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결핍 증후군

처음 전문가들 - 무한도전

by 하루오

첫사랑, 첫눈을 제외하면 ‘처음’은 대체로 풋풋함이나 설렘보다는 압도적 미숙함으로 경험된다. 모 대학에서 학생들이 교수를 상대로 시위할 때, 교수들 앞에서 교수의 석사 논문을 낭독한 것은 유쾌하고 잔인했다. 처음을 유린한 인격 폭행이었다.


내가 자살한다면 인터넷 검색 기록이나 야동보다는 그동안 썼던 글부터 지울 것이다. 지금도 글을 잘 쓴다고 못하지만, 이십대 초에 쓴 글들은 맞춤법조차 어지러웠고, 이십대 중반에 쓴 글들은 어려운 단어와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럴 듯한 표현의 허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사진으로 추억을 남길 때, 나는 방구석과 도서관에서 글똥만 싸댔기에 차마 지우지도 못했다. 텍스트로 된 내 옛날 사진을 내 학생들이 보는 것은, 아이고, 2007년 1월 7일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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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은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나와 자신의 데뷔 시절 영상을 공유했다. 정준하는 퍼석해진 빵 같은 2007년과 달리 데뷔 초에는 발효 전 밀가루 반죽처럼 매끈하고 탱탱했지만, 엑스트라 연기가 어색해 민망해 했다. 정형돈은 일요일의 마침표였던 [개그 콘서트]에서 인기 코너를 이끌던 영광을 되새겼지만, 그 영광이 단발머리까지 가려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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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7일 묵은 때를 벗자, 초심으로 돌아가주길 바라

나머지 멤버들은 아예 얼굴이 폭발했다. 그들의 ‘첫’은 미숙함이 미숙한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서 어설펐다. 예능 출연자들이라면 웃기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과장해서 대응하기 마련이지만, 얼굴에 차오르는 혈류까지 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로의 처음을 향한 비웃음을 술잔처럼 교환하며 다들 술이 찬 듯 불콰해졌다.


하하와 노홍철은 불과 4-5년 전 영상에도 안절부절 못했다. 특히 훗날 카메라 앞에서 속옷이 벗겨져도 의기양양해 하고, 지금의 관찰 예능보다 더 극한 수준의 사생활 공개를 자처한 노홍철조차 얼굴을 붉힌 것은 의외였다. 그들의 처음은 당대 ‘엽기’ 문화에 부응하는 폭탄머리와 이색 수염으로 각각 주목 받았다. 주목을 끌어야 하는 신인의 사정과 주목을 끄는 것이 즐거운 개인의 성향이 다듬어지지 못한 자기애로 뿜어진 것이다. 이름을 알린 2007년의 그들은 과거의 자기애를 감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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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기로는 2인자라면 섭섭할 박명수도 과거의 자신 앞에서 무너졌다. 신인 개그맨으로서 광고를 찍은 몇 안 되는 사례로 당대 인기 개그맨으로 손꼽혔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촌스럽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쌍꺼풀 성형 전후의 차이가 극명했다. 멤버들은 신나게 비웃었고, 박명수는 처음에는 태연한 척했지만, 끝내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치겠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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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너의 백미는 유재석이었다. 2005년 KBS 연예대상에 이어 2006년 MBC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예능의 정점에 선 2007년 유재석에게도 1991년의 자신은 너무 어설펐다. 대학 개그제 장려상에 귀를 후비며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했고, 동료들과 함께 추는 ‘step by stetp’에서 혼자 스텝이 꼬였다. 유재석은 영상을 보는 내내 시뻘게진 채로 호들갑을 떨며 자주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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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너무 미미했던.

2007년의 유재석이 16년 전 자신을 부끄러워하듯, 2023년의 유재석은 2007년의 유재석이 부끄러울까? 그렇지 않을 듯하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선수가 2002년 자료 화면에 어깨가 펴지듯, 전성기는 시간이 만드는 촌스러움을 압도한다. 2022년 유재석은 건재함을 너머 경쟁자 없는 브랜드가 되었다. 다수의 멤버들을 데리고 진행할 때, [무한도전]에서처럼 굳이 가운데 서지 않았다. 유재석이 있는 곳이 중심이었다. 2023년이라고 해서 썩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2007년에 비해 체력은 떨어졌을지 모르나 그때보다 진행에 능숙해졌고, 그때보다 깐죽댔다, 나이 오십 넘어서.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데, 한 걸음이 무겁다. 시작이 반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에 절반을 가야 하는 부담감이 첫 걸음에 무게를 더한다. 무게에 짓눌려 게으름과 두려움이 복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발을 떼야 했기에 부자연스럽거나 어설프다. 미숙아로서 미숙함에 맞서는 것이다. 그래서 훗날 되돌아보는 처음은 부끄럽기 마련이다.


[무한도전]에는 또 다른 처음들이 있었다. 아니, 그들에게는 처음이라기보다는 처음을 쌓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자연인’으로 알려졌고, 그 전에 [개그콘서트]에서 ‘헬스보이’로 알려진 이승윤은 2006년 7월 1일 [무한도전] 하와이 특집에 등장했다. 물에 뜬 부표에 음식을 나르는 진행 보조 요원 역할이었다. ‘부담 몸매’가 꼭 이승윤이었지만 내가 아는 그 이승윤인지 긴가민가했는데, 유재석이 ‘승윤 씨’라고 불렀다. 그해 이승윤은 KBS 21기 개그맨이 되었다. 또한 과장해서 웃지 않으면 예쁘지만, 못생긴 여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오나미로 추정되는 인물은 2006년 10월 7일 추석 특집에 등장했다. 박명수 닮은꼴로 나와 필사적으로 박명수였다. 그러나 이름이 호명되지 않아 오나미라고 추정할 뿐이다. 오나미가 맞다면, 그녀는 2년 후 2008년 KBS 23기 개그맨이 되었다. 정식 개그맨이 되기 전, 이들에게 [무한도전] 보조 출연은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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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일의 이승윤과 2006년 10월 7일 오나미로 추정되는 인물


그리고 나는 어떤 처음을 준비하고 있을까? 처음을 겪은 지 꽤 오래다. 한 번 제 영역을 구축한 인간은 그 영역 안에서 살아가려 한다. 물론, 마흔 넘어서 어떤 처음을 맞이한다면 도전보다는 낙오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익숙함의 관성은 힘이 세다. 보수(報酬)에 길들여진 보수(保守)는 관성의 보수(補修)를 불허한다. 노래도 가끔 외도하더라도 결국 좋아했던 것만 듣게 된다. 먹어 본 적 없는 성게알 파스타에 대한 호기심보다 내가 알고 있던 순대국밥보다 더 맛있는 순대국밥이 당긴다. 살아갈수록 처음이 결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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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은 매회가 특집이었으므로 멤버들은 캐릭터의 타성에 젖을지언정 상황은 황당한 수준의 처음들이었다. 긴장감에 전날 밤 잠 못 이루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처음전문가’가 되어 [무한도전]을 해냈다. [무한도전]은 누구보다 다채롭고 파닥파닥 싱싱한 삶이었다. 나보다 어려진 그들이 처음을 수행하는 것을 보며, ‘처음 결핍’이 인간을 늙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함과 처음의 경계면에 있는 ‘도전’은 얇되 질긴 콘돔 같다. 콘돔 안에서 행복의 사정(射精)은 사정(事情)없이 사장(死藏)되어 나는 불행의 사장(社長)이다. 수정되지 못한 안전한 인생, 지겹다.


처음이 사멸한 시간 속에서 내가 준비하는 처음은 죽음일 것이다. 이 처음 준비는 이승윤이나 오나미가 [무한도전] 촬영 전날 느꼈을 설렘과 희망이 없다. 그래서 사사로운 처음들이 필요하다. 어차피 삶이란 죽음을 향해 쓰는 짧은 억지다. 어색하고 미숙한 처음들로 속수무책의 결과에 대해 억지라도 시끌벅적하게 부려야 할 것 아닌가, [무한도전]처럼. 이 ‘무한 가만히’의 시간이 부끄럽다. 아니,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쓴다.


내게 박명수가 말한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 진짜 늦은 거다. 그러니 당장 시작하라. 틀린 말은 아니다. 맞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당신 말이 맞고 지금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지겹기도 지겹다. 그 바람에서 똑똑, 어떤 처음에 노크하려는 마음이 여물어 간다.


무한도전 박명수.jpg 그러니 당장 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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