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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Aug 26.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셋째 날

2023.4.16. Askizu quarter-Deba


어제 체크인을 할 때 내일 아침 9시쯤 체크아웃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새벽 4시 반부터 눈이 떠져 결국 6시부터 오늘 여정을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저녁 남겨 놓은 바게트에 샐러드와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가방을 다 챙긴 후 7시 반쯤 주인아주머니께 키를 돌려 드렸다.

좋은 침대와 코 고는 소리 없이 조용한 밤을 보냈지만 잠을 못 잔 몸은 어제 젖은 우비처럼 바스락 소리가 났다. 어제 내내 '내일은 16km만 걷는다'는 기대와는 달리 발걸음 하나하나 떼는 데 너무 힘이 들어갔다. 어제보다 속도가 반으로 줄어든 기분이었다. 오늘은 한번 걸으면 목적지까지 멈추지 않는 습관을 버리고 4킬로 정도 걸으면 반드시 어딘가에 앉아서 쉬기로 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안 보이는 푸른 하늘과 바다

하늘색이 바다처럼 푸르다. 비아리츠에 도착한 이후 어제까지 3일 내리 비가 내렸는데 오늘부터 비가 그칠 모양이다. 화장하고 푸른 하늘을 보며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이 여전히 참 가파르다는 생각을 하며 지팡이에 의지하며 천천히 산길을 올라갔다. 그렇게 2시간쯤 걸으니 캠핑장처럼 보이는 곳이 나왔고 곳곳에 큰 벤치가 보였다. 이곳에 앉아 직사광선을 쬐고 싶었다. 지난 3일간 비에 젖은 몸과 산을 오르며 땀에 은 옷을 말리며 20분 동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단지 햇빛을 쬐기 위해 벤치에 가만히 있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햇볕에 몸이 마르는 만큼 기운이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옷에 떨어진 빵가루를 탈탈 털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 3시간 정도만 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걸을 때마다 계속 소요 예상 시간과 남은 거리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런 습관도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걸릴 시간과 걸을 거리를 왜 습관처럼 확인하는 것인지.


오늘 산길을 오르는데 유난히 달팽이가 보인다. 작년 프랑스 길에서 달팽이를 볼 때마다 차가 사람이 지나갈 때 깔려 죽을까 봐 순간 이동을 시켜주곤 했는데, 그때는 달팽이가 가고 있는 방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생명만 살려줬었다. 이번엔 달팽이가 가고 있는 방향으로 순간이동 시켜줘야지.


날씨가  화창해진다. 혹시나 해서 입고 있던 우비를 벗어 가방에 넣고 한 시간쯤 걷다가 180도만큼 가파른 언덕을 넘은 후 동키가 풀을 뜯고 있는 맡은 편 바위에 앉아 땀이 식을 때까지 쉬었다. 내 손엔 북쪽길 첫날 산을 오르다가 내 키에 딱 맞는 하얀색 나무껍질을 한 나무 지팡이를 발견한 후 지금까지 계속 그 지팡이를 동행 삼아 함께 걷고 있다. 지팡이의 또 다른 쓰임새를 발견했다. 어제 음식을 사서 에코백에 넣고 어깨에 메고 다니니 어깨 짐이 너무나 무거웠는데, 날 사람처럼 막대기에 보자기 걸듯이 에코백을 묶으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옛날 조상분들이 짐봇다리를 막대기에 걸어 어깨에 걸치고 다닌 것엔 다 이유가 있나 보다.

들판에 풀어져 있는 동키. 양떼 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다.

계속 걸으니 체력이 좋아진 것인지, 햇볕에 몸이 말라 가벼워진 것인지 이제는 한결 활기 있는 발걸음으로 어느 마을에 도착한 나는 카페를 들를 수 있을 거라는 신나는 마음으로 마을 입구에 들어섰는데, 어디선가 야구 경기장에서나 들을법한 관악대의 웅장한 연주소리가 들렸다. 시골 어딘가에서 나는 스피커 음악 소리가 아닌 실황으로 연주하는 소리였다. 또 길을 잃을까 봐 음악만 듣고 갈 길을 걸어가는데 그 연주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일요일 아침, 음악 연주로 아침을 깨우는 마을

설레는 마음으로 골목을 꺾으니, 젊은 청년들 20여 명이 모여 연주를 하고 있었다. 운동회에서 들릴법한 우람찬 연주를 일요일 아침 동네에서 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매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늘만 특별한 연유로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인가, 너무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이제 숙소까지 한 시간 정도만 남았다. 일요일이나 바가 모두 닫을 것이란 나의 예상과는 달리 바에 사람들이 친구들과, 가족들과 앉아 일요일 오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이들 중 하나가 되어 카페에 카페콘라체를 주문했다. 프랑스길에서는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작은 쿠키나 머핀이 커피잔 옆에 같이 앉아 있곤 했는데 오늘은 없었다. 4일 만에 마시라떼는 너무 맛있었다. 다시 몸이 충전됨을 느끼고 있는데 아마 가게 주인의 강아지로 보이는 회색털 발바리 같은 강아지가 손님 아기와 이리저리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장면이 또 있을까. 강아지가 아기를 놀아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강아지가 아가를 놀아주는 중

커피를 다 마신 후 다시 걸었다. 갈림길에서 잠시 멍하게 서있을 때마다 주민분들이 "산티아고? 디스 웨이" 하고 길을 다 알려주신다. 어떻게 다 알고 계신지 정말 신기하다.

그렇게 골목골목 계단을 오르는데 어느 순간 건물로 감싼 둥근 광장이 나오더니 마을 주민 모두가 햇빛과 커피, 맥주를 즐기기 위해 광장에 모인 것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바로 오늘 하루를 머물 Deba에 도착한 것이다.


오늘 숙소는 특이하게 마을의 관광 안내소에 들려 크레덴시알에 도착을 찍고 숙소를 배정받는 시스템이란 것을 미리 숙지했기 때문에 바로 관광 안내소에 들려 하룻밤 자기 위해 왔다고 설명하니, 직원분이 내가 오늘 첫 번째로 온 순례자라고 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10분이었다. 오늘 오면서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쉬고, 20분씩 일광욕도 하고,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셨는데 내가 1등으로 도착했다니. 그렇게 1등으로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정리하였다. 그리 고난 뒤 순례길에 도착한 후 정신없이 걷기만 하느라 미뤄둔 앞으로의 일정을 조금씩 정리했다. 숙소가 불안정한 4월의 북쪽길은 어디에서 잘 것인지 매일 계획이 필요하다. 내일은 약 24km 떨어진 Markina라는 마을에서 하룻밤 잘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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