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Walk Holland-네덜란드 가기 열흘 전
마음속 불안이 넘치지 않도록,
네덜란드를 가는 날이 이제 열흘 정도 남았다.
여름이 오기 전, 네덜란드행을 확정하고 비행기표를 산 후로 비행기 타는 날이 오기까지 난 11월이면 바로 무직이 되는 것을 조금이나마 대비할 수 있는 비상금을 벌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고, 네덜란드어 기초편 책을 사고,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을 대비할 마음을 다잡으며 지냈다.
그렇게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몽글몽글 불어나는 순두부찌개처럼 내 마음이 감내할 수 없을만한 불안감이 넘쳐흐를 때가 종종 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담대해질 줄 알았던 내 마음은 용기를 충전하기까지 녹슨 기억과 잘 지워지지 않는 묵은 때를 벗겨 내느라 자주 지쳤다. 잠깐의 담대한 생각과 결심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의 용기가 필요하고 조금이나마 용기가 채워지면 한껏 뜨거워진 냄비 속, 들끓어 곧 넘쳐버리는 순두부처럼 힘없이 흘러나와 버려 타버린 흔적처럼 마음이 바닥에 눌어붙고 지저분해졌다.
이렇게 한없이 몸과 마음이 가라앉을 때 내가 나를 다독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걷는 것이다.
며칠 전,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과 불안에 휩싸여 걸으며 마음을 좀 달래 봐야겠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걸으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걸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걸으러 나갔었던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2학년 때쯤 인 것 같다. 시골에 살아 주변엔 논과 밭밖에 없던 시절, 속상한 마음에 집에서 나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 정상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마음이 좀 누그러진 후 집으로 걸어갔었더랬다.
그리고는 어른이 되어서도 9살 때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생길 때면 습관처럼 일단 걷는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계속 걷는 것이 마음의 불안이 넘치기 전 불을 꺼버리는 내 생존 수단이 되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는 매일 세 시간을 걸었었다. 나의 상담사가 해준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의 일상 속에 포함시켜 루틴으로 만들고 그것을 계속 지켜나가면 마음의 굳은살이 생길 거라는 담담한 말이었다.
그래서 난 뭘 할까 고민할 것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니 하루에 세 시간씩 멀리 있는 카페까지 걸어가서 라떼를 사서 다시 돌아오는 게 나의 일상이자 루틴이었다.
당시, 나의 하루는 어려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같은 페이지를 다시 읽고 또 읽으며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오늘을 내일로 넘기는 것이 힘에 부치고 간신히 하루를 무사히 보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장을 넘기기 위해 많이 걸어야 했다.
지금도 여전히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난 걷고 있다.
많지 않은 주변인들로부터 네덜란드 가서 뭐 할 거냐는 질문은 나를 걷게 하고, 뭐 하나 정해진 것 없는 한 달 뒤의 내 상황은 나를 걷게 한다.
그렇지만 어느새 걷다 보니 막막했던 페이지도 책의 뒷장이 되어있고 마음의 뜨거운 순두부가 넘칠 때면 그때처럼 놀라 냄비를 맨손으로 잡아 더 상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얼른 국자를 집어 한 국자 덜어낼 줄 알게 되었다.
여전히 네덜란드에 가서도 많이 걷겠지만, 그래도 걷다 보면 어느 한 구석에서 또 내가 앉을 수 있는 벤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