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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Aug 29.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다섯째 날

Markina-ZiortzaBoilbar(Zenarruza)7.45km

2023.4.18

  

돌로 만들어진 수도원의 아침은 냉기로 코가 시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으로 갔는데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시 침대로 갈까 하다 문 앞에 서서 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괜히 문 앞을 서성이며 시간을 축냈다. 15분쯤 지나자 안에서 호스피탈로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 핫초코를 만들고 어제 남은 바게트에 샐러드, 치즈를 넣어 아침으로  먹으며 오늘 아침 시간을 보낼 카페를 검색했다.


작은 마을인데도 알베르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페가 두 세개가 모여 있었다. 그중 어제 마을에 들어오면서 봤던 Opela라는 카페에 가기로 정하고 짐을 싸러 침대로 돌아왔다. 매일 아침마다 싸는 짐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줄어들진 않는다. 체크아웃 시간인 8시에 호스피탈로가 박수를 짝짝 치면서 나가야 할 시간임을 알려주셨다. 어차피 카페에 갈 것이기 때문에 에코 가방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을 몰아넣고 어깨에 걸친 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벤치에서 짐을 정리했다.


한적한 시골에 있다고 보기 힘든 매우 현대적인 카페, Opela. 아침 7시부터 문을 열고 젊은 사장님이 계시다. 사방이 유리여서 출입문을 찾는데 조금 헤매다가 안의 사장님의 눈인사에 문을 밀고 들어갔다. "부에노스, 카페콘라체 플리즈" 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커피를 받아와 본격적으로 그동안 자기 전 대략 써 놓은 일기를 다시 읽으며 다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잊기 전에 다시 한번 며칠 전 걸으며 봤던 것,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본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잘 간다. 앉아서 글을 쓰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아기와 함께 카페에 온 가족들의 모습을 창밖으로 지켜보기를 몇 번 반복하자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늘 걸을 길이 8km가 안 된다 하더라고 이제 그만 출발해야 할 때이다. 11시쯤 짐을 챙기고 사장님께 그라시아스 인사를 건네고 걷기 시작하였다. 오늘 가는 곳 또한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인근에서 유명한 맥주를 생산하는 곳이고,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어서 머물기로 결정한 곳이다.


약 8km지만 만만치가 않다. 수도원이 마을 한가운데 있을지 만무했다. 산을 오르고 더 산속 골짜기로 들어가 수많은 양 떼와 염소들, 동키들을 만난 후 멀리 금색, 은색, 검은색 돌로 만들어진 수도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쪽 길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

안내문에는 체크인 시간이 오후 3시 반부터인데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알베그레 앞에서 앉아 있으려 했다. 넓은 수도원 부지 안으로 들어가 알베그레를 찾아 들어가는데, 나를 발견한 수도승 한 분이 알베그레? 하고 손짓으로 반겨주셨다. 영어와 스페인어의 의사소통 불가의 상황에서도 상황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체크인하며 오늘 수도원 체험이 몇 시 인지 문의하니, 오늘은 예정된 일정이 없으며 9시 20분쯤 순례자를 위한 작은 미사만 있다고 하셔서 매우 아쉬웠다. 그렇게 체크인을 일찍 마치고 침대 배정을 받고 나자 오늘은 빨래를 충분히 할 시간이 생겼다. 빨래를 다 하고 난 후 햇볕이 바른 곳에 널고, 수도원 뜰에 기대어 앉아 아침에 쓰다만 글을 이어 쓴다.


벽 한편에 기대어 글을 쓰고 있는데 수도원에 올라오면서 당나귀를 쓰다듬을 때 나를 지켜보며 "올라!" 하고 인사를 건네주셨던 노부부를 다시 만났다. 햇볕에 몸을 녹일 겸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두 분 다 70대처럼 보이는데 이 산길을 함께 오르신다는 것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부부가 함께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같이 공유하고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리라.


수도원 내부의 잔디밭과 나무

덴마크에서 오셨다는 노부부. 잠시 혼자 앉아 계시는 할머니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할머니는 들리는 새소리가 어떤 새인지 알려주셨다. 조금 뒤 할머니 옆으로 오신 할아버지는 이전에 나이지리아에서 일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고, 딸이 런던에서 지내며, 사위는 나이지리아 사람이라서 12년 전에 다녀와보신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스페인의 날씨, 덴마크, 산티아고 걷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프랑스길을 작년에 다녀왔다고 하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으셨고, 난 프랑스길은 이 북쪽 길보다 좀 덜 힘든 편이라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매일 산을 오르지는 않는다고 뒷붙이면서, 하지만 그만큼 보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고도 말씀드렸다. 그리고 난 문득 스웨덴은 커피가 얼마인지 궁금해져 여쭤보니 한국과 얼추 비슷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웨덴은 쉥겐 국가이지만 유로화를 쓰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는 지금 덴마크 날씨는 스페인보다는 추워서 4월에 이렇게 푸릇푸릇한 자연을 보게 되어 참 좋으시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시간인 8시가 되었다.

소박하지만 맛있는 저녁

식당으로 들어가니, 좋은 냄새의 파스타와 바게트 빵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릇에 파스타를 받아 자리에 앉으니 아까 막 도착해 체크인할 때 나보다 먼저 온 젊은이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체크인할 때 우리나라 편의점 의자 같은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던 년. 내가 빨래를 하고 있을 때 어떻게 빨래를 했는지 물어보며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자기소개를 했었다. 저녁을 먹으며 본인이 아시아에 한국 빼고는 여러 군데 다녀왔다는 것, 이룬에서 여자친구와 산티아고를 같이 출발했는데 각자 본인의 산티아고 걷기로 하고 지금은 따로 걷고 있다는 것, 곧 30살이 되어가는데 제법 괜찮은 직장을 다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 태국, 대만 등 아시아를 여행 다녔으며, 한국 또한 가고 싶었지만 아직까진 버킷리스트에 있다는 점 등등 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순례자의 안전과 축복을 위한 작은 미사, 내 차례를 기다리며

그리고 내가 곧 30살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둔 후 여행 다니는 것에 대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는지 물어봤을 때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해 ‘인생이 좋은 직장 다니고 돈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여행을 다니며 영감을 얻고 직장 밖에서 얻는 인생 경험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거대한 결심이나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고, 9시 20분에 순례자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는 짧은 미사에 참석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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