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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09.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스물 셋째 날

Navia-Figueras 31km

2023.05.06


아침 8시, 어제 산 샌드위치 재료를 모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은 북쪽길의 마지막 해변길을 지나는 날이었다. 오늘과 내일 지나는 Ribaedo를 지나면 순례길에서 이제 더 이상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하면 뭐든지 애틋해지기 마련이다. 걸으면서 자꾸만 바다가 있는 오른쪽으로 고개가 향했다.

북쪽길 오른쪽에 늘 함께한 바다

해가 떠 있는데 비가 내리는 날씨다. 어제 감기약을 먹고 잤는데 오늘 더 감기 기운이 심해졌다. 몸이 왜 이렇게 안 좋을까 생각해 보니 그저께 옷이 안 마른 채로 그냥 입고 걸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다. 햇볕이 뜨거워도 찬 바닷바람 한 번 불면 땀이 금방 식곤 하는데 그때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몸이 안 좋으니 계속 카페를 찾게  된다.

아침 9시, 첫 번째 카페. 내 맞은편의 주인은 늘 배낭이다.

두 번 카페는 나비아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가 들려서 쉬었다 가면 좋다고 한 Tapia 마을의 한 곳을 들렸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좀 쉬니 축축한 몸이 노곤해지면서 피곤이 좀 누그러진다. 어제 이곳에 축제가 있었는지 카페를 나와 마을 광장을 지날 때 우리나라 전국노래자랑 같은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루 일찍 왔으면 볼 수 있었을까.

Tol로 가는 길과 Tapia로 가는 정반대 길, 난 Tapia로 간다.

Figueras마을에 들어가기 전 제법 큰 마트가 있어 먹을거리를 사려고 들렀다. 계산대 앞에서 물건담고 있는데 내 옆 아저씨께서 정중한 목소리로 "Buen Camino"라고 인사해 주셨다. 모자 벗는 제스처와 정중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길에서 지나갈 때 듣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나도 Muchas gracias 하고 감사인사를 했다. 이 순간 이상하게도 정말 내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 나오는 한 명의 순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곳에서 낯선 타인에게 축복의 인사를 듣는 경험은 카미노에서만 느낄 수 있다.

산티아고까지 229km, 남은 거리 동안 좋은 카미노가 되길

오후 5시쯤, 숙소에 도착했다. 평이 매우 좋은 곳이라 기대를 하고 방에 들어가니 침대가 깨끗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방에는 총 4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방에 있던 순례자가 같은 나라에서 온 순례자와 크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독일 사람인 것 같았다. 감기로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소리가 크게 들린다. 상대편이 자리는 뜨자 이번에는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스피커 모드로 40분을 그렇게 통화를 했다. 프랑스 길에서도 북쪽길에서도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밑에 테라스도 있고 식당도 있는데 누워서 조용히 쉬는 공간에서 참 실례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에 내진 않았다.


먼저 출발하라고 하신 체코 아저씨는 저녁 7시쯤이 다 되어서야 도착하셨다. 이 숙소가 마음에 드셨는지 내일까지 2박 3일을 싱글룸으로 예약해 놓았다고 하셨다. 


체크인할 때 저녁은 8시라고 해 너무 늦은 시간이라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데 어제 나비아 알베르게 주인아저씨가 꼭 먹으라고 추천을 하셔서 저녁 식사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8시가 되어 자리에 앉아 순례자 저녁 메뉴가 순서대로 나왔다. 참치를 얹은 토마토 채소 샐러드, 계란 프라이가 2개와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인 닭가슴살 구이, 그리고 1인당 한 병의 와인, 마지막으로 블루베리 잼을 얹은 치즈 케이크까지. 나비아 주인아저씨말대로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했다. 

순례자 저녁 코스

저녁을 먹은 후 침대로 돌아와 일기를 썼다. 하루 종일 오래 걸어 피곤한 발과 감기로 힘든 몸이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과 깨끗한 시트 덕분에 느낌만으로도 나아진 것 같다. 오늘은 침낭이 아닌 이불 안에서 잔다. 아침에 침낭을 말아 넣지 않아도 된다니 벌써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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