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은 만화가 아니라 또래 문화였다. 각자 취향에 맞는 웹툰을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보는 지금과 달리, 아이큐 점프에 딸려 나온 별책은 선생님 눈을 피해 교실에서 공유되었다. 다양한 형태의 해적판도 동네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주인이 있었지만 주인의 허락보다 대기 순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는 각자 손오공과 베지터가 되어 이번 화 피드백과 다음 화 예상을 에네르기파처럼 교환했다. 말의 난타전 속에서 다음 화를 향한 설렘이 충만해졌다. 스토리 전개가 빨라 설렘이 식을 틈 없었다.
지금까지 열 번 이상 정독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목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10대 때, 손오공은 남자들의 아이돌이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빌런을 손오공이 물리칠 때 카타르시스가 폭발했다. 20대 때는 손오반을 통해 재능과 적성의 딜레마에 공감했다. 손오반은 작중 최고 격투 재능을 지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전투 상황에서 취업 앞에 선 나처럼 답답하게 굴었다. 30대 때는 프리더의 리더십을 재발견했다. 프리더는 빌런이지만 내 상사들과 달리 부하들을 존중할 줄 아는 상관이었다. 그리고 40대에 접어들자 죽음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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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살고 싶으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죽음과 삶 사이에 섬이 있다. 이 섬에서 벗어나고 싶다. 어느 쪽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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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42권은 내가 처음 겪는 타인의 죽음이었다. 드래곤볼 완결 이전에도 친척 어른들이 죽었지만, 1년에 한두 번 만나 모래로 된 예의만 차리던 관계라 그들의 죽음은 먼 나라 날씨 같은 것이었다. 세뱃돈 감소만이 체감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드래곤볼은 내 일상에서 설렘과 카타르시스로 관계한 친구였다. 나는 친구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마음에 장마가 졌다. 영화에서 산 자가 죽은 자의 몸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듯, 42권을 반복해서 읽었다. 아무리 읽어도 손오공은 우부를 데리고 영영 떠나버렸다.
지진으로 작가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마지막 편은 문하생들이 뚝딱뚝딱 해치웠다고들 했다. 인터넷이 없던 때라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우부와 떠나는 설정은 싱거웠던 터라 소문을 믿었다. 죽음은 손오공의 부재만큼 갑작스럽고 대책 없는 것이었다. 손오공이 사라진 허전함을 채워주는 새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허전함에 익숙해지다가 무감해졌다. 대책 없고 무감한 것들이 모여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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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의 첫 번째 죽음은 문제되지 않았다. 드래곤볼로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셀이 자폭할 때 계왕에게로 가서 함께 죽은 것은 충격이었다. 드래곤볼로 살릴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기 때문이었다. 손오공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왈가왈부했다. 부활한 셀과 손오반의 에네르기파가 격돌할 때, 손오공이 손오반 뒤에서 함께 에네르기파를 쏘는 장면에서 초중딩들의 드래곤볼 뽕이 폭발했다. 그 카타르시스는 모든 논리를 손오공 부활로 통일시켰다.
그런데 손오공이 죽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죽은 손오공은 저승에서 계왕을 통해 이승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셀 전 7년 후 점쟁이 할머니 덕분에 이승으로 24시간 외출도 나오고, 계왕신계에 가서 손오반과 함께 생활한다. 그러다 계왕신의 목숨을 받아 부활한다. 손오공에게 죽음은 ‘지금 이곳’과의 단절일 뿐, 이곳이 아닌 세계에서는 자유롭게 존재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은 어디인가? 아마도 내가 가고 싶은 그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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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전투력은 53만입니다. - 이 한 마디로 프리더는 경악스러운 빌런으로 등극했다. 손오공과 베지터의 전투력이 몇 만 단위에서 놀던 때였다. 지금은 내가 어른이 되어버려 소년 만화를 보면 ‘주인공이 어떻게든 이기겠지’ 해버리지만, 당시 우리에게 프리더는 인격을 가진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셀과 마인부우 역시 대적불가였다. 거기다가 재생 능력까지 갖췄다. 몸이 두 동강 나도 단번에 재생했고, 잘게 갈린 고기처럼 파편이 되어도 멀쩡하게 살아났다. 현실 인간이라면 영생할 조건이었다.
프리더의 유한성은 지배를 목표로 했다. 프리더가 드래곤볼을 모으려고 한 것은 영생을 통해 영원한 지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셀과 마인부우는 무한성 때문에 목표 자체가 없었다. 셀이야 겔로 박사가 입력한 손오공 살해라는 목표가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파괴했다. 영생, 허무, 파괴는 무질서의 한 몸이었다. 그 몸에 이름이 있다면 ‘우주’다. 인간은 우주가 아니기에 일생, 실존, 창조의 질서를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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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는 ‘보는 나’가 ‘보이는 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작가라는 이상 자아에 못 미치는 현실 자아 따위는 살 자격이 없다는 것이 판결 이유였다. 나는 글을 못 쓸 뿐만 아니라 돈벌이도 막막한 시대의 찌꺼기였다. 누군가가 나를 죽인다면, 그의 무죄를 호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머뭇거리며 사형을 연기했고, 연기한 만큼 겁 많고 뻔뻔한 나를 혐오하여 사형을 독촉하는 악순환이 이뤄졌다. 내가 20대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겁이 많아서일 뿐, 편의점에서 수면 중 자연스럽게 자살하는 약을 살 수 있었다면 몇 번이고 죽었을 것이다. 이때의 정서가 글에 박혀 문체가 이 모양이다.
30대 때는 항우울제를 발견했다. 강의를 하면 살고 싶었다. 돈이 들어오는 것도 좋았지만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선생으로서의 나는 자상하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친구들은 발견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아인 셈이다. 나는 이 자아가 마음에 들었다. 이 자아로 20대가 넘겨준 찌꺼기를 희석했다. 내 20대가 만만한 게 아니어서 간혹 장기 기증을 생각할 때도 있었다. 나는 살고 싶지 않으므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 모든 장기를 나눠 주는 것이 공리를 높이는 일이다. 물론, 나는 실행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무서우니까. 인생이란 지루함과 시시함이 뒤섞인 병원밥을 먹는 것이다. 생을 향한 식욕은 없지만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40대에 들어서고 보니 ‘죽고 싶다’는 완전 박멸되었다. 이미 죽어 가는데 뭐 애써 죽으려고 할 필요 있나 싶다. 30대 때는 예전만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20대 때에 비벼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거울만 봐도 육질의 떨어진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다. 당장 상시 복용하는 약만 해도 2개다. 약이 없으면 생활이 불편해지는 유병장수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삶과 죽음은 상호인과적이다. 삶이 원인이 되어 죽음이라는 결과가 있고, 죽음이 원인이 되어 삶이 추동된다. 자살은 죽음에 대한 상상력 부족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내 몸에 깃드는 죽음의 기척들이 나를 죽기 싫게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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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잃은 것은 죽은 손오공은 가지고 있던 ‘지금 여기’다. ‘지금 여기’란 단순히 세계와 나의 연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좋든 싫든 나는 요금, 세금, 교육비, 소비 등으로 손오공보다 더 긴밀하게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봤자 그것들은 생존의 단어들이지 삶의 단어들은 아니다.
‘지금 여기’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의 결합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탐욕이 아니라 ‘생기(生氣)’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내게 생기를 한 줌씩 보내 원기옥처럼 모이면, 나는 원기옥을 원기소처럼 복용하는 것이다. 원기소는 참 맛있었는데, 요즘은 치킨을 먹어도 그저 그렇다. 초아싸이언에게 삶은 없다. 아무래도 톨스토이는 옳았던 것 같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