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들이닥친 ‘암행어사 출두야!’는 억지춘향이었다. ‘네 취향을 네가 알렸다?’라니, 나는 춘향이를 희롱한 적 없는 시골 멍멍이 식성의 무던한 생존자였다. 입 안에 춘향이를 품었다면, 입맛이 채워지지 못하는 결핍감과 입맛을 채우지 못하는 무력감 때문에 삶이 고달파졌을 것이다. 그래서 춘향이 보기를 돌 같이 했건만, 비 오는 여름이었다.
예보 상에 비가 없었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구름이 두터워 모자, 스카프, 장갑을 떼어 내고 바람을 맨몸으로 맞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날이었다. 최근에는 출근길 11.7km를 자전거로 오갔다. 자전거는 80분쯤 걸렸다. 역을 오가는 도보 시간 더해지면 지하철로 45분쯤 걸리므로, 왕복 70분을 소비해서 하루 23.4km 자전거 운동에 2500원을 남기는 자전거의 가성비는 압도적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멈췄어야 했다.
출발 5분여 만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대기 중 습도가 낸 사소한 접촉 사고쯤으로 무시했다. 5분여가 더 흐르자 제법 굵어지기 시작했다. 오다 말겠거니 했는데, 다시 5분 후, 나는 빗속에서 자포자기했다. 돌아가도 젖은 몸을 수습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기에 그냥 가던 길 갔다. 들이붓는 수준은 아니었으나 안경에도 와이퍼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빗길 자전거 한 시간 남짓을 남겨둔 난감함과 별개로, 쾌적했다. 최저기온 30도 안팎이 지속되다 보니 25도 근처의 물기는 온 몸에서 시원했다. 다만 이 상쾌함을 상쾌함으로 받아들여도 되는지가 머뭇거려졌다. ‘비’는 ‘우산’과 자동 연결되는 생활 금기였다. 그러나 곧, 실소했다. 이미 젖은 몸, 금기는 금기를 넘어서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자의든 타의든 넘어버린 금기는 초라한 관습일 따름이었다.
어차피 도착 후 샤워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갈아입을 겉옷, 속옷, 양말도 준비되어 있었다. 자전거 녹스는 것이 문제였지만, 당근마켓에서 70,000원 주고 산 자전거에 미련은 없었다. 자전거는 이미 교통비만으로도 제값을 다했다. 체인에 기름칠 좀 해주면 그뿐이었다. 스마트폰과 지갑도 문제되지 않았다. 마침 점심으로 먹을 고구마를 싸가던 비닐봉지가 있었다. 그러자 훅 - 젖으면 어때서?
있는 그대로의 상쾌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힘을 쓴 만큼 비바람이 닥쳐왔다. 차를 탈 때 바람은 늘 옆에서 불어왔고, 샤워기 아래에서는 바람이 없었다. 비와 바람이 결합된 원시의 시원함을 온 몸으로 마주하는 태초가 개운했다. 여기에 다들 비를 피할 때 나 혼자 금기를 넘어 질주하는 고고함이 더해졌다. 속옷이며 신발까지 다 젖었을 때는 자포자기의 해방감이 절정에 달했다. ‘야호’라도 외치고 싶을 때, ‘솔의 눈’이 마시고 싶어졌다.
맥락 없는 식욕은 아니었다. ‘데자와’로 글을 쓴 후 ‘솔의 눈’에 마셔볼 계획을 세웠었다. 베스트셀러를 일부러 읽지 않는 것처럼 남들 피하는 것을 찝쩍거리는 반골 심리였다. 솔의 눈은 데자와, 맥콜, 아침햇살과 더불어 캔음료 금기 밈(meme)으로 통했다. 청개구리 심보는 계획뿐 실행은 지연되었다. 머리가 시킨 일을 입은 한사코 기각시켰다.
솔의 눈은 딱 한 번 마셔봤다. 빌딩숲에 상쾌한 바람이 부는 광고 그대로 가히 소나무 향 가득한 피톤치드의 맛이었다. 상품화 된 블루베리 맛이 상상으로 창작되었듯, 솔의 눈은 소나무 향을 설득력 있게 미각화 했다. 그럭저럭 머릿속에 초록색 바람이 스미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굳이. 커피의 카페인처럼 각성 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고, 콜라의 탄산처럼 청량감을 주는 것도 아니고, 여타 다른 음료처럼 맛에 강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건강 보조 식품과 음료수의 어중간한 혼종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비오는 날 소나무 숲에는 솔의 눈 원재료가 떠다녔다. 친구 김과 문경세재 소나무 숲에 갔을 때였다. 비가 온다기보다는 물기가 날리는 날이었다. 높은 습도 덕분에 소나무 향이 코 점막에 진득이 녹아들었다. 피톤치드란, 뇌를 빨래하는 자연 세제 같았다. 솔의 눈을 기획한 사람은 그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원재료의 신선함을 캔음료에 담아내기엔 버거웠을 것이다. 사회초년생으로서 화이트칼라의 밑바닥에서 뇌를 상사에게 맡기던 김과 나는 경쟁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뇌에 찌꺼기처럼 남은 상사들을 살균하는 통쾌함이 은은했다.
그럼에도 서둘러 내려왔다. 비가 올 경우 대책이 없었다. 당일치기 일정이었고, 김의 새 차 시트를 젖게 만들 수도 없었다. 사회 생태계 바닥의 우리 위치만큼 우리는 조심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과감할 걸 그랬다. 그날 끝내 비는 오지 않았다.
자전거로 혼자 빗길을 가르는 그날, 솔의 눈은 문경세재 소나무 숲의 바통이 되었다. 10여 년 전 그 길을 마저 오르고 싶었다. 80여 분을 비를 맞은 채로 무려, 편의점에 갔다. 내게 편의점은 깔끔한 디스플레이에 비용을 치르는 비합리적 슈퍼마켓이었다. 삼각김밥, 도시락, 샌드위치, 행사 상품을 제외한 것들은 값이 뻔뻔했다. 밝고 화려한 얼굴로 고객을 삥 뜯는 공간에 자발적으로 들어갈 만큼, 솔의 눈은 급똥의 순간 화장실만큼 다급해져 있었던 것이다.
없었다. 하긴 학원가 편의점이, 카페인도 없는 주제에 아저씨 느낌 나는 음료에게 공간을 내줄리 없었다. 이왕 맞은 비, 30초쯤 더 맞아도 상관없었기에 동네 할인마트로 갔다. 그곳에서 ‘수 없이 많은 음료 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솔의 눈’이라고 부르고 싶은 10여 년 전 문경새재 입구를 찾았다. 마지막 인피니트 스톤을 손에 넣은 타노스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피로감에 물에 젖은 옷이 몸을 바닥으로 잡아당기는 무게가 얹혔지만 나는 끄떡없었다. 솔의 눈을 따서, 마셨다. 소곤소곤한 음미, 그런 건 세일러복 입은 여고생들이나 할 일이다. 갈증 난 아저씨는 꿀꺽꿀꺽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이미 맛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비오는 날을 완성시키고 싶을 뿐이었다. 마지막 목 넘김에서 ‘암행어사 출두야!’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빈 깡통을 마패처럼 쳐들면 문 크리스탈 파워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취향은 아니다. 편의점가 1,300원, 할인마트가 850원짜리를 인터넷에서 개당 482원에 30개를 주문했지만 아직은 아니다. 남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것과 좀 친해지려는 노력일 뿐이다. 그리고 그릴 뿐이다. 25도 안팎, 부슬비보다 조금 더 굵은 비가 성실하게 내리는 날, 문경세재 소나무 숲을 우산 없이 걷고 싶다. 이왕이면 김보다는 춘향이와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 때까지는 솔의 눈으로 버텨 보려 한다. 솔의 눈의 시간이 오래 갈 것 같지만, 맑고 깔끔해서 생각보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