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한한 동력원
저 어린 것들이 자기 딸이 예쁘다고 날뛰었다. 스물여덟 살의 하하와 노홍철도, 서른일곱 살의 박명수도 예능에 충실했다. 빠른 년생 스물아홉의 정형돈은 모르겠다. 가상의 사진만 봐도 애지중지하게 된다고 했는데, 한 컷을 위한 멘트 같기도 했고, 300회 쉼표 특집에서 보여준 뭉글뭉글한 부성애의 복선 같기도 했다. 뭐가 되었든, 2006년의 내게 그들의 호들갑 속에서 ‘아버지’는 실감나지 않았다. 나도 아버지가 되는 것의 의미를 모를 때였다.
2006년 4월 29일 시즌2 26화 충무공 탄신일 특집에서 멤버들과 이다해를 조합한 가상의 딸 사진을 공개했다. 박명수를 제외하면, 이다해가 더 많이 반영된 딸 사진들은 비교적 예뻤다. 박명수는 결혼 포기를 선언하며 웃음을 붙잡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자신의 딸 사진을 물고 빨았다. 이제는 나도 저리 될 것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과장된 표현은 적확했다. 나는 맹목적 ‘좋아함’이 격렬하게 고프다.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식이 없을 때 마음껏 자유를 즐기라고들 했다. 처녀/총각 때가 좋았다며 결혼은 늦출 수 있으면 늦추라고도 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몰랐다. 마흔이 넘어서도 삶이 같은 색깔과 질감의 맛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는 오산이다. 몸이 죽음에 수렴해 갈수록, 마음도 죽음에 수렴해 간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피가 돌지 않는다. 돈 벌면 반드시 사 모으리라고 다짐했던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전집도 ‘굳이’ 속에 처분되었다.
특히 남성들, 10대, 20대 때 환장하던 섹스마저도 의무방어전으로 전락한 당신들의 욕정을 살펴보면 내 마음의 발기부전이 이해될 듯하다. 좋아하는 것이 없으므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을 회피했다. 집적(集積)된 ‘굳이’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세상은 나와 무관한 행성의 군집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어떤 중력도 작용하지 않으므로, 나는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이런들 어떠하지도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는 끝없는 텅 빔으로 나아가는 텅 빈 것. 나는 지구와 달 사이, 달과 태양 사이, 태양과 해왕성 사이, 태양계와 은하 중심 사이, 은하와 은하 사이, 은하단과 은하단 사이에 가득한 무(無)에 수렴한다. 우주적 무기력이 지긋지긋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중력이다. 대상을 좋아하는 힘만이 이 허무함 속에서 존재 좌표의 알맹이를 채울 수 있다. 물질은 파동으로 존재하고, 파동은 에너지이므로 좋아하는 힘이 중력을 만들고 이 운동 에너지가 파동으로서의 나를 실존하는 나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음의 물리학에 통달한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에 대한 질문에 사랑이라 답한 바 있다. 사랑은 곧 나를 존재하게 신이다. 메시아가 있다면 자식이다. 자식이야말로 사랑의 원천으로서의 참 종교다.
자식은 부끄러움과 사랑의 끝없는 원천이다. 자식이 없는 인간이 이런 말을 하자니 민망하지만,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때의 뿌듯함과 조카들이 무조건적으로 예뻐 보이는 뽀송뽀송함이 결합된 감정에 몇 제곱된 것이 자식에 대한 감정일 것을 생각하면 유추 가능하다. 그런 감정만이 생물학과 마음의 물리학을 설명한다. 이보다 적절한 가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나는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자식은 ‘나’를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게 강제하고, 세상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물론, 자식이 없이 인생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넓고 즐길 거리는 많다. 노홍철은 끝없는 자기애로 [무한도전] 이후에도 ‘노홍철’이라는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노홍철마저도 어쩌면 쾌락의 가성비가 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100원짜리 새우깡에서 얻던 쾌락과 100,000만 원짜리 독도새우에서 얻는 쾌락의 크기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전자의 압승이다. ‘엄마 100원만.’의 시절, 무언가들을 열심히 좋아할 수 있어서 쾌락의 민감도가 컸다. 아마 부모라면, 10,000원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은 내 입에 맞는 냉면 한 그릇보다 내 아이에 입에 물린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에 있을 것이다. 자식은 쾌락의 효율을 높이는 최선이다. 자식이 없는 노홍철은 1,000,000원짜리 독도 새우를 먹으면 되지만 우리는 돈이 없다. 다들 자기 지갑만큼의 취향에 먹이를 주고 살아가겠지만 만족감의 가성비는 새우깡에 함유된 새우 무게를 닮아간다.
확신했다. 인생은 시시하다. 유전자 전달에 실패한 생물체의 모든 시간은 덤이다. 내가 뭘 하고, 뭘 입든 우주적 무기력이 우울로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을 간신히 지연할 뿐이다. 아니, 지금 내가 심리 검사를 받는다면 우울증 양성으로 나올 거라는 정도는 안다. 이미 내일 아침에 눈 뜨지 않아도 상관없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이 우울을 상쇄하고 있다. 하루오와 하 선생은 다른 인간이다. 그러나 이제는 합쳐지고 싶다. 수업이 끝나면 하 선생이 off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오 위에서 하 선생이 계속 on이 된 상태, 아버지이고 싶다. 내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과 나의 중력도 복원될 것이다. 내 가상의 딸 사진을 본다면, [무한도전] 멤버들처럼 과장된 파동이 그려질 것 같다.
멤버들을 더 닮은 사진은 본격적으로 웃음을 주기 위한 합성이었다. 노홍철 딸은 수염이 풍성했고, 정형돈 볼이 비정상적으로 둥글고 빨갰으며, 정준하 딸은 몸통보다 머리가 더 컸다. 유재석은 멤버들의 딸 사진을 모아 두고, 이런 딸이 있다면 아버지가 가출하겠다고 농쳤다. 그럴 리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진짜로 아버지가 된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는 알 것이다. 그들 가정의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보여지기로는 다들 아버지가 된 후로 성숙해졌다. 특히 내 기준에서 술 좋아하는 날라리 하하는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된 듯했다. 부럽다. 무엇보다도 이다해와 합성한 사진보다 더 예쁜 민서를 둔 박명수에게는 축하를 보낸다. 당신들은 결혼하길 참 잘했다.
아버지는 내가 가지 못한 길이다. 블랙홀의 중심에서는 물리법칙이 무시되듯, 아버지의 책임감은 내게 익숙한 삶의 물리법칙을 전복할 것이다. 당장 개 한 마리 키우는 데도 책임감 앞에서 머뭇대는 중인데, 자식이라니. 그래도 남자의 최전성기는 자식에게 가장 친한 슈퍼맨이 되어줄 수 있는 자식 나이 5~10세 정도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부러워 할 것이다. 걷지 못할 길에 자꾸 눈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