.

전날 빌바오를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아 왜 그러지 하면서 구글에 ‘빌바오’를 검색해 봤다. 알고 보니 빌바오는 예술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었다. 과거 철강업으로 융성했던 도시에서 쇠퇴해 가는 빌바오를 구겐하임 재단에서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전 세계에서 찼는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되었다.

기찻길을 지나서
아침부터 땀을 흠뻑 흘리고 산을 올랐다 내려오니 빌바오의 대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빌바오는 산티아고 대성당, 누에보 광장,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미술관, 그리고 주비주리 다리 같은 유명 관광 명소가 있는 도시이다. 구겐하임 미술관같이 생각지도 못한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게 되다니 어제부터 설렜더랬다.

숙소 앞 식당 디스플레이

빌바오 시내에 11시가 조금 넘어 들어섰다. 오전 일찍 도착했으니 먼저 숙소로 향하여 짐을 맡길 수 있는지 문의한 후 체크인 시간까지 짐을 맡겨 놓기로 하고, 먼저 그 유명하다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미술관을 가는 길에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어 잠시 들려 기도를 했다.

14c 고딕 양식의 산티아고 대성당 내부와 스테인글라스

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곳이어서 사실 안에 있는 작품은 자주 들렀던 테이트모던과 비슷한 작품들이라고 생각되어 들어가 볼 마음지 않았다. 그 대신 밖에 있는 외부 작품을 보며 명소를 다녀온 것으로 기념하기로 했다. 외부 전시 중 특히 Puppy라는 조형물빨리 보고 싶었다. 꽃으로 뒤덮인 거대한 강아지라니.

미술관 가는 길의 꽃집

미술관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발이 더욱 빨라졌다. 멀리서도 한눈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로 미술관 앞에서 떡하니 미술관 건물을 지키듯 서 있어 지나칠 수 없는 퍼피가 있는 곳이다.

빨주노초파남보 퍼피들

도착하니 모두 다 퍼피를 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도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체험 나온 단체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사진 찍는 모습이 재밌었다. 아이들은 빨리 찍으라고 하고, 선생님은 아이들의 서 있는 구도가 통 마음에 들지 않아 이쪽, 저쪽 구도를 바꿔보고, 아이들은 선생님의 열정이 귀찮은 듯이 투덜투덜거렸다. 이들은 지켜보는 다른 관광객도 재미있는지 지켜보며 킥킥 웃고 있었다.

구겐하임 퍼피와 단체 사진을 찍는 학생들

학생들의 단체 사진 타임이 끝나자, 혼자온 나는 또 차례를 놓쳐 다른 커플, 친구들끼리 온 여자아이들, 노부부 등 여러 번의 포토 타임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나도 여러 각도에서 퍼피 사진을 찍었다.

한 눈에 볼 수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모형

사진을 찍고 미술관 안의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봤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면 그 미술관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기념품으로 만들어 놓을 거라 생각해서이다. 작은 기념품 가게를 둘러본 후 밖으로 나가 뒤쪽으로 이동했다.

구겐하임 미술관 야외 전시관 멀리 보이는 빨간 다리

 미술관 뒤 쪽에는 거미 조형물, 바벨이 전시되어 있고 이 작품들을 모사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 몇몇, 미술관을 놓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강 따라 산책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구겐하임 거미
구겐하임 바벨

나도 이 강을 따라 숙소를 향해 걸었다. 

서둘러 미술관을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빌바오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건축양식과 색깔에서 느껴지는 빌바오 건물들이 참 아름답다.

빌바오의 알록달록 건물들

2시가 조금 넘어 숙소로 돌아와 침대를 배정받고 방에 들어왔다. 도시의 호스텔은 참 오랜만이다. 오늘 자는 곳은 순례자 머무는 곳이 아니기에 안전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캐비닛에 짐을 모두 넣어 놓고 열쇠를 채워뒀다.

한 상점의 빌바오 특산물 모음집

짐을 정리한 후 씻고 나니 3시 반쯤이다. 다시 시내로 나가 이번에는 빌바오 미술관으로 향했다. 멀리 사람들이 옹기종이 앉아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큰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은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지나며 멋있는 건축물을 감상해본다.

가만히 들여다 보기

빌바오 미술관은 스페인 출신의 여러 고전 화가들의 작품이 있다고 하여 방문해 보기로 했는데 이상하게도 현재는 입장료가 무료였다. 들어가 보니 무료인 이유가 있었다. 피카소 같은 유명한 그림이 타 전시회에 대여 중이고 전시를 준비 중인 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전 그림 감상을 좋아하기에 얼마 없는 14세기, 15세기 그림을 하나하나 열심히 본다. 설명이 스페인어여서 그림만 자세히 살펴봤다.

빌바오 미술관과 입구의 특별 전시

미술관을 나와 이번에는 주비주리 다리를 건너 숙소로 돌아왔다. 주비주리 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갔을 때의 에라스무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 또한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강 주변에는 역시나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도 벤치에 앉아 나의 보고 싶은 개조카 사진을 꺼내 봤다.

주비주리 다리

숙소에 돌아와 공용 주방에서 바게트에 샐러드, 크림치즈를 넣은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쓰고 있는데, 어제 숙소에서 날 봤다는 여자아이가 다가와 인사를 한다. Lene는 독일에서 온 26살의 작은 여자 아이다. 영어를 캐나다 사람처럼 유창하게 한다. 어제 숙소에서 잘 잤는지 이야기하다 오늘 하하하 크게 웃은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본인은 이미 4번이나 같은 숙소에서 지냈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많이 봤이미 순례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고 한다. 리고는 이어서 조금 있다가 첫날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이 빌바오에 있어 만나러 갈 예정인데 혹시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길래 저녁은 먹었지만  같이 가기로 하였다. 만날 사람들이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하길래 혹시나 싶었기 때문이다.

저녁 7시 무렵, 네르비온 강 주변과 벤치

그렇게 약속 장소로 가보니 정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바로 데바에서 헤어진 애나와 늘 애나와 같이 다니시는 이름은 모르는 네덜란드 아저씨, 그리고 Zenarruza 수도원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며 본인의 아시아 여행기를 들려준 로빈까지 모두 다  한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껴앉고 인사를 했다. 이런 만남이 산티아고 순례길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길 위에서 만나 헤어질 때는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는, 일기일회의 인연이 닿는 곳.

스페인 와인은 달고 진하다.

그렇게 서로가 반가워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모두 함께 저녁을 먹으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우리 중 아무도 비건은 아니었지만 로빈이 비건 식당을 찾았다고 하여 그리로 향했다. 난 저녁을 먹은 탓이라 간단히 샐러드를 시키고 다 같이 와인을 시켜 나눠 마시며 그동안의 밀린 이야기를 했다. 이룬에서 출발한 지 일주일이 된 시점이라 각자 그동안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걸으면서 봤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네덜란드 아저씨가 사실은 69세 할아버지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걷다가 힘이 들면 택시를 타고 숙소까지 갔다가 그다음 날 다시 택시를 타고 그 자리로 돌아가서 걷기를 시작하신다고 하셨다. 정직함 편안함의 멋있는 조합이라는 소감이 들었다.


저녁 9시 반이 다 되어가 이제 내일 떠날 길을 위해 작별 인사를 하고 각자의 카미노를 응원하면서 또 헤어졌다. 레나만 빼고 세 명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빌바오에 하루 더 머물 예정이라고 했다.

어딘가의 빌바오 타일과 그림

난 숙소로 돌아오기 전 다시 구겐하임 미술관을 들리기로 했다. 원래 레나를 만나기 전 저녁을 먹은 후 빌바오의 야경을 보러 다시 나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밤 시간, 다시 만난 퍼피와 바벨 조각상

늦은 시간이었지만 거리마다 불빛이 밝고 아직까지 열려있는 카페와 식당 덕분에 거리에 사람들도 제법 많아 안전하게 퍼피도 다시 보고 낮에 걸었던 주비주리 다리를 야경 속에서 다시 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도시는 바쁘고 복잡하지만 그 느낌이 익숙하고 편안하다. 내가 살기 이전부터 존재한 역사와 예술을 그 길을 걷고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다.


떠나기가 역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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