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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11.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스물 다섯째 날

Lourenza – Gontan 24km

2023.05.08


루이보스 차 덕분인지 푹 자고 일찍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어제 하루 종일 먹은 것은 커피 한 잔과 루이보스 차 한 잔이었다. 배가 고파 아침 7시가 되기  숙소에서 나와 어제 확인해  알베르게 1분 거리의 빵집에 들러 금방 나온 바게트를 사서 손으로 뜯어먹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두워 노란색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아 길에서 잠시 서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손가락으로 길을 알려주셨는데 어제의 그 이탈리아 레이디이다. 길을 알려주시고는 앞으로 휙휙 걸어가시는데 걸음이 정말 빠르다.

Mondonedo 입구 표지석이 아주 멋지다.

8시 50분, 대성당이 있는 Mondonedo 마을에 도착했다. 아직 카페가 열기 전이라 대성당 앞의 카페 야외 의자에 앉아 9시가 되길 기다렸다. 9시 5분 전, 직원이 오자 안으로 들어가 라떼를 시켰다. 아침에 바게트 한 개를 다 뜯어먹고도 여전히 배가 고팠지만 지금 막 연 카페에서 시킬 수 있는 것은 라떼가 전부였다. 이탈리아 레이디도 카페에서 커피를 드셨는데, 가시기 전 나에게 오시더니 다시 한번 Original dangerous, Complimentary. 라고 알려주시고는 먼저 길을 가셨다. 아침에 바게트를 뜯으며 멍하니 서 있었던 내가 내심 길을 잘 찾을지 걱정되셨던 것이다.

대성당 앞 카페의 아침 하트 라떼

그런데 난 6km나 더 돌아가는 Complimentary 길 대신 원래 카미노 길을 걸을 심산이었다. 이 길을 Dangerous 하다고 하신 것은 굉장히 경사도가 높은 산이기 때문이다. 8km를 계속 걸어 올라가기만 하는 길이니 많은 순례자들이 Complimentary길을 택한다.

Mondonedo 출신의 작가 Manuel Leiras Pulperio

나도 카페를 나와 대성당에 들려 기도를 드리고 크레덴시알에 도장도 찍은 후 다시 길을 걸었다. Mondonedo를 떠나기 어제와 같은 굶주림을 겪지 않기 위해 Dia 마트에 들러 먹을 것을 산 후 걷기로 했다. Dia는 마을 중심에서 벗어난  변두리에 있었지만 마트에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순례길과 이어져 일단 Dia로 향하였다.

Mondonedo 대성당

Mondonedo는 골목마다 스러워 사진을 찍으니 80년대 유럽 영화 같은 사진이 나왔다. 그렇게 마트를 향해가는 중 동네 Panaderia를 발견했는데 안에서 빵을 만들고 굽는 것이 밖에서도 보여 구경하다 결국 호기심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적인 창문과 오래된 골목길

유쾌한 주인아저씨는 '올라' 하시며 갓 나온 빵에 손을 펼치며 포즈를 취하신다. 난 휴대폰을 들고 손가락으로 찰칵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쭤보니 Vale vale 하시며 다른 포즈를 취해주셨다. 바게트가 나오고 있었지만 아침에 먹었기에 이번에는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초콜릿 크루아상을 하나 사서 나왔다. 어제 하루 굶었는데 아침부터 참새가 되어 방앗간을 계속 들른다.

동네 Panaderia와 주인 아저씨

Gracias 하고 인사를 바게트를 한 통 다 뜯어먹은 것을 잊은 것처럼 크루아상을 먹으며 또다시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도착했다. 마트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새로운 과자를 구경하면서 저녁에 먹을 바게트와 고다 치즈, 샐러드, 바나나, 견과류, 올리브유 스틱 과자를 사서 마음 든든하게 한 후에야 다시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

갓 나온 바게트와 먼저 한 입 먹고나서 찍은 초코 크루아상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이탈리아 레이디께서 Dangerous 하다는 오르막길이 시작된 것 같았다. 계속 혼자 걷다 보니 이렇게 길이 수직으로 경사져서 사람들이 이쪽은 정말 피해 가는구나 싶었다. 오르막길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몇 걸음 걷다 쉬고 또 걷고 쉬고를 반복하니 뒤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나만 이 길을 걷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 없이 서 있는 돌십자가

10명쯤 되는 순례자들이 언덕길을 같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호주에서 오셨는지 각자 배낭에 코알라와 캥거루 사진을 넣어 이름표를 붙인 노부부가 내 옆을 지나갔다. 나를 지나치는 분들께 인사를 하며 천천히 올라가는데 앞에서 좀 전에 호주 노부부가 그늘막에 쉬고 계셨다. 다시 한번 지나치며 서로 ‘올라’ 하고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는 내가 힘들어 땅에 겉옷을 깔고 주저앉아 있는데 좀 전 노부부가 올라오시면서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이 산의 높이가 총 890m 정도인데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680m니까 꼭대기가 코 앞이니까 힘내라고 해주셨다. 나는 굉장히 동기부여가 되는 말이라고 응답한 후 일어나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과 해바라기 같은 풍력 발전기

그렇게 30분 정도 더 걸었을까, 드디어 정상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정상에 오르니 드넓은 초원 넘어 풍력 발전기의 큰 선풍기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 내 앞에는 말,  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만약 이 길 대신 Complimentary 길을 택했으면 못 봤을 절경이었다.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피로가 이런 풍경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리막길과 평평한 길뿐이었다.

산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

호주분들과 인사를 하고 나는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전에 채워둔 식량 가방을 조금씩 비우면서 2시간 정도 걸으니 Gontan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제 닫았다고 들은 Gontan 알베르게가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어제오늘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이곳이 닫은 줄 알고 1km 지나면 있는 Albadin에서 잘 예정이라고 했기에 나도 이곳을 지나칠 뻔했는데 멀리서 알베르게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가봤다. 직원분이 먼저 도착한 순례자 한 분과 대화 중인 것을 보고 나도 오늘은 이곳에서 걷기를 멈추기로 했다. 해가 있을 때 어제 못한 빨래도 하고 몸도 쉼이 필요했다. 체크인을 하고 빨래를 다 하고 나니 오후 3시, 해가 쨍쨍할 시간이라 빨래도 잘 말랐다.


오늘부터 Galicia Xunta 안으로 들어왔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위치한 갈리시아 지역인 만큼 지역 정부에서도 순례자들을 위한 공공 알베르게 시설에 대한 지원이 다른 지역보다 잘 뒷받침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Galicia Xunta 내 공공 알베르게에서 와이파이를 한번 등록하면 자동으로 와이파이가 연결되어 알베르게를 옮길 때마다 매번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가 없다. 놀란 것은 작년 프랑스길에서 Xunta 알베르게에와이파이 등록했던 것이 6개월이 지난 오늘도 자동으로 연결이 되어 체크인을 할 때 이미 휴대폰 와이파이가 접속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카카오톡으로 간단히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는 된다.


저녁이 되니 알베르게는 5명 정도 인원이 늘었다. 밤이 되니 다시 기침이 심해지고 목이 아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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