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워서 가장 먼 휴양지, 직장

by 하루오

자영업자는 갈 수 없는 휴양지가 있다. 직장이다. 연차내고 직장에서 뒹굴댈 수 있다면, 그곳이 괌이고, 세부고, 하와이고, 달나라다. ‘너희는 일하니? 난 쉬는데.’의 실시간에서는 권력 맛이 난다. 내게 지시하던 사람들이 내게 간섭할 수 없는 무적자(無籍者), 나님이시다. 홀로 안전한 곳에서 좀비 떼에게 쫓기는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선, 굳이 그들을 구해주지 않아도 되는 윤리적 정당함까지, ‘자유’가 폭발한다.


일반 휴양지에서 누리는 자유와 질이 다르다. 휴가는 일상에서 벗어난 일종의 도피다. 나를 새로운 상황에 밀어 넣는 것이다. 그러나 연차내고 일상의 중심으로 되돌아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내게 절대적이었던 것을 무시할 수 있는 힘으로 상황이 나 중심으로 전복된다. 내가 아닌 것들이 좀비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다들 내 휴양을 위한 NPC(Non-Player Character)일 뿐이다. 나만 홀로 고고한 인간이다. - 훗훗, 하찮은 닝겐들, 뭘 그리 아등바등 사시나.


나도 내가 참 별로다. 타인을 깎아 내리고 그 격차가 발생시키는 위치 에너지로 자존감을 충전한다. 한심하고 옹졸한 방식이자 솔직한 본성이다. 가난 포르노는 감상 주체에게 대상을 관망하고 동정할 수 있는 안도감을 선사한다. 후원금을 보내는 것은 착한 나를 구매할 수 있는 권력이다. 나와 너 사이의 상대성은 현실을 박동하는 전압이다. 내가 하루를 굶어도 네가 이틀을 굶으면 마음의 풍요를 얻는 게 인간이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 학교 도서관에 갔다. 필라테스 할 때 입는 검정 티셔츠에, 당근마켓에서 10,000원에 업어 온 체크무늬 면바지에 때 묻은 크록스를 신은 채였다. 학생들과 비슷하되 보다 후줄근한 차림이었다. 이게 중요했다. 힘을 숨긴 찐따. 주임 교수님을 만나든, 학생을 만나든 알 바 아니었다.


시간 강사 계약은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었다. 암묵적으로 연장되어 왔지만, 다음 학기는 어찌 될지 모르는 게 이 바닥 생리다. 나도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싶었다. 이 일을 시작할 때에 비해 최저임금은 155% 올랐지만 여기 시급은 16% 올랐다. 하루 6학점 수업이면 아직 막노동 임금보다는 많았고, 어차피 내 본업과 활동 시간이 겹치지 않으므로 괜찮은 부업이었지만, 출퇴근이 멀었다. 이번 기말 고사 기간은 내 평생에 다시없을 휴양 기회였다.


평소처럼 도서관 지하 편의점부터 갔다. 평소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웠지만, 이날은 9시 30분쯤 느지막이 왔기에 커피에 쿠키를 샀다. 쿠키는 안 먹어도 되었지만 ‘군것질하며 만화책을 봤다.’는 문장을 쓰고 싶었다. 1층 전산실에서 본업에 쓸 자료와 작년 대입 기출 문제를 인쇄하고, 3층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도서관에 왜 만화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만화책이 전집 단위로 있었다. 만화 대여점을 이용하던 나는 이불 뒤집어쓰고 귤 까먹으며 종이 만화책 보던 정서가 그리웠다. 휴양 메뉴는 [헌터X헌터]로 정했다. 일단 1-14권까지 쌓아놓고, 채광이 잘 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이게 중요했다. 쌓아두는 것. 그리고 내 허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 불량한 자세로 비스듬히 앉아 쿠키를 또각또각 조각내 먹으며 본격적으로,


너희는 시험공부 하냐? 난 만화책 보는데.


나를 두르던 맥락이 예상만큼 전복되었고, 내가 양식한 전복은 자연산보다 맛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상은 타인들이 침투해 들어오므로 자연산이 더 인위적이었다. 내가 억지로 만든 도서관의 인위가 내가 나일 수 있어서 내게 더 자연스러웠다. NPC들이 최선을 다하는 만큼 내 한가로움은 배가 되었다. ‘나뽕’이 슬금슬금 차올라 나는 전설의 ‘초한가로이언(드래곤볼)’으로서 ‘no.1 인류(슬램덩크)’였다.


5분쯤 읽다가 계획을 바꿨다. 하루 만에 다 읽지도 못할 텐데 다음 학기 기약도 없으니 지금 [헌터X헌터]를 시작하는 게 맞는가 싶었고, 어차피 완결되지도 않은 책이었고, 작가 허리가 고장나 완결은 기약할 수도 없었다. 감질만 태우다가 아쉬움만 남을 바에는, 이영도 작가의 [눈물을 마시는 새]가 나을 듯했다. 만화책은 아니지만, 내 맘이다. [헌터X헌터]처럼 독자들이 작가를 천재로 추앙하며 차기작을 내달라고 굽신굽신 하는 밈이 인상에 남았었다. 고지식한 분류법상, 판타지 소설을 ‘보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라기보다는 텍스트로 된 만화책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너희는 시험공부 하냐? 난 [눈물을 마시는 새] 보는데.

성공적.

압도적으로. 그리고 반성했다. 짧은 시간 안에 인물과 분위기가 납득되었다. 과장되고 고답적 문장이 작품 분위기를 이끌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눈물을 마시는 새]이기 위해서는 꼭 이 문장이어야 했으므로 나는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읽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 안 본 눈이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를 납득했다. 로맨스에 심드렁한 보통 남자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삐딱하게 묻는다. 문학적 감수성이라는 건 ‘여성형 감성’에 제한된 협의는 아닌지. 논리로 응축된 상상력의 압도적 서사에서 가슴이 웅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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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텍스트는 일이었다. 읽는 것도, 쓰는 것도 10원어치라도 생산적이어야 했다. 읽고 싶은 것보다 읽어야 하는 것들을 읽었고, 읽을 때마다 펜과 메모지가 동반되어야 했다. 읽는 것이 부담이 되며 읽고 싶은 마음이 휘발되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는 동안 ‘읽고 싶은 마음’이 태동했다. 시간 낭비한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떨쳐낼 수 있었다. 잊고 있었지만 나는 텍스트와 살 비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미루다가 예상보다 늦게 교직원 식당에 갔다. 학교 측에서 식비를 지원해줘서 내가 부담하는 비용은 2천 원인가 3천 원인가 했다. 입금된 월급을 따져 본 적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 일상적으로 누추하게 먹었기에 기본적으로 교직원 식당 밥을 좋아했다. 간혹 영양사의 도전적 반찬이 나오기도 했지만 내 집밥보다 나쁘기 힘들어서 괜찮았다.


구두 떼 사이의 크록스는 군계일학이어서 에피타이저부터 성공적이었다. 햄버거에 볶음밥은 생각해보지 못한 조합이었다. 예상 밖의 것들은 여행과 어울렸다. 콜라 대신 햄버거에 유부 된장국으로 목을 축이는 것은 이국의 식문화로 다가왔다. 내 입맛 허들은 높아졌지만, 아직 평균에 미치지 못해서 괜찮았다. 그래도 감자튀김에 케첩이 없는 것은 별로였다. 모든 이문화가 내 마음에 들 수 없는 것도 오늘에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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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판을 반납하고 나서야 콜라도 있는 걸 발견했다. 보통은 배식 받을 때 음료도 배식 받아 갔지만 나는 식사 후 나가는 길에 음료를 받았기에, 그날도 음료 자리의 까만 물을 평소처럼 매실차인지 알고 지나쳤던 것이다. 식후 콜라를 마시면서 이왕 콜라를 마시는 데 햄버거 하나 더 먹을까 하다가 오전에 쿠키도 먹었기에 참았다. 최근 살이 올랐다.


시험 이야기를 재재대는 학생들을 헤치고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아직 점심시간이라 짐만 있는 자리들이 많았다. 이번에는 긴 소파로 가서, 에라 모르겠다, 누웠다. 낮은 소파라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발 올리고 눕는 것 자체가 민폐와 민폐 아님 사이에서 아슬아슬했다. 시험 기간 초기라 학생 밀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이날은 작정하고 왔으므로 조금 뻔뻔해졌다. 누워 읽다가, 쪼그려 앉아 읽다가, 웅크려 읽다가, 졸다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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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리러 오는 학생들이 지나가든 말든, 옆 테이블 학생이 전투적으로 과제를 수행하든 말든, 나는 오롯이 책만 읽었다. 사흘 후, 또 갔다. 9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나는 완벽하게 시간을 마시는 새(crack)였다. 아는 학생이라도 만나야 이 휴가가 완성되었겠지만, 가득 채우지 않는 것으로 틈은 정확하게 틈이었다. 다시없을, 그래서 꿈같은.


태어나려는 새는 알을 깨야 한다. 알은 지금의 끝이다. 끝을 마시는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하루오다. 가성비 나쁜 이름이기에 당장은 [눈물을 마시는 새]가 맛있었다. 상대성 이론은 유유자적에서도 사실이었다. 가장 과학적 휴양지에서, 안녕했고, 이젠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