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bye, 짱)
마흔 살, 만남보다 이별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는 나이다. 결혼식들이 끝나간다 싶더니 참석해야 할 장례식이 생겨난다. 이별은 쉽지 않지만, 서서히 익숙해져야 함을 몸으로 알아간다. 물론, 절대 익숙할 수 없는 이별도 있다.
내가 본가에 들어섰을 때, 동생은 거실 바닥에 상을 펴 놓고 잡어 회에 소주를 먹고 있었다. 두 눈이 충혈된 채였다.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게 술기운만은 아니었다.
“짱아, 큰행님 왔다.”
하며 회 한 점을 유골함 앞에 던져주었다. 유골함 앞에는 회 몇 조각이 무질서하게 널려 있었다.
“인마 이거 와 먹지도 몬 하노.”
송이는 동생 뒤에서 자기도 달라고 꼬리치며 낑낑댔다.
“햄아, 짱이 아침에는 안 이랬다. 아침에는 안 이랬는데…….”
100kg가 넘는 덩치가 고개를 숙이며 어깨를 들썩댔다. 나는 동생 등을 한 번 쓸어주고 안방으로 갔다. 안방에는 엄마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기진해 있었다. 낮에 전화할 때만 해도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 시간도 안 돼 짱이가 죽었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개를 좋아했다. 계몽사의 [컬러학습대백과사전]에서 1권을 너덜너덜해지도록 봤다. 개 때문이었다. 우리는 본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서로 어떤 개가 좋은지 이야기했다. 진돗개는 우리나라 개라는 이유로 부동의 1위였고 2위부터는 순위가 갈렸다. 우리가 어떤 개를 선호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와 다른 어른이 되었고, 동생은 그때 그대로 자랐다. 동생은 사모예드 두 마리를 키웠다. 두 딸보다 짱이(♂)와 송이(♀)가 더 좋댔다.
우리가 처음 키워 본 개는 내가 10살이 안 되었을 때 구포 시장에서 산 새끼 똥개였다. 전체적으로 까만 털에 얼굴에 황색 얼룩이 있었다. 얼핏 도베르만을 닮았지만 우리는 셰퍼드라고 하기로 합의 봤다. 왜냐면 [명견 실버]에서 도베르만은 나쁜 개이고, 셰퍼드는 실버를 돕는 착한 개이기 때문이었다.
실버는 유선 방송을 통해서 봤다. 유선 방송은 만화를 차례대로 송출하지 않았다. 에피소드는 뒤죽박죽이었지만 만화 자체가 좋았으므로 순서는 문제가 아니었다. [캔디]류의 여자 만화만 아니면 다 좋았다. 더군다나 실버는 개떼가 집채보다 큰 붉은 곰과 싸우는 이야기였다. 실버 같은 개를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첫 똥개는 실버가 되었다.
우리는 함께 실버를 훈련시켰다.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어디를 가면 붉은 곰과 싸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딴에는 진지했다. 실버가 전투견으로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10살도 안 된 꼬맹이와 그보다 2살 더 어린 꼬맹이가 할 수 있는 훈련이라고는 실버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학교나 시장까지, 멀게는 버스 두 정거장 거리를 왕복했다. 동네 개들이 실버를 보며 짖어대거나 달려 들 때, 우리도 무섭지만 실버를 품에 안고 막아섰다. 실버를 훈련시킨 날 우리는 더 일찍 잠들었다.
고강도 훈련은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이 뛰어 내린 높이는 용기를 의미했다. 그래서 부단히도 계단이나 담벼락에서 뛰어내려댔다. 우리 실버는 명견 실버처럼 되기 위해 일단 가장 용기 있는 개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1층 높이의 창고에서 밀어서 떨어뜨린 적이 있다. 실버는 죽을 듯이 낑낑댔고 우리를 지켜보던 동네 아이들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도 뛰어 내리지 못하는 1층에서 뛰어내린 것이므로 실버는 동네 아이들에게 존중 받는 개가 되었다. 우리는 실버가 명견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뻤지만 그날 나는 엄마에게 혼났다.
그러고 보면 [포켓 몬스터]는 아이들의 로망을 잘 반영한 만화다. 내게 순종하는 귀여운 반려동물이 적을 공격해서 나를 지켜주는 상상은 달달했다. 나와 동생은 실버가 어서 크기를 바랐다. 붉은곰 토벌대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지켜주는 강한 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버는 새끼 티를 벗고 얼마 되지 않아 시골 할머니 집으로 가야 했다. 전세 기간이 끝나 이사를 해야 했고, 새 집 주인은 개 키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몇 달 후 방문한 할머니 집에 실버는 없었다. 할머니는 실버가 줄을 풀고 도망갔다고 했다. 만화 실버에서 실버가 사라진 것과 비슷했다. 그때 심장이 쿵쾅댔다. 훈련을 많이 받고 새끼 때 1층에서 뛰어내린 개인만큼 에이스 노릇을 거뜬히 할 것이었다.
아니, 바람일 뿐이었다. 어렸지만 개장수에게 팔아 넘겼다는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여우의 신포도 같은 믿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 이후 황구를 한 마리 더 키웠지만 두 번째 실버의 운명도 똑같았다. 그때마다 펑펑 울었고, 나는 개를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 실버들의 결말을 정확하게 모르듯 만화 실버의 결말도 몰랐다. 유선 방송은 엔딩을 잘 틀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실버의 운명을 알게 된 것은 15년은 훌쩍 지나서였다. 동네 만화방에 [명견 실버]를 발견했다. 나는 우리 실버를 만나듯 명견 실버를 팠다. 호랑이 무늬 3형제, 눈이 멀게 된 벤, 벚꽃으로 죽은 챔피언 같은 흐릿한 기억들이 하나의 줄거리 안에서 질서를 잡아 나갔다. 그러다 엔딩 근처의 ‘발도아’라는 기술에서 실소했다. 발도아는 개가 허리를 축으로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전기톱처럼 목표물을 토막 내는 기술이다. 졸지에 개 무협지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 명견 실버의 엔딩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발도아를 알았다면 실버를 회전놀이기구에 묶고 원심분리 해버렸을지도 몰랐다.
발도아 이야기를 동생에게 하니 몰랐었느냐고 물어왔다. 자기는 개 이야기는 다 기억한다고, 언젠가 꼭 개를 키우겠다고 했다. 실제로 동생은 돈을 벌기 시작하자 독립하겠다며 큰소리 치고 짱이를 분양 받았다. 사정이 생겨 독립하지 못했다가 다시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송이를 분양 받았다. 그러다 결혼해 버렸는데 신혼집을 본가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얻어 짱이와 송이는 이사하지 않고 본가에서 키웠다. 동생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본가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침대와 소파에서 같이 뒹굴었고, 거실 바닥에 상을 펴고 혼술 하면서 양 옆에 짱이와 송이를 앉혀서 안주를 나눠 먹이기를 좋아했다.
이름을 실버로 짓지 못한 이유는 짱이가 ‘짱’에 반응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출근하면 짱이는 엄마가 돌봤다. 당시 엄마는 슈퍼를 운영하셨는데 짱이를 데리고 다녔다. 그곳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지트였고,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어쩌다 보니 짱이는 짱이로 불려 짱이가 되었다. 송이도 마찬가지였다.
짱이는 사모예드 순혈은 아닌 듯했다. 일반 사모예드보다 잘생겼고, 똑똑했다. 똥오줌도 금방 가렸고, 간단한 명령어도 금방 알아들었고, 쓸데없이 짖지도 않고, 함부로 안방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물건에 손대지도 않았다. 우리가 수저를 사용해서 무언가를 먹을 때는 달라고 보채지 않았다. 대신 손으로 무언가를 먹을 때는 자기 몫이 있는 양 바투 다가왔다. 짱이를 보고 자라 송이도 똑같았다. 녀석들은 사람만 보면 꼬리를 쳐대, 엄마는 밥값 못하는 ‘똥 싸는 솜뭉치들’이라고 했다.
하루는 늦은 밤 슈퍼에 취객이 들어와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송이는 멍청하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꼬리만 쳐댔는데 짱이는 격하게 으르렁거려 취객을 좇아냈다. 엄마는 짱이가 사람에게 이를 드러낸 건 그때가 유일하다고 했다. ‘햄아, 우리 짱이 명견이다, 명견.’하며 동생은 짱이에게 나타난 실버의 기미를 자랑스러워했고, 엄마는 짱이가 밥값 한다며 시장에서 돼지 부산물을 사와 고아 먹이셨다. 덕분이 송이도 포식했다.
짱이는 몸이 약했다. 체구나 체력도 송이만 못했고, 죽을 듯이 앓아눕는 병치레도 잦았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그날, 수술만 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더니, 짱이는 수술실을 나오지 못했다. 엄마가 밥을 먹기까지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고, 동생이 짱이 환각에서 놓여나기까지는 네 달 넘게 걸렸다. 동생은 유골을 보관하려 했지만 식구들이 설득해 동네 뒷산에 묻었다. 동생은 날씨와 무관하게 매일 짱이에게 갔다. 무덤가에서 흰 개를 본 날이면 내게 전화해서 나지막이 흥분했다. 엄마와 동생은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했다.
짱이는 명견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붉은 곰이 없는 세상에서, 실버도 명견이 아니다. 그 어떤 견주도 반려견이 위험에 처하는 것도, 반려견이 사라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설사 붉은 곰이 있다 한들 그건 인간의 몫이다. 동생은 목줄 풀린 맹견이 송이에게 달려들자 앞뒤 재지 않고 맹견을 걷어찼다. 그러니 혼자 남은 송이가 발도아를 할 필요는 없다. 개는, 그저 오래 살면 된다. 그뿐이다. 나보다 더 무뚝뚝한 동생이 울음에 절여지고, 혈압과 불면으로 고생하는 엄마가 수척해진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반려견주에게 오래 사는 개가 최고의 명견이다.
지금 송이는 물혹인지 종양인지를 제거해야 하지만, 노견이라 약물로만 치료 중이다. 이제는 산책을 나가도 주차장으로 길을 이끈다고 한다. 걷는 게 힘들어 차를 태워 달라는 것이다. 이번 설에 본 송이는 훨씬 둔해져 있었다. 엄마가 요리할 때면 엄마 발치에서 얼쩡대며 뭐 하나라도 얻어먹으려고 애쓰는 게 일이었는데, 이제는 산책 다녀오면 거의 하루 종일 엎드려 있었다. 1년, 혹은 2년, 면역되기 힘든 시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