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어제 산 샌드위치 재료를 모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은 북쪽길의 마지막 해변길을 지나는 날이었다. 오늘과 내일 지나는 Ribaedo를 지나면 순례길에서 이제 더 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하면 뭐든지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걸으면서 자꾸만 바다가 있는 오른쪽으로 고개가 향했다.
북쪽길 오른쪽에 늘 함께한 바다
해가 떠 있는데 비가 내리는 날씨다. 어제 감기약을 먹고 잤는데 오늘 더 감기 기운이심해졌다. 몸이 왜 이렇게 안 좋을까 생각해 보니 그저께 옷이 안 마른 채로 그냥 입고 걸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햇볕이 뜨거워도 찬 바닷바람 한 번 불면 땀이 금방 식곤 하는데 그때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몸이 안 좋으니 계속 카페를 찾게 된다.
아침 9시, 첫 번째 카페. 내 맞은편의 주인은 늘 배낭이다.
두 번째 카페는 나비아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가 들려서 쉬었다 가면 좋다고 한 Tapia 마을의 한 곳을 들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좀 쉬니 축축한 몸이 노곤해지면서 피곤이 좀 누그러진다. 어제 이곳에 축제가 있었는지 카페를 나와 마을 광장을 지날 때 우리나라 전국노래자랑 같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루 일찍 왔으면 볼 수 있었을까.
Tol로 가는 길과 Tapia로 가는 정반대 길, 난 Tapia로 간다.
Figueras마을에 들어가기 전 제법 큰 마트가 있어 먹을거리를 사려고 들렀다. 계산대 앞에서 물건을 담고 있는데 내 옆 아저씨께서 정중한 목소리로 "Buen Camino"라고 인사해 주셨다. 모자 벗는 제스처와 정중한 목소리때문이었을까. 길에서 지나갈 때 듣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도 Muchas gracias 하고 감사인사를 했다. 이 순간이상하게도 정말 내가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 나오는 한 명의 순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곳에서 낯선 타인에게 축복의 인사를 듣는 경험은 카미노에서만 느낄 수 있다.
산티아고까지 229km, 남은 거리 동안 좋은 카미노가 되길
오후 5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평이 매우 좋은 곳이라 기대를 하고방에 들어가니 침대가 깨끗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방에는 총 4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방에 있던 순례자가 같은 나라에서 온 순례자와 크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독일사람인 것 같았다. 감기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소리가 크게 들린다. 상대편이 자리는 뜨자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스피커 모드로 40분을 그렇게 통화를 했다. 프랑스 길에서도 북쪽길에서도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밑에 테라스도 있고 식당도 있는데 누워서 조용히 쉬는 공간에서 참 실례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에 내진 않았다.
먼저 출발하라고 하신 체코 아저씨는 저녁 7시쯤이 다 되어서야 도착하셨다. 이 숙소가 마음에 드셨는지 내일까지 2박 3일을싱글룸으로 예약해 놓았다고 하셨다.
체크인할 때 저녁은 8시라고 해 너무 늦은 시간이라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데 어제 나비아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가 꼭 먹으라고 추천을 하셔서 저녁 식사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8시가 되어 자리에 앉아 순례자 저녁메뉴가 순서대로 나왔다. 참치를 얹은 토마토 채소 샐러드, 계란 프라이가 2개와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인 닭가슴살 구이, 그리고 1인당 한 병의 와인, 마지막으로 블루베리 잼을 얹은 치즈 케이크까지. 나비아 주인아저씨말대로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순례자 저녁 코스
저녁을 먹은 후 침대로 돌아와 일기를 썼다. 하루 종일 오래 걸어 피곤한 발과 감기로 힘든 몸이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과 깨끗한 시트 덕분에 느낌만으로도 나아진 것 같다. 오늘은 침낭이 아닌 이불 안에서 잔다. 아침에 침낭을 말아 넣지 않아도 된다니 벌써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