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왕자 자갈치의 고독

아이스원정대 편 롤링페이퍼. 문어의 힘.

by 하루오

자갈치에서 마지막으로 회를 먹은 것은 대학생 때였다. 나도 낯선 자갈치지만, 고향이랍시고 대학 동기들을 끌고 갔었다. 쥐가 재빠르게 지나다니는 부둣가 야외 테이블에서는 파돗소리로 염장되는 비린내가 지나치게 싱싱했다. 아마 그 즘부터 과자 자갈치를 돈 주고 사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문어 맛이라지만 짭쪼름하고 바삭바삭한 새우의 깡깡함과 큰 차이는 못 느꼈다. - 문어(文語)맛 결핍에 헛소리 중이다. 구어의 세상이다. 카톡 속의 끼룩, 끼룩, 해운대 갈매기는 새우깡에 환장했다.


그곳도 바닷가였다. 2006년 나의 여름이 졸업하고 뭐 먹고 살지 생각하느라 구질구질랜드를 구축할 때, 그곳은 뉴질랜드의 겨울이었다. 멤버들은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끝이 없을 듯이 쏟아냈다.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노랫말처럼, 300회 특집에서 멤버 중 누군가는 모닥불의 밤 멤버십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그들의 모닥불은 [무한도전] 조용 이후에도 꺼지지 않았다. 모닥불의 원료는 롤링페이퍼였다. 글은 화력이 셌다.


2006년 8월 19일 아이스원정대1


어느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섬의 좌표는 본인들도 모르기 때문에 소통으로 더듬어 낸다. 섬으로 가는 통통배의 재질은 두 종류다. 구어 혹은 문어. 나는 구어로 된 배를 타면 뱃멀미가 심했다. 보통은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밥 먹었니, 날씨가 어때, 어느 집 파스타가 괜찮은데 같은 스몰토크를 랄랄라 나누며 관계를 쏠쏠하게 다듬을 줄 모른다. 어차피 끼룩, 끼룩, 가벼움이 닿을 수 없는 섬이 있다.


문어는 구어에 비해 비열이 크다. 구어는 가벼워서 거침없이 뜨겁거나 차가워지지만, 문어는 몇 번, 몇 십 번 정제되는 과정에서 체온에 수렴해 간다. 이를 테면, 내 구어 세계에 ‘사랑’은 없다. 내 안의 40년 묵은 ‘경상도 남자’에게 ‘사랑’은 노래할 때나 입에 담는 단어였다. 그나마도 사전적 의미를 잃고 멜로디를 채우는 2음절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어 속에서는 부모님이나 연인에게서 어떻게든 명을 이었다. 문어는 체온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인 셈이다. 감사와 사죄도 문어에 보다 잘 담겼다. 체온으로 촘촘한 밀도는 파고에 흔들리지 않았다.


문어로 만든 배는 출항하기도 전에 가라앉고 마는 경우도 있다. 쇳덩이도 물에 뜨지만 문어도 만만찮게 무거워 배를 건조하기 까다롭다. 문어는 우표와 함께 사멸해 갔다. 이메일조차 무료의 빠른 편지가 아니라 문서나 그림 파일 저장용 계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문어를 읽고 구어를 배설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어를 근간으로 한 사이월드가 있다가 140자짜리 파랑새가 끼룩, 끼룩 오갔다. 급기야는 언어 자체가 이미지나 영상에게 자리를 내줬다. ‘좋아요’의 양은 존재 가치를 위장할 뿐, 섬을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좋아요’로 연결된 얇은 관계들은 해무처럼 섬을 가렸다. 섬이 생략된 관계는 눈물로 점착되지 않아 떼었다 붙이기 편하다.


나는 문어 조선소이고자 했다. 구어 다루는 솜씨는 5등급이 안 되겠지만, 나는 조잡하게나마 메마르고 딱딱한 문어 배는 건조할 줄 알았다. 수주 받은 적 없는 배를 꾸역꾸역 만들어 온 덕분이다. 학부모님들께도 간혹 카톡으로 학생에 대한 문어배를 띄웠다. 가정 통신문이나 정성평가라기보다는 학생에 대한 조금 긴 롤링페이퍼였다. 이 롤링페이퍼는 반응이 괜찮았다.


롤링페이퍼는 가장 구어를 닮은 문어지만, 짧더라도 편지 형식이어서 문어맛이 났다. 문어의 무게는 ‘좋아요’ 숫자만큼 산술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단순한 메모의 집합도 페이퍼를 아득히 초월했다. 문어 플레이는 마음을 찌르기에 ‘페이커(faker)’만큼 더 이상 혁신적일 수 없을 텐데, 사람들은 그저 Rollin’ Rollin’ Rollin’ 한다. 사색의 가닥을 수색하는 데 인색해서 문어는 사색이 되었지만, 십인십색의 사이를 헐, 대박, 쩔어로 배색하면 어색하거나 질색팔색인 관계도 대충 Rollin’ Rollin’ Rollin’으로 윤색했다. 이런 무색한 관계 속에서 롤링페이퍼는 상대의 최소한의 특색을 특정함으로써 섬의 좌표 범위를 좁혀 줬다.


의사소통 불가능


2006년 8월 19일, 뉴질랜드의 롤링페이퍼들은 가슴에 있는 말을 내던지는 성토장이 되었다. 예능이 문어를 빌린 것이기도 했고, 문어가 예능을 빌린 것이기도 했다. 과장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솔직할 수 있었다. ‘나’와 ‘나의 너’의 날 것들이 스스럼없이 드러났다. 박명수는 누구에게나 직설적이되 일관되게 성의 없었고, 정준하는 누구에게나 자기편이 되어주기를 호소했다. 까다로운 속성들은 문어에 새겨짐으로써 ‘본래 그런 사람’으로 멤버들에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박명수는 정형돈에 대한 어정쩡한 걱정을 담았고, 정형돈은 박명수의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린 가슴을 읽어줬고, 정준하는 노홍철의 의리고 있고 성실하고 착한 모습을 발견했고, 하하는 정준하의 순수하고 정 많음을 되새겨줬다. 유재석에게 가해진 인생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말라는 질타도 사실은 ‘사랑... 사... 사... 랑... 그냥 좋아합니다.’의 튼튼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다. 문어 속에 담아내는 마음으로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발견했을 것이다. 섬의 이름은 [무한도전]이었다. 예능사(史)에서도, 멤버들 각자의 인생사(史)에서도 [무한도전]은 군도(群島)가 아니라 대륙이었을 것이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가 별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듯, 바다는 섬 때문에 아름답다.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들린다면, 우리는 해변의 환자다. 문어가 필요할 때다. 나는 어린왕자, 아니 바다의 왕자라도 부르는 기분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새까만 선글라스에 하늘색 물들인 머리의 시절이 끝나고 반짝 대머리 아저씨, 세 겹 뱃살 접힌 아줌마가 된 친구들에게 자갈치 한 봉지 보내고 싶지만, 우리 못 본 지 470칼로리지만 1,500만큼 사랑한다고, 3000자 이상 ‘I am Friend man.’정도는 쓸 수 있지만, 편지는 꽃 선물처럼 쑥스럽다. 이쯤 되면 빅뱅이 해체된 GD처럼 에라 모르겠다. 끼룩, 끼룩, 성가신 노이즈가 그럭저럭 참아볼 만하고, 그럭저럭 견뎌낼 만하다. 흰 파도만 남았다. 부서진다.


100으로도 사랑할 수 있던 국민학생 시절 학급일기를 쓰던 것, 여중생들이 교환 일기를 쓰는 것은 바다의 왕자로서 [무한도전] 같은 섬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일기는 나와 나 사이의 섬을 찾고 가꾸는 일이다. 일기를 쓰지 않으니 다들 ‘내가 진짜로 원하는 뭐야’를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 아이유는 이 섬에서 노래를 캐내 멜론을 달달하게 씹어 먹었다고 한다.


편지는 못 쓰서 보아뱀에게 삼켜진 코끼리의 기분으로 잡문을 쓴다. 오늘은 좀 회색 맛이다. 내 문어로는 아이유는커녕 농심 자갈치를 이기기도 힘들다. 그래서 결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그 섬에 안 갈 거다. 어아피 호남선에 비는 내리고 나는 호남(好男)이 아니다. [무한도전]을 만날 수 없어도 잊지는 않으므로 무인도에는 무인도의 파도 소리가 있다. 수평선 너머에서 암소 소리가 ‘but I love you.’한다. 끼룩대는 소리보다 듣기 좋다. 환청의 힘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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