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지 말아야 할 비표준 자취생

형돈아 그렇게 놀지 마

by 하루오

엄마는 우주에 맞섰다. 우주는 무질서가 곧 규칙이지만, 엄마는 곧 질서다. 가부장의 세상에서도, 맞벌이의 세상에서도 집 ‘안’ 질서는 엄마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home의 제1 성분은 아빠가 아니라 단연코 엄마다. 유기물의 질서가 곧 생명이므로, 생명 현상에 기여가 더 큰 엄마야말로 질서의 정점이자 대우주 내부의 소우주다.


자취는 소우주에서 새로운 소우주가 분리되는 일이다. 탄생은 두렵고 설렌다. 독립된 내 공간을 가지는 것, 그 공간이 온전히 내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것으로 나는 확장된 권력을 체험한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다.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두든, 설거지를 미루든, 인테리어 화분을 들이든 자취방은 내 의지만 반영한다. 그러나 새 수건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날, 세면대에 물때가 끼어 있는 날, 냉장고 우유가 유통 기한을 넘긴 날, 천정 귀퉁이에서 거미줄을 발견한 날 문득, 자취는 엄마의 빈자리로 재정의 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고, 엄마는 보이지 않는 손의 큰 책임이었다. 식구의 수요를 일방적으로 공급했다. 수요와 공급은 순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집은 질서를 유지했다. 불균형한 질서의 원천은 사랑이었다. 맹목적이고 무한한 사랑은 시장법칙과 물리법칙을 거슬러 집을 집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자취생은 그 책임이 낯설다. 그저, ‘나는 존재한다. 고로 귀찮다.’의 정언명령의 망령이 될 뿐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다. 책임 없는 권력이 만드는 것은 쓰레기다.


2006년 10월 14일, 정형돈은 무책임의 극단을 보여줬다. 멤버들은 정형돈의 집을 기습 방문했다. 추석 연휴에 혼자 보내는 멤버에게 오구오구 기를 불어 넣어 주며 따뜻한 그림을 만들 계획이었다. 문 앞에 놓인 지난 밤 먹고 남긴 깐풍기 그릇은 평범한 일이었으나 놀라움의 서막이었다. 잠이 덜 깬 정형돈을 밀어붙이며 무작정 들어선 집 안은 쓰레기의 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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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 때는 노란색이지만, 내가 살 때는 갈색인 것은? - 바나나

모든 공간은 ‘제자리’라는 개념 자체가 어그러져 있었다. 물건들은 널브러져 있거나 숨어 있거나 쌓여 있었다. 입구에는 빈 술병을 담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식탁과 싱크대에는 먹을 수 있는 것들과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전쟁 중이었다. 먹고 남긴 것은 먹어도 되는 것인지 먹으면 안 되는 것인지 모호해 혼돈을 더했다. 입었던 옷인지 입을 옷인지 모를 옷가지들은 소파 구석에 쌓여 있었고, 소파는 정형돈 체형에 맞춰 구겨져 있었다. 소파에서 치약이 나왔고, 티슈통 안에서 아이스크림 껍데기가 나왔다.


냉장고는 폐허와 악취를 냉장 중이었다. 냉장의 세계에서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있는 포장 상품들뿐이었다. 먹을 만한 것이 없었고, 고등어는 정형돈에게 잊혔다가 멤버들 덕분에 미라로 발굴되었다. 옷방은 빨래방으로 명명되었다. 옷걸이가 텅 비어 있는 만큼 방바닥이 어지러웠다. 입을 생각도, 있었는지도 모를 10년이 지난 티셔츠와 발바닥이 헤진 양말은 알뜰함이 아니라 귀찮음을 의미했다. 우주 어딘가에 떠 있는 소행성처럼 그저 있을 뿐이었다. 자취방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망각과 무관심으로 인테리어된 무질서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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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4일 형돈아 놀자


정형돈은 ‘너무 리얼이다.’며 넋 놓고 사태를 바라봤고, 멤버들은 어이를 잃어갔다.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와 결벽증의 노홍철에게 정형돈의 집은 이(異)세계였을 것이다. 당시 정형돈 옷방만 한 고시원에 살던 내게도 좀 심하다 싶었다. 정형돈의 집이 넓어서 공간감 덕분에 그나마 덜 지저분해 보일 뿐, 옷방/식탁/소파가 있을 수 없는 원룸으로 압축해 보면 돼지우리는 과장이 아니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진상 세입자가 남긴 쓰레기방보다 약간 나은 수준에서 정형돈은 꾸역꾸역 먹고 잤다.


물론, 정형돈은 바빴다. 아직 [무한도전]이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기 전이지만, 주말 예능은 값비싼 전장이었다. 전장의 핵심 멤버이자 다른 예능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연예인에게 집안을 돌볼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타인을 웃겨야 하는 감정 노동자다. 열심히 일한 만큼 자신이 소진되므로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돈 벌어 놓고선 왜. 당시 스물아홉, 빠른 년생이라 학번으로는 서른 살에 해당하는 나이에 그 규모의 부를 축적한 사람이 왜 그러고 사나. ‘나’는 물리세계의 공간에 존재하며 내 공간의 핵심은 집인데 왜 그러고 사나. 나처럼 떨이 직전의 갈색 바나나가 아니라 늘 싱싱하고 노란 바나나를 살 텐데 왜 검게 물크러질 때까지 방치하나.


정형돈의 어머니는 그 회차를 보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을지를 생각했다. 정형돈의 집은 당신께 보이는 손이었을 것이다. 원래 당신이 챙기던 자리였을 테니까. 두둑한 통장 잔고로 상쇄될 수 없는 안타까움은 오직 당신의 몫이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 엄마는 그러셨을 것이다.


마흔 살짜리 나는 서른 살짜리 정형돈 자산의 절반도 못 갖춘 듯하다. 확실한 건,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의 현관, 방, 부엌, 화장실을 모두 합한 것보다 정형돈 집 거실이 더 넓었다. 침대를 뺐지만 책상을 넓게 써 바닥 공간은 성인 남자 세 명 누우면 적당할 만큼 남았다. 자산과 무관하게 층간/벽간/외부 소음 때문에 조용한 이곳에 머물고 있을 뿐이지만, 엄마는 내 나이에 맞지 않는 방을 안타까워 하셨다. 1년에 한두 번 내 방에 오실 때면, 조금이라도 밀린 설거지를 하셨다. 기름때 묻은 가스레인지와 불때가 탄 주전자까지 광이 나게 닦으셨고, 냉장고 안에 낀 김칫국물 얼룩을 닦으셨다.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금방 한다며 좁은 부엌에서 혼자 분주하셨다.


한 번은 엄마가 오시기 전, 작정하고 대청소를 했다. 해병대 조교 미친개가 와도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창틀 먼지까지 다 닦았다. 그때의 엄마는 가만히 있다가 가셨다. 사람답게 산다고 흡족해 하셨지만, 언제 장가가느냐는 다음 잔소리에 예전보다 힘이 없으셨다. 어쩌면, 당신 아들에게 더 이상 당신이 필요치 않은 공간이 불편했을지도 모르겠다고 가설을 세웠다.


다음 번 엄마가 오시기 전, 나는 평소처럼 적당히 지저분했다. 내 집은 정리정돈은 되어 있으나 청결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집이 좁을 뿐 짐이 많지 않아 정리정돈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고, 방바닥에 흩날리는 머리칼, 화장실 배수구에 엉긴 머리칼, 발로 툭 구석에 걷어 찬 이부자리, 비워 놓은 냉장고, 며칠 쌓인 설거지 거리는 내 일상의 평균이었다. 더럽지 않지만 깔끔하지 않은 빈틈, 나는 괜찮지만 엄마는 괜찮지 않은 빈틈에서 엄마는 다시 분주하셨다. 조금 더 힘차진 언제 장가가느냐는 당신의 푸념을 나는 한귀로 흘려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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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0일 사주 팔자 특집


2006년 정형돈은 보통의 자취생은 아니다. 자취가 함의하는 짠내가 없다. 아파트부터 이미 탈자취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1월 병원신세를 지고, 대사증후군 위험 진단을 받을 만큼 자신을 망쳤다. 표준 자취생은 엄마의 잔소리에 열려 있으되 걱정을 유발해서는 안 되었다. 전국의 많은 자취생들, 건강을 미리 팔아먹지 않기를. 그때의 정형돈보다 10살쯤 더 많아지고 보니 나는 정형돈의 몸이 되어버렸지만, 지금은 탈출했다. 내 우주는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안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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