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라 죄송합니다

불혹 - 마음의 발기 부전

by 하루오

2022년에 보는 2006년 예능이 흥미로울 리 없다. 재탕, 삼탕, 이제는 몇 번짼지도 모르겠다. 그냥 본다. 간혹 웃을 때, 나는 왜 또 웃고 마는지 허탈했다. 웃음 속에는 열심히 살고 있지만 노력이 부족한 듯한 죄책감과 그 기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 체념이 복합되었다. 그래도 봤다. 대안이 없었다. 아니, 대안을 찾지 않았다. 낡은 웃음도 웃음이었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귀찮았다.


저 어린 것이, 하며 코웃음 쳤다. 이미 저 시절 박명수보다 내 나이가 많아졌다. 동생이 된 큰 형뻘의 엄살에서 나이 ‘마흔’을 다시 본다. 내일 모레 마흔. 박명수의 입버릇이었다. 마흔은 부족한 능력과 지켜야 할 체면이 복합된 나이였다. 박명수에게 마흔은 ‘할 수 없음’의 당위였다. 실제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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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스물여섯이던 내게 마흔은 까마득한 나이였다. 올 지 않을 것 같은 ‘고도’였다. 열두 살의 나와 스물여섯 살의 내가 다른 생명체 같듯 스물여섯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나도 다른 생명체일 것 같았다. 그러나 살아본 마흔 살은 스물여섯에서 두세 살 많아졌을 뿐인데 시간만 사기 수준으로 가속되어 있었다. 나는 마흔이 아닌데, 사회는 내게 마흔을 요구했다.


평균적으로 마흔은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았다. 가정을 일궈 어린 자식이 있다면, 이미 제 목숨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가정을 일구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단단한 경제적 기반과 직함을 기대 받았다. 할 수 없이, 할 수 없는 것에도 충실했다. 실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노화에 당황하며 삶에 포기하기 것이 많아지는 나이였다. 그저 노화를 본 적 없는 척하며 서른 살처럼 애쓸 뿐이었다. 노력의 톱니바퀴가 헛돌아도 괜찮은 척했다.


‘내일 모레 마흔’의 박명수는 마흔 살도 아니었다. 2006년 4월 1일, 박명수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생일도 지나지 않아 만으로는 서른다섯이었다. 2015년에 서른일곱 살이 된 하하는 노홍철, 정형돈이 탈퇴한 [무한도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부투했고, 2022년에 서른일곱 살이 된 양세찬은 [런닝맨]의 막내였다. 박명수보다 두 살 어린 유재석은 서른일곱 살이 된 2009년에 [무한도전] 전성기를 이끌고 있었다. 그것도 일요일에는 [패밀리가 떴다]나 [런닝맨] 같은 또 다른 역사를 구축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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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일 20화 특집 / 2006년 9월 20일 아이스 원정대3. 당시 박명수 나이 37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삶은 중절모를 보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라고 착각해도 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고, 사회는 좋든 싫든 그 사회만의 질서가 있고, 질서의 중심에는 숫자가 있다. 숫자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개별 인간은 이 숫자를 공전하며 나름의 자전축을 가질 뿐이다. 자신만의 계(系)를 이룬 햇님 같은 유재석의 성취를 우상화 하고 모두를 따르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 22년 유재석조차 더 이상 10년 [프로 레슬링 특집]을 소화할 수 없다. 다만, 그 나이를 살아 봤기에 숫자가 보일 뿐이다.


내게 마흔 살 전의 마흔 살은 저주였다. 내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몸담았던 학원 원장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마흔 살에는 강의하는 거 아니야.”


그는 교주적 카리스마로 강의실을 지배했다. 그가 강의력만으로 단기간에 지역 유명 학원을 일궈낸 것이 납득되었다. 그는 학원의 핵심인 본인이 스스로 강의에서 빠지며 시스템을 구축할 결단을 내렸고, 성공적으로 해냈다. 내가 그 학원 출신임이 내 밥벌이에 도움이 될 정도로 그 학원은 지금도 탄탄하다. 그의 마흔 살, 그는 사교육 심장부인 대치동을 공략했다. 서울대로부터 시발하는 사교육 생태를 역류했으니 교촌 치킨보다 대단해 보였다. 얼마 후 목동까지 진출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는 마흔 살에 강의에서 손 뗄 자신도 없었고, 손 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 무의식에 그가 새겨졌나 보았다. 마흔 살에는 새로운 페이즈(phase)를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정작 내 서른일곱에는 새로운 페이즈 준비는커녕 기존 시리즈의 붕괴 위기에 직면했었다. 최악의 서막이 열렸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강의에서 손을 떼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2018년 봄, 내 통장 바닥 아래의 바닥이 개막하던 그 해, [무한도전]이 공식적으로 종영되었다. 하하 나이 마흔이었다. 그래서 마흔은 더 끝에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내 입에도 ‘내일 모레 마흔’을 자주 읊조렸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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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0일 300회 쉼표 특집. 정작 박명수는 마흔셋에 '방배동 살쾡이'로 작곡과 디제잉으로 활동 범위를 넓힙니다.


버텼다. 아니, 그냥 있었다. 있다 보니 버텨져서 봇짐장수처럼 이 집 저 집 떠돌다가 마흔에는 공부방에 터를 잡았다. 코로나가 터져 몇 달은 월세만 또박또박 갖다 바쳤지만, 버티는 데는 이골이 났다. 나이 마흔, 근근이 나잇값을 따라잡았다. 혹은 그렇다고 믿었다. 그뿐이었다. 숫자의 밀도가 조금 높아진 정도.


마흔을 넘겨 버리자 삶은 거짓말처럼 시시해져 있었다. 마흔은 과연 흔들리지 않는 지겨움, 불혹이었다. 내게 남은 삶은 지금까지의 삶에 딸린 부록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취향을 압살해 가며 불혹의 숫자를 겨우겨우 채워낸 셈이었다. 기껏해야 [무한도전]의 농도만 진해질 시간이라면 굳이 없어도 상관없는 시간 아닌가. 뭐 하나 재미있는 것도, 앞으로 기대되는 것도 없었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깔아 둔 야동을 일주일 넘게 클릭하지 않음으로써 감히, 유부남들의 ‘의무방어전’에 공감했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사겠다고 다짐했던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전집은 장바구니에 담지도 않았다.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무한도전]은 마흔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숫자로 된 직장이 아니라 삶이었다. 2012년 300회 특집에서 유재석은 [무한도전]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프로그램이라고 했고, 정형돈은 [무한도전]의 종영이 자신의 끝일 것 같다고 두려워했다. 실제로 [무한도전]이 종영되자 멤버들은 후광을 잃었다. TV에서 자취를 감춘 정준하는 물론, 유재석조차 무게감이 떨어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무한도전]이었다. 유재석-정준하-하하는 그 시간대 새 프로그램으로 돌아왔고, 박명수-정준하-정형돈은 유튜브에서 [무한도전]을 팔았다. 노홍철은 미안한 마음에 멤버들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본인이 구축한 [무한도전]의 정신, ‘하고 thip은 거 하the요.’에 충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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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0일 300회 쉽표 특집


왜 내 인생을 [무한도전] 멤버들이 대신 살고 있는가. 형인 사람들이 저 어린 것이 되는 시간 동안. [트루먼쇼]의 시청자만도 못한, 나는 펄스맨(false-man)이다. 펄스맨은 숫자의 중력에 항복하는 것이 자존감에 이롭다는 정언명령에 충실한다. 숫자의 중력권에 진입하면, 좋아하는 것들은 다 불타버리고 세상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과 상관하기 싫은 것들의 우주로 밀폐된다. 저 멀리 크고 뜨거운 숫자를 중심으로 공전하기 지겹다. 일상이 메마르고, 숫자가 너무 밝아 달도 보이지 않는다.


달빛이 열기를 식혀 ‘좋아하는 것’이 이슬처럼 맺힐 것이다. 달빛이 내리는 시간, 사물의 윤곽이 흐릿해지며 내가 만져도 될 것 같은 순함, 마법의 문이라도 열릴 것 같은 비합리적인 은밀함, 내가 은은해져도 괜찮은 시간을 호흡하고 싶다. 그러나 인간 생애 주기에서 숫자가 가장 단단한 불혹, 맞서기 쉽지 않다.


긴 밤 지새우고 매일 아침 맺힌 각목보다 강했던 아침 발기 대신 내 맘에 공허가 알알이 맺힐 때 또, [무한도전]을 보는 자폭이 반복된다. 낡은 미소를 배워 때워지는 시간이 아깝다. 남은 인생을 20대에 붙은 커다란 혹처럼 살지, 내가 혹한 것을 한겨울 따뜻한 커피처럼 혹혹 마시며 살지는 결국 내게 달렸다. 지금의 나는, 언젠가의 내가 ‘저 어린 것이 쯧쯧’ 할 불혹이다. 혹부리영감이 아닌, 혹(惑) 뿌리 내려 영감(靈感)에 충실하고 싶지만 숫자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는 장면만 떠오른다. 뭔가를 좋아할 줄 모르는 마음의 발기 부전 환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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