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맛집 No.1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by 하루오

시간의 감속이 필요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 하지만, 해야 할 것들을 반복하다 보면, 해야 하는 것들은 강박이 되어 시간을 최선에 수렴하도록 가속했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해야 할 것을 정한 사람은 나이므로 결국 내가 나의 가해자였다. 피해자도 나이므로 가해에 죄책감은 없었다. 죄책감 없는 속도를 달리다 보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시간이 듀스에 듀스를 거듭하며 헐떡댔고, 나는 방관했다. 나와 삶이 이분되었다.


평일에 소설 책 한 권 들고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에 가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전에 발견한 시간 감속 방식이었다. 독서로 바다를 몸에 입힌다는 가설은 적중했다. 독서는 내가 아는 한 시간의 가장 느린 존재 양식으로서 납득 가능한 시간 낭비였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마음 정리가 필요할 때 바다가 생각나지만, 막상 바다에 가면 감흥은 잠깐이었다. 그 이후는 시간을 파도(dig), 파도(dig), 파도(wave)만 철썩대는 지루함만 남았다. 하늘이 높든, 공기가 맑든, 바람이 상쾌하든, 가만히 있자니 어정쩡해졌다. 독서는 이 어정쩡한 지루함을 지우고 바다를 남기는 것이다.


포항은 내게 가장 간편한 바다였다. 동네 시내버스 정류장이 시외버스 기착지로 쓰였다. 버스는 경주에 정차했다가 포항까지 1시간 20분쯤 걸렸다.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영일대 해수욕장이었다. 시내버스로 20여 분이면 갔다. 그마저도 귀찮아 바다 독서는 5-6년 만이었다. 전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안 갔을 공산이 컸다. 비 갠 직후 먹어 본 바다는 이(異)세계였었고, 나는 이 세계가 지긋지긋했다.


10시 5분 버스를 탔다. 5-6년은 에어컨 청소를 하지 않은 듯 쿰쿰했다. 코로나 이후 포항 직행을 없애고, 배차 간격을 늘린 것으로 보아 회사 사정이 안녕치 못한 모양이지만, 부피가 느껴질 만큼 찐득한 공기는 비겁했다. 나는 실내 마스크가 해제되자 곧바로 마스크를 벗고 다닐 정도로 마스크를 번거로워 하는데도 마스크가 쓰고 싶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뒷자리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의자를 절반쯤 뒤로 넘겨 비스듬히 자세를 잡은 후, 챙겨간 『경청』을 읽기 시작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예상한 만큼 밋밋했다.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잔잔함, 그래서 속도를 전복하는 날 읽기 좋았다. 숏폼의 시대, 나도 스마트폰 중독에 팝콘 브레인까지 엉망이었다. 시외버스로 강제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몇 페이지 만에 덮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읽다 보니 조금씩 차분해졌다. 곰팡내도 코에 익었다.


간만에 본 영일대는 해운대처럼 자본 냄새를 풍겼다. 속도를 피해 왔더니 속도라니. 자본은 집요한 포주였다. 괜찮은 것들을 그대로 두는 법 없었다. 예쁜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접대부를 생산했다. 술집과 호텔은 화려해지고, 오래된 건물들은 정리되며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늘어서며 존재 자체로 호객했다. 여름 전에 더 예뻐지기 위해 여기저기 공사로 분을 날렸다. 나만의 은신처가 훼손된 것 같았지만, 자본의 시간에 속한 것들의 숙명은 별 수 없었음은 알았다. 나 또한 그 잔존물처럼 그곳까지 부유해 간 것이었다. 돈 냄새 나는 풍경의 뒷면에서 토박이들보다는 자본가가 부유해졌을 것을 넘겨 짚어보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기분이 들었다.


바다로 등을 돌리면 외면할 수 있었다. 물천지였다. 바다는 탁했지만,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바람은 상쾌했다. 바람만이 질감이었으므로 내 등 뒤도 모두 바람으로 씻겨 나간 듯했다. 노트북과 근거리 건물 사이에 갇혀 있던 눈을 풀어줬다. 바다에 잠깐 눈을 담갔다가, 전시된 모래조각상을 대충 훑었다가, 바닥이 지상 3미터에 떠 있는 듯한 빨간 구조탑 앞에 섰다. 영일대에 마지막에 왔을 때는 없던 구조물이었다.


올라갈까, 말까. - 백사장에 우뚝 선 구조물은 한 눈에 봐도 독서 맛집이었다. 한여름 구조대원이 앉아서 해변을 조망해야 하는 만큼, 바다를 향해 시야가 트여 있었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자리는 넉넉해 보였고, 채광도 되어 있어 바닷바람 맞으며 책 읽기 더 없이 좋아 보였다. 다만 45도로 기울어진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기 무서웠다. 잠깐 망설였지만, 본전 생각이 더 간절했다. - 여기까지 오기 얼마나 귀찮았는데.


IMG_20230531_115406.jpg
IMG_20230531_124429.jpg



높이의 짧은 허공을 빠져나가자 서국(書國)이었다.


진짜다. 내가 공개해 버려 독서 맛집을 영영 빼앗길지도 모르겠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청』을 읽었다. ‘경청을 읽다’를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경청』을 갖고 가길 잘한 듯싶었다. 이미 ‘무엇’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해진 시점이었다. 평일 12시, 드문드문 지나가는 관광객과 주민들이 있었지만, 높아진 내 시야에 거슬리지 않았고, 그들이 내는 소리도 파도 소리에 완전히 묻혔다. 바다와 나 사이에 오직 책만 존재했다. 책이 경청되었다. 그 상태면 20대 때 읽다가 포기한『존재와 무』도 산뜻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나나나나나나나 날 좋아 한다고, 하며.



이날 낮 최고 기온은 26도로 그늘의 바람에서는 포카리스웨트 맛이 났지만, 오래 있으면 쌀쌀했다. 예전에 무방비로 가서 추웠던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청자켓도 챙겨 갔었다. 옷깃을 여미고 천천히 읽었다. 허기를 무시하고 점심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1시 30분쯤까지 느리게 읽다가 엉거주춤 내려왔다. 생각보다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았다. 완충된 스마트폰처럼 자신만만해졌다.


북쪽 물회 거리까지 걸었다. 입구 근처 물회집에서는 매운탕을 주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거리 끝까지 들어갔다. 처음 영일대 해수욕장에 왔을 때 갔던 ‘이어도’ 2층 창가로 갔다. 외곽이기 때문인지, 평일이기 때문인지,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몰라도 장년 부부 한 테이블만 식사를 끝내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가 먼저 자리를 떴고, 아주머니는 자기 먹고 있는데 먼저 자리를 떴다고 아저씨를 욕하는 걸로 봐서 불륜은 아닌 듯했다. 내 식사가 나왔을 때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TV 소리도, 음악 소리도 없는 내 물회는 은밀한데 홀가분하기까지 해서 불륜보다 맛있었다. 밥 하나를 추가했다.

IMG_20230531_131829.jpg
IMG_20230531_134439.jpg


식사 후 전망대로 갔다. 구조탑이 있는 줄 몰랐을 때는 이곳에서 시간을 채울 요량이었다. 바깥쪽에 자리 잡고 책을 읽다가 바람이 거세서 안쪽 기둥 뒤로 자리를 옮겼다. 제대 후 여행 중인 듯한 남학생 3명이 내려 간 이후, 전망대를 독점했다. 공공재를 사유화할 때 나는 부자였다. 영일대 전체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 속 30여 분 후, 여학생 둘과 모녀 두 팀이 거의 동시에 올라와 재재거렸지만 괜찮았다. 내겐 ‘구조’탑이 남아 있었다.

IMG_20230531_141817.jpg

내 수오재(守吾齎)로 돌아왔다. 등 뒤의 동그란 바람구멍으로 볕이 들어 빛 얼룩이 생겼다. 뒤통수와 등으로 가리면 책 읽는 데 문제없었다. 펼친 책 굴곡 사이로 볕을 하트 모양을 만드는 주책도 떨어봤다. 책 사이에 끼워진 하트 모양 책갈피는 빛나고 따뜻한 책의 심장이었다. 책의 심장에서는 파도소리가 났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박자를 『경청』하다보면, 인간이 타인을 완벽히 경청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할 수 있었다. 이해를 포기하니 관용할 여유가 생겼다. 다르고 빠른 산만한 것들이 파도소리로 단조로워졌다. 단조로움 속에서 언어는 기능을 잃어 말하기와 듣기는 다르지 않았다. 말하기와 듣기는 몸을 비비는 고양이처럼 나를 쓰다듬었다. 바다가 잔뜩 묻은 나는 왠지 내 할 말을 다한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경청되었다.

IMG_20230531_144736.jpg


‘어떤 면에서 삶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경청』 中


나는 조금은 삶 그 자체였었던 듯했다. 파도소리와 심박의 정확한 함수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모든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되었으므로 내 심박이 삶보다 파도소리에 더 높은 근친성을 보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타당했다. 책은 언어로 된 파도였다. 속도에 날카롭게 깎였던 모난 마음들이 파도 속에서 몽돌처럼 몽글몽글해졌다. - 인생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 무엇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 했으니 how는 fine thank you 하며 and you를 위장할 뿐이다. 무엇은 ‘누구’가 되지 못하고 익명으로 침몰한다.


완독하지 않고 구조탑에서 내려왔다. 완독은 시간을 재촉하게 될 것이 뻔했다. 어차피 집으로 가는 길에 읽을 까치밥 같은 시간도 남겨야 했으니 급할 건 없었다. 꽤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한가로웠고, 4시였다. (끝)


IMG_20230531_12195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