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편의 특집을 살던 당신들
팔로우 된 중학생이 ‘dm 보내주면 내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알려줌’이라고 올린 스토리에서 시작되었다. 영혼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답을 준 것은 보고 또 보는 [무한도전]이었다.
나는 자아실현을 영혼으로 오해했다. 아니, 자아실현은 지금도 해결 못한 열등감일 뿐, 영혼을 고민해 본 적도 없었다. ‘영혼이 없는 말’에서의 영혼은 진심으로, ‘영혼을 갈아 넣는 노력’에서의 영혼은 열정으로 바꿔 쓸 수 있으므로 영혼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열정을 다해서 빚어내는 것이라고 막연히 규정해 온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학생의 스토리는 친구들 상대로 던진 말인 줄 알면서도 넌지시 dm을 보내봤다. 학생은 접속 중인 채로 한참 만에 대답했다. 다른 학원보다 숙제가 적어서 좋댔다. 피식, 그은 웃음이 씁쓸했다. 학생이란 숙제로 된 인간 형상이었다.
숙제는 학원의 존재 이유였다. 학부모는 어떻게든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으므로 학원의 숙제 뺑뺑이는 정당했다.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는지는 몰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성과는 확실하게 없으므로 숙제는 노력의 최소한이었다. 각 학원들의 최소한들이 누벼져 학생들의 일상은 누더기가 되었다. 학생들에게 거적때기 같은 시간을 입혀 놓고 어른들은 묻는다. - 꿈이 뭐니?
철이 없으면 유튜버였고, 성적이 좋으면 의사였고, 이도저도 아니면서 솔직하기만 하면 꿈이 없었다. ‘나 때’ 전교에 한두 명은 있음직한 대통령에는 이제 코웃음들 쳤다. 학생들은 꿈이 없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꿈이 있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냥 적당히 즐기면서 살면 안 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카르피디엠과 아모르파티 신봉자는 아니었다. 그저, 꿈을 가져 본 적도 없고, 노력하기도 싫은 자기합리화였다.
학생들 잘못이 아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탐지할 시간이 없다. 학교 숙제는 수행 평가로 강화되었다. 수행 평가는 하지 않았을 때 몇 대 맞고 끝나는 ‘나 때’의 잔심부름이 아니었다. 수행은 내신(內申)과 직결된 왕명에 맞먹었다. 왕명은 sky에 닿아 있으니 과히 천자의 뜻이었다. 숙제의 내신(內臣)은 목숨 걸고 왕명을 받들 뿐이다. 학생부에 기재되는 내용에 따라 sky 인접성이 달라지므로 학생들에게 학생부와 살생부는 다르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살기 위해서 내가 대학생 때나 했음직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그 자체로도 살 떨리는 일인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 기말고사와 방학 사이에 생사의 기로는 지나치게 빼곡했다.
노예의 꿈은 해방이다. 노예가 말하는 자유는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을 자유’ 즉, 휴식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들이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해야 하는 것들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다. 그저 쉬고 싶은 것이다. 학생에게 꿈이 깃들 여유가 없다.
내 영혼의 문법에 의하면 학생들은 영혼이 없어야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전생의 벌을 속죄하듯이 숙제를 해대도 10대의 생기발랄함은 숨겨지지 않았고, 각자의 생기발랄함은 영혼, 그 비슷한 느낌을 줬다. 오히려 내가 적성에 꼭 맞는 밥벌이에 나름 꿈 비슷한 것을 좇는 중이니 영혼이 영롱해야 하지만, 체감되는 나는 그저 자아실현의 망령에 좇기는 귀(鬼)에 가까웠다. 내게 자아실현만이 진심이므로 실현되지 못한 ‘나’는 늘 패배감으로 인지되었다. ‘인간은 파멸 당할 수 있어도 패배할 수 없다.’는 말을 승자의 자아도취가(歌)쯤으로 혐오할 정도로 나는 쇠락했다. 이런 게 영혼이라면 없는 게 나았다.
그럼에도 내가 영혼의 건강성을 잃지 않는 것, 아니, 건강하지 않지만 심폐소생기라도 달며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선생으로 불러주는 학생들 덕분이었다. 내게 선생은 단순한 직함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자가 부패(自家 腐敗)에 대항하는 내 면역 체계였다. 학생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밝고 명랑했다. 하 선생에게서 하루오를 상상하지 못하고, 하루오에게서 하 선생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소울메이트(soulmate)는 동반자를 전제함으로써 영혼이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혼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다. 제아무리 나 자신의 독립성을 외쳐봐야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개별 영혼은 무화된다. 영혼은 곧 그 개인의 개별성, 캐릭터였다. 영혼은 자아실현의 미래지향적인 외골수가 아니라 타인과 관계 속에 공존하는 캐릭터의 실시간이다. 캐릭터가 영혼 즉, 삶의 빛깔을 결정하는 것이다.
캐릭터는 ‘나’의 독립성에서 기반하지만 타인을 설득하지 못하면 빛을 잃는다. [무한도전] 캐릭터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영혼을 이해했다. 정형돈은 정준하로 인해 뚱보 캐릭터를 잃었다. 박명수가 밀어준 ‘건방진 뚱보’나 제작진이 자막으로 밀어준 ‘어린 뚱보’는 시청자를 설득하지 못했다. ‘어색한 뚱보’와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은 정형돈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형돈이 되었다. 특히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 캐릭터는 개그맨으로서의 자괴감을 갉아먹는 다고 정형돈이 술회한 바 있다. 2010년 7월 17일, 시크릿 특집에서 ‘미존개오’가 등장함으로써 정형돈은 자신에게 맞는 영혼의 빛깔을 찾았다.
정준하는 초창기에 자신이 꽤 잘난 사람을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키 크고, 듬직하고, 훈훈한 외모를 어필하며 높은 자존감을 드러냈지만, 멤버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역할은 멤버들의 놀림을 버티는 탱커(tanker)임을 모르던, 혹은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2007년 4월 14일 자신을 놀리는 것을 참다못해 정형돈, 노홍철, 하하를 집합시킨 것이 폭로되기도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는 2011년 5월 21일 ‘정과장’으로 표상되는 예능 대표 탱커가 되었다.
박명수가 뜬 것은 그의 ‘호통’을 알아봐 주는 유재석 덕분이었고, 별로 잘생기지 않은 하하도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링과 멤버들의 띄워주기로 ‘잘생긴’ 캐릭터를 획득했다. 이미 독보적 위치에 올라있던 유재석과 시작부터 쟤 뭐지 싶었던 ‘돌+I’, ‘사기꾼’의 노홍철을 제외하면, 다들 멤버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옷, 영혼을 만들어 간 것이다. 심지어 노홍철의 ‘사기꾼’조차 [지니어스 시즌2]에서 조기 탈락하는 바람에 관계성이 영혼의 속성임이 증명되었다.
[무한도전] 초창기에는 프로그램 스스로가 자신이 무엇인지 몰랐다. 톱mc 유재석을 데려다 놓고도 20회를 자축해야 할 만큼 불안했다. 생필품을 나눠주는 ‘퀴즈의 달인’을 중심으로 ‘거꾸로 말해요 아하’가 사전 게임으로 진행되다가 ‘퀴즈의 달인’은 사라지고, [MC 대격돌 - 공포의 쿵쿵따]처럼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메인에 세우며 멤버들의 앙케트 조사와 신변잡기로 방송 분량을 채웠다. 그러다 ‘미셸 위 특집’을 기점으로 제작진은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고수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재석-강호동 만큼의 파괴력은 아니더라도 멤버들의 다양한 관계성이 대본을 초월할 가능성을 본 것이다. 멤버들에게 필요한 것은 캐릭터가 뛰어 놀 ‘상황’이었다.
상황은 모두 특집으로 명명되었다. 초창기의 특집들은 세트 테마만 바뀔 뿐, 내용은 같았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즌3로 명명되는 미셸 위 특집 이후, 내용 자체가 바뀌어 나갔다. 매회가 멤버들에게는 수행평가였을 것이다. 이 수행평가는 성패는 조합되는 캐릭터들의 설득력에 달렸다. [무한도전]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가 되며 폭발했다. 고작 TV 프로그램이지만 ‘영혼’을 입에 올릴 수 있었다. 최소한, [무한도전]은 지난 10여 년 간 나와 가장 높은 관계성을 가진 내 영혼의 일부다.
[무한도전]은 매주 특집들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강화해 나갔다. 매 주가 영혼의 기록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주에 무엇을 했으며 이번 주에 무엇을 하고 있으며 다음 주에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다면 그냥 웃는다. 뭐, 그냥 그렇다. 3년 전의 이번 주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고, 3년 후의 이번 주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내 영혼은 나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끌려 다니는 ‘글 쓰는 것도 제대로 못하며’, ‘못생긴’, ‘건방진 뚱보’로 점철된다. 내게는 특집이 없다. 매일 똑같은 세트에서 모노드라마가 반복된다. 이 모노드라마는 왠지 흑백 같다.
나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충전 없이 발산하는 영혼은 생기(生氣)를 잃을 수밖에 없다. 매일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내 영혼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특집’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루오 도전 1화 무슨무슨 특집은 오늘도 시작되지 않는다. 삶이, 폐지 직전의 [무한도전]만큼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