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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Aug 28.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넷째 날

Deba-Markina 24km

4.17. 월요일


어제 숙소에 일찍 도착하고 한 시간 동안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북쪽길 숙소의 대부분 침대는 매트리스에 파란색 고무 재질의 방수 커버로 씌워져 있고 숙소에 등록할 때 얇고 하얀색의 1회용 커버를 받아 그 위에 씌운 후 사용하는데 찢기기 쉬운 일회용 커버를 매트리스에 씌우는 게 오늘따라 힘들다. 커버를 씌운 후 잠시 쉬려고 누우니 다시 일어나 씻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유체이탈하듯이 영혼만 일어나 샤워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억지로 3분짜리 샤워를 하고 돌아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침대로 돌아왔다. 이 와중에 바로 옆에 창문이 있어 다시 선크림을 발랐다.


오후부터 눈이 시큰하고 목이 아파서 타이레놀 2알을 먹었다. 어제 비 맞고 계속 걸은 것이 떠올랐다. 저녁에는 코도 막히고 기침도 나와서 감기약 2알을 먹고 귀마개와 안대까지 무장을 하고 잠을 다. 오늘은 침대 6개가 있는 방에 아저씨들만 가득한 방이어서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또 설치겠거니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깊게 잠을 자고 일어났다.


불을 켜지고 배낭 지퍼가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잠에서 깨니 새벽 6시 반이다. 아침에도 감기약을 먹기 위해 시리얼바를 먹고 약도 2알 먹었다. 스페인 북부의 4월은 아침과 저녁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서 감기에 걸리기 좋다. 거기다 매일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니 몸이 피곤하고 방심하면 감기에 심하게 걸릴 만하다.

아침 7시 45분, 학교가는 아이 한 명이 보인다.

오늘은 Markina에 있는 수도원에서 하룻밤 잘 계획이다. 정보에 보니 39명이 머물 수 있어 서둘러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8시가 되기 조금 전 숙소를 나왔다. 배낭을 메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침 일찍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나저나 날씨가 콧물이 주르륵 흐르도록 다. 신호등을 건너 어제 들린 관광 안내소를 지나 기찻길을 통과하고 건너편 다리를 건너자 산길로 안내하는 노란색 화살표가 보인다.  이 화살표를 보자, 프랑스길은 들판과 산을 걷는 것이라면 북쪽길은 바다를 바라보며 산길을 오르등산길인 것을 다시 깨닫는다. 작년 프랑스 길을 걸을 때, 북쪽길은 해안길을 따라 걷는다고, 걸을 때 바다 풍경이 좋고 자연에 둘러싸여 유유자적 걷는 느낌이라고 다녀온 누군가 알려주었는데,  이 말도 맞지만 사실은  해안길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는 거리에서 마을과 이어지는 산을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라는 점은 암묵적인 비밀이었나 보다. 다행히도 난 등산을 좋아한다.

한 곳에 세 갈래로 길이 나있다.

한 시간쯤 산을 오르다가 표지판을 보니 갈래길이 3군데로 나뉘었다. 거기서 눈에 익은 이름을 따라 (그곳이 맞는 방향이라 생각해서) 걸어 내려가는데, 1시간쯤 지나니 무언가 이상했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색에 이끌려 사진을 찍다가 문득 어제 침대에 누워서 Markina 가는 길에 대한 설명을 읽을 때는 바다가 점점 보이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난 이상하게 걷는 중에도 계속 오른쪽으로 파란 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계속 보고 걷다 길을 잃을만큼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

계속 길을 따라 산에서 마을 입구로 내려왔는데, 역시나 이상한 직감이 맞았다. 한 시간 전 갈림길에서 반대 방향의 갈림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야 휴대폰 지도를 켜서 보니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내려온 것이 보였다. 내가 가려는 숙소는 서남 방향인데, 난 Deba에서 서북방향 마을 Mutriku에 도착한 것이다.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페를 찾아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내에 있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시킨 후 지도를 열어 목적지로 가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글지도순례길과 정반대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반대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를 다 마신 후 구글 지도 안내 대신 마을에 있는 미노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이 마을에도 화살표가 있다는 것은 카미노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뜻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반드시 어딘가로 이어져 있을 것이므로.

약 두 시간 정도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니, 신기하게도 원래 가야 하는 길로 맞닿은 지점으로 돌아왔다. 약 세 시간을 돌아온 셈이다.

이제 다시 가야 할 카미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부터 확연히 날씨가 스페인 날씨다웠다. 기온이 많이 높진 않지만 햇볕이 뜨겁고 건조했다. 아침에 목에 두르고 나온 스카프를 모자에 덮어 밭일햇빛 차단 모자를 만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산을 둘러 빙글빙글 돌아 걷는 길이다. 길을 잃었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기뻤지만 오늘 참 빙글빙글 돌아간다. 아까 구글이 알려준 길을 따라 걸었다면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시간이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카미노 길을 걸어갈지, 구글이 알려준 지름길로 갈지 고민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미노 길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걷다 보면 결국 도착하고 하는 곳에 다다른다.

이 카미노 화살표만 잘 찾으면 길을 잃어도 괜찮다.

그렇게 오늘도 숙소에 도착했다. 2시쯤 도착하리라 예상했는데 4시쯤 반쯤 도착했으니 9시간은 걸은 셈이다. 아무래도 앱에 있는 거리가 정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체크인을 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체크인하는 곳에 앉아 계신 수도사님이 "안녕하세요. 매우 피곤해 보이시네요." 하고 인사를 건네신다. 그래서 길을 잃어서 좀 오래 걸렸다고 변명을 해본다.


안내에 따라 오늘 잘 곳을 따라 들어가니 수도원이라서 공용이나 사립 알베르게와는 조금 다르다. 한 공간에 1층짜리 침대 20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간단히 양말과 무릎 보호대만 손빨래를 한 후 마트에 가서 빵과 치즈, 샐러드와 사과를 사고, 사과 개는 아까 뵀던 수도사님께도 드렸다. 내일은 쉬어가는 날이다. 8km만 걸은 후 빨래와 재정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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