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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Aug 30.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여덟째 날

Bilbao-Pobena(Muskiz) 32.71km

2023.4.21


어젯밤은 일기에 쓰고 싶지 않은 불쾌한 일로 밤새 잠을 설쳤다. 결국 잠을 포기하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짐을 챙기는데 스카프와 손수건이 문득 어디에 있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제부터 안 보여 사물함에 넣어놓은 줄 알았는데 어디선가 잃어버린 것이다. 체크인하다 잃어버린 것 같은데 숙소 직원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이제 슬슬 물건을 하나씩 잃어버리기 시작한 시점이 온 것이다.


작년 프랑스길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숙소에 물건을 하나씩 두고 오거나 길에 흘리는 경우가 있었다. 의자 밑에 널어놓은 티셔츠를 두고 오고, 식당에서 모자를 잃어버리거나 하는 식이다. 프랑스길을 걸을 때 가방에 매달았던 스마일 장식품과 자물쇠는 산 길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스카프와 손수건을 잃어버린 것을 시작으로 점점 물건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좀 더 정신을 차리고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용 장소로 나와 신발을 신는데 같은 방에서 잔 여자아이가 아침을 먹으러 나왔는지 나보고 잘 잤는지 묻는다. 본인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하며 덴마크에 사는데 혼자 빌바오에 관광을 왔다고 했다. 어젯밤 있었던 일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잘 못 자 피곤한 얼굴로 이제 걸으러 가야 한다는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빌바오의 강을 따라 쭉 걸어 올라가 무스키즈 조금 위에 있는 포베나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잘 계획이었다. 숙소를 나와 도심을 벗어나 변두리를 걷는데 길고양이 두 마리가 보였다. 순례길에 걷다 주변을 돌아보면 늘 길고양이가 있다.

길 고양이 두마리

빌바오 도시 끝 무렵을 지나갈 때, 우연히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그림을 배우고 계신 그림 교실을 유리 너머 지켜보게 되었다. 선생님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께 손가락과 찰칵찰칵 입모양으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쭤본 후 창문 너머 찍었다.

어르신들의 미술 교실

이제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 강을 따라 계속 걷다 보니 곤돌라 정거장이 나왔다. 이곳이 어제저녁을 먹으며 로빈과 레나가 강 따라 위로 걸으면 곤돌라를 타고 강을 건넌다고 이야기했던 그곳인가 보다. 이 곤돌라는 빌바오에서 최초로 사람과 물건을 싣고 건널 수 있게 만들어진 상업용 곤돌라라고 했다. 곤돌라를 타고 건너는 깃은 50센트, 꼭대기 다리 위로 올라가 걷는 것은 9.50유로라고 한다.

비스카야 다리, 164M × 45M

스페인어로 쓰인 무인 자판기에서 표를 어떻게 끊어야 할지 몰라 기계 앞에서 가만히 보고 있자 미국에서 오셨다는 어르신이 이렇게 했더니 표가 나오더라 하시며 알려주셔 표를 살 수 있었다. 사람과 차를 싣고 곤돌라는 20초 정도 짧은 시간에 건너편으로 이동하였다.

곤돌라에서 내려 해안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난 것을 보게 되었다. 주차된 차를 지나가던 차가 뒤에서 받은 모양이다. 어디에서나 안 좋은 일은 일어나는구나 생각하며 다시 걷는다.

해안가 마을, 가지런한 재활용 쓰레기통

걸으며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가 그 어느 때보다 절경이다. 이런 풍경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걷다가 멈춰 파란색의 바다와 하늘이 담기도록 사진을 자주 찍게 된다.

하늘이 하얗게 구름이 가득하면 바다도 하얗게 된다.

포베나까지 1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해변 모래사장을 지나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지나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봉사자로 보이시는 나이 드신 호스피탈로가 North Korea?라고 물어보신다. 농담을 하시고 싶으신가 싶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는 별말 없이 여권을 펼쳐 보여드리고 체크인을 마쳤다.


침대를 배정받은 후, 배낭을 내려놓으니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 것인지 자리에 앉자마다 몸이 방전된 듯이 손과 팔이 저리고 힘이 빠져 사물함을 등지고 기대어 주저앉아 한참을 있었다. 이렇게 몸이 힘든 것은 처음이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 싶었다.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닥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어제 봤던 레나가 벌써 이 숙소에 와 있어 눈인사를 나눴다.

Pobena, 1km, 15min

그리고 수도원에서 만난 독일인 그룹도 여기서 다시 만났다. 식물 치료를 한다고 하셨던 아주머니가 날 알아보셨는지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다. 그런데 모두들 내가 얼굴이 창백하여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으니 지나가며 괜찮은지 한 번씩 물어보신다. 나는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며 기운이 돌 데까지 마냥 앉아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과자과 바나나를 손에 쥐어주고 가셨다.

작은 해수욕장을 건너 멀리 보이는 곳이 포베나 마을이다.

오늘 저녁은 슈퍼가 알베르게에서 1.2km나 떨어져 있다고 해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나를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눠주신 것이다.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40분쯤 앉아 있었을까. 조금씩 몸에 온기가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일어나 천천히 씻고, 아주머니가 주신 바나나와 과자를 먹고 저녁 7시쯤 일찍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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