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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Feb 23. 2021

영심이 - 기억의 제자리

(함께 해서 즐거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마흔 살.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적어지기 시작하는 나이다. 시간의 물리량은 살 날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어 체감시간이 짧아진다. 특히 20대 후반부터는 숫자와 꼬리잡기 하느라 기억할 만한 사건이 드물어졌다. 40대, 50대, 또 그 너머의 나이로 이어질 체감 시간은 내 예상보다 더 줄어들 것이다.


시간에도 중력이 있다. 살아가는 관성은 스케줄, 계획, 목표 등의 형식으로 인식을 미래로 밀어내지만, 기억은 중력이 되어 인식을 과거로 끌어당긴다. 시간의 수직선상에서 나는 좌우로 끌어 당겨져 현재가 텅 빈듯하다. 문득 엄습하는 쓸쓸함은 그 때문이다. 쓸쓸한 인간은 아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희망하기보다 추억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며 시간의 중력에 길들여지다 보면 알게 된다. 마음도 늙는다. 이 글은 노화의 증거다.


만화 오프닝 음악은 시간의 강력한 중력이다. 더 이상 내 인생은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리지 않고, 슈파 슈파 슈파 슈파 우렁찼던 생체 엔진 소리는 잠잠해져 가고, 리코더로 불어댄 미미파솔 미미파 솔파미레 도레미미를 기억하고, 똘기 떵이 무리들 덕분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잊지 못한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무거운 날에는 무작정 걸으며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은 아니야’를 염불처럼 흥얼댄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쌓고 나서 ‘랄라랄라 랄라랄라 랄랄라’ 해버리면 세상이 조금 쉬워진 기분이 든다.


90년대 초에 KBS에서는 금요일마다 국산 만화를 방영했었다. 완결이 되면 일요일 낮, [전국 노래 자랑] 다음 시간에 두세 편을 몰아서 재방송 해줬다.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 [옛날 옛적에], [날아라 슈퍼보드], [마법사의 아들 코리], [녹색전차 해모수]가 주요 라인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는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장기 대회 방송을 보며 [디즈니 만화동산]을 기다렸을 정도로 만화에 열성이었다. 그러나 결말들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내가 기억하는 장면의 파편 속에서 엔딩 없이 영원히 살아 있는 것 같다.


[영심이]는 내가 좋아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초등학생 남자 아이에게 좋은 만화란 멋있는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였다. 로봇이 없으면 최소한 히어로가 악의 무리를 무찔러야 했다. 지구 정도를 구하지 않으면 세상 시시한 초등학생 남자 아이에게 여중생의 일상 코미디물이 눈에 찰리 없었다. 그래도 영심이는 [들장미소녀 캔디]나 [베르사유의 장미]처럼 그림체가 ‘여자여자’하지 않아서 볼 만했다.


영심이가 첫사랑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있다고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다. 까칠한 하니보다 예쁜 이목구비도 아니고, 세일러문에 비하면 아동에 가까운 몸이다. 자신을 골탕 먹이는 구월숙 외에는 친구라고 여길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교성도 없고, 초등학생 동생에게 당하고 살 정도로 세상 맹하다. 그런데 나는 영심이를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스물한 살을 떠올린다.


나는 왕경태였다. 선배들이 닮았다고 했다. 둥근 얼굴과 다듬지 않은 헤어에 뿔테를 쓴 모습이나 어리숙한 태도가 판박이랬다. 왕경태로 낙인찍히고 나니, 선배들은 내게 영심이 안부를 물었다. 헤어진 지 오래라고 눙치면, 선배들은 왕경태 주제에 영심이와 헤어지는 거냐며 다시 영심이를 데려 오라고 했다. 내가 연애를 하면 상대가 누구든 영심이로 불릴 판이었다. 1년 내내 영심이는 없었다.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영심이는 새내기 ‘연심’이로 나타났다. 이름의 유사성 외에 닮은 것은 이마를 까고 뒤로 묶은 머리뿐이었다. 연심이는 누가 봐도 예뻤기에 다들 마음 놓고 연심이를 영심이라 부를 수 있었다. 연심이는 영심이에 이골 난 듯, 그러려니 했다. 뭐라고 불리든 연심이는 예쁘장하게 생긴 스무 살 여대생이 누릴 수 있는 환대를 받았다. 우리는 학기 초 신입생 환영회, 개강총회, 봄MT, 농활 등에서 세트로 묶였다. 새내기는 싫은 티를 내지 못했고, 아직 연애를 못 해본 왕경태는 떠밀리듯 가까워지는 사태가 싫지 않았다.


우리는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두세 달 썸을 타는 중에도 저렇게 예쁜 여자 아이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나는 우리 사이를 확신하지 못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여자를 사귀는 것은 무례라는 생각도 내 우유부단함을 부채질했다. 그러다 말없이 입대해 버렸다. 입대한 후 연심이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으로 썸보다 깊은 관계였음을 증명했다. 내가 복학했을 때 연심이는 남자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될 수 있으면 서로를 피하다가 혹시라도 마주치면 간단한 인사만 나누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한 시절이 끝나고 20여 년이 지났다. 감정은 풍화되고 기억만 뼈처럼 남았다. 살아갈수록 뼈로 남을 시간이 잘 찾아오지 않기에 오래된 뼈들이 더 따뜻했다. 시간 속에 보존된 이 따스한 화석은 공룡 화석처럼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 뼈에 살과 피가 붙어 있을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호랑이와 사자의 싸움 승자, 물이 투명한 이유, 무지개의 시작과 끝점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는 신입 중년에게 호기심은 귀했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부류의 이야기는 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 된다. 이야기가 끝나버린 후의 행복의 내용은 뭘까? 강백호는 부상에서 회복해 김판석을 눌렀을까? 철이 든 하니는 나애리에게 사과했을까? 머털도사는 묘선이와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았을까? 77년생 영심이는 지금도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를 기억하고 있을까? 82년생 연심이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최소한 김지영 씨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호기심보다 힘이 센 것은 귀찮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SNS로 염탐할 수 있었지만 SNS를 설치하고 가입하는 절차가 번거로웠다. 길거리에서 열 살 안팎의 아이 손을 잡고 가는 여자들을 보며, 연심이도 저쯤이겠구나 하며 귀하지만 하찮아진 호기심을 뭉갰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뒤늦게 결혼한 동기(이제 동기 중 미혼은 나 하나였다.)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동안은 결혼식에 축의금만 보내 왔었다. 백수 때는 사람 앞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 싫었고, 사교육 밥을 먹으면서는 주말에 수업이 몰려 갈 수 없었다. 그때는 마침 수업이 없었다. 수업 때문에 못 간다고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심심함이 귀찮음을 무질렀다.


결혼하는 동기는 과대표까지 하며 발이 넓었던 터라 결혼식은 총동창회가 되어버렸다. 다들 십 몇 년 만에 만나 반가웠고, 나름 훈훈했다. 그러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엊그제 헤어졌던 사람들인데, 갑자기 나이 들어 있었다. 외형뿐만 아니라 스타일이든 성격이든 조금씩 기억과 어긋났다. 피로연장은 조금 늙어버린 가짜들이 내 기억 속의 그들을 연기하는 공연장이었다. 말로는 변한 게 없다느니, 뭐 하며 사느라고 소식도 못 주고 받고 사는지 모르겠다느니, 정기적으로 모이자는 웃음 속에서 나는 그 시절 나를 연기하는 가벼운 피로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시절의 유사품임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 다 안다. 우리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연심이를 닮은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내게 반갑게 인사했다. 내가 긴가민가하며 머뭇대자 아주머니는 자신을 연심이라고 소개했다. 연심이가 먼저 둘째 출산 후부터 몸이 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격의 없이 안부를 주고받았다. 겉보기에 우리는 편안한 사이처럼 보였지만 나는 내심 불편하고, 불쾌했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연심이에게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어버림으로써 내가 소중히 보관한 기억이 잔뜩 모욕 받은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 시절보다 20kg가량 몸이 불었으니 연심이의 기억을 더럽혔을 것이므로 미안했다.



그날 연심이를 포함해 열댓 명쯤 새로 전화번호를 교환했지만, 내가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선배 하나와 미혼인 여자 후배 하나에게서 새해 인사가 먼저 왔고, 나는 적당한 친밀감을 포장해 답을 보냈을 뿐이다. 사회생활이란 인간관계의 피로를 버티는 일인데, 내 편이었던 기억을 인간관계로 치환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 코로나가 터져 관계가 복원될 기회가 무마되었다. 새로 만든 단톡방들은 코로나 조심하라는 상투적인 인사만 오가다가 조용해졌다.


열네 살 영심이는 열네 살 영심이일 때가 예쁘다. 리메이크로라도 나이 먹지 않기를 바란다. 하니도, 아이캔도, 둘리나 희동이도. 너희들이 나이 먹어버린 만큼 내 기억은 중력을 잃는다. 이제는 연심이를 생각하면 나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딘가를 떠돌다 온 기분으로 침잠한다. 그곳이 어딘지 모르나 그곳의 노래는 안다. - (안) 보고 싶고, (안) 듣고 싶고, 다니고 싶고 (아니), 만나고 싶어 (아니). 알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중년 영심이, 영심이. 관둬, 관둬, 실수하면 안 돼. 넌 이미 어른이 됐으니까. 관둬, 관둬. 어서 관둬. (뭐든) 관둬. - 다시는, 떡볶이에 사이다를 약간 타서 먹던 사람을 우연이라도 마주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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