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준비하는 시간
동기는 다양하겠지만 이유는 하나다. 인간이 무언가를 한다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는 생명의 숙명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잃을 때, 생명은 유기물로 환원되므로 할 수 있는 것과 살(生) 수 있는 것은 다르지 않다. 지식으로 숙성된 언어들이 개별 사태를 복잡하게 설명하겠지만 백반을 먹는 것도, 명품을 구매하는 것도, 절도, 강간, 살인도 할 수 있으니까 할 따름이다. 나는 대구 지하철역 2호선 끝 영남대역에 살았고, 2호선 저편 문양역이 궁금했다. 지하철 55분은 참을 수 없이 멀었지만, 독서 55분은 가능했다. - 할 수 있다.
오전 8시 1분, 사람들이 해야 할 것들을 할 때,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에 눈 박은 싸구려들 사이에 홀로 책이라니, 얌전히 기고만장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책만 한 게 없듯, 책은 명품 액세서리다. 무기력한 출근인들 사이의 군계일학, 우쭐함이 폭발했다. 옹졸한 자기 전시에 몰입하다 보면 문양역은 금새였다.
역사 내에서 책만 보다 돌아올 생각도 했지만, 그 정도로 무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행은 아니더라도 나들이 구색은 갖추고 싶어서 인근 강정고령보에 가기로 했다. 강을 따라 길이 나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하철 두세 정거장 거리라면 중간에 헤맨다고 해도 감당 수 있었다. 걷는 건 좋아했고, 늘 적어서 적이었던 시간도 이 날만큼은 내 편이었다.
강정고령보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는커녕 관광할 만한 곳인지도 몰랐다. 중요한 건, 도달하지 못했던 내 실패의 기억이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대구를 자전거로 횡단하려 했지만, 서재를 지나 포기한 적 있었다. 무릎에 차오르는 열감이 심상치 않았다. 꾸역꾸역 도착하더라도 돌아올 자신은 없어 길을 돌렸다. 며칠 무릎 때문에 고생했다.
그때도, 이날도, ‘강 따라 가면 된다.’는 단순한 원칙을 따랐다. 우선 낙동강으로 직진했다. 개발 제한 구역 농가, 그러니까 내 기억 어딘가에 있을 흔해빠진 초록 풍경을 따라 걷다가 예상된 지점에서 강이 나왔다. 봄, 가을에 금호강 자전거 도로를 타고 달리는 일은 내 소소한 취미여서 강변 풍경은 익숙했다. 그러나 강이 넓어서 조금 놀랐다. 한강을 처음 봤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낙동강은 상류인데도 금호강을 개천으로 만들 정도로 막막했다. 녹조 때문에 수심 30cm도 보이지 않아 더 깊어 보였다. 강바닥에서는 어둠이 부패해서 진액이 흘러나오고, 부패한 것들이 응축되어 시체로 합성된다고 해도 그럴 듯하게 들렸다. 강변을 따라 녹조로 부글댔다. 그 위로 자전거 도로가 절벽에 바싹 붙어 잇대졌다. 죽음 위에서 안전할 수 있는 걸음, 과연 삶이었다. 걸었다.
암석으로 된 절벽에 초록이 아슬아슬 우거졌다. 억척스러움 틈틈이 흰색, 분홍색 꽃도 박혔다. 그러나 초록은 가시박에 먹히는 중이었다. 공권력이 닿기 번거로운 곳에서 생태교란족은 무적의 초록이었다. 초록들은 햇볕을 가시박에 수탈당하며 죽어갈 것이 자명했다. 1-2년 후 흰색, 분홍색 오아시스를 잃을 초록빛 사막을 보며 걷고, 걸었다.
한 시간여 만에 강정고령보에 도착했다. 집에 와서 거리를 재보니 4.1km 남짓 걸은 셈이었다. 당근 하나와 데자와 한 캔으로 아침을 때운 터라 허기졌지만 오전 10시에 영업하는 식당이 있을 리 없었다. 있다 한들 오리 백숙, 메기 매운탕뿐이어서 혼자가 먹을 만한 곳은 없었다. 강변을 차지한 카페에서 브런치라도 먹어야 하나 낙담했다. 혹시 모른다며 식당가 끝까지 걸어가 보니 ‘시골묵집’ 간판을 내건 컨테이너 건물 문이 열려 있었다. 사장 아주머니 한 분이 수저를 닦고 계셨다.
오전 10시 5분, 브런치로 냉묵밥을 먹게 될지는 몰랐다. 밥이 소꿉놀이 하나 싶을 정도로 적어서 놀랐지만 사장님은 부족하면 더 달라고 했다. 나는 허기져 있는 국밥왕이었고, 묵밥은 국밥과 근친성이 높았기에 밥 두 그릇을 마셨다. 밑반찬까지 쓸어 먹는 데 5분쯤 걸린 듯했다.
강정고령보는 볼 만한 게 없었다. 그런 구조물에 감탄할 나이는 아니었다. 고작 이런 곳에 오려 했단 말인가, 이런 곳에도 오지 못했던 것인가, 역시 오려하던 의지가 중요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오고자 해서 왔으니 된 것인가, 별로 진지하지 않은 생각들의 난립을 내버려두고, 책 읽을 만한 그늘을 찾았다. 내심 강변 공원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강가에 그늘 한 점 없어서 당황했다.
매점 근처 나무가 조경된 곳에 널찍한 벤치들이 산포되어 있었다. 나무가 작아 그늘은 햇볕이 얼룩졌다. 그나마 볕이 덜 드는 곳에 자리 잡았다. 하필 엄마들 모임이 있었는지 미취학 아동 예닐곱이 나비를 잡는다며 날뛰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내지르는 고음은 풍경을 찢었다. 이 공간에 내가 주장할 권리는 없으므로 얌전히 준비해간 책을 읽었다. 그들은 돗자리까지 펴 놓았기에 불편한 공존을 각오했지만 30분도 안 되어 떠났다. 대신 자전거 타고 가던 장년 아저씨 둘이 내 벤치 뒤에 자리잡았다. 조심하지 않으면 뒤통수가 닿을 거리였다. 어쩔 수 없이 이어폰을 꼈다. 강변 나무 아래에서 산새소리, 물소리가 녹음된 ASMR을 들었다. 둘은 예상보다 더 오래 한담을 나누다가 역시 떠났다. 강 옆에서 ‘이 또한 지나가리.’는 과연 사실이었다. 이어폰을 빼고 완벽한 내 시간을 읽었다.
12시 5분, 방류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강가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짐 싸서 강가로 내려갔다. 강 건너편에서도 같은 안내 방송이 메아리처럼 들렸다. 드디어 눈요깃거리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는 자라기도 전에 뭉개졌다. 보에서 떨어지는 물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았고, 강의 유속이 는 듯했지만, 굳이 안내 방송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 개방 때문에 누가 사망한다면, 신체적 결함이나 지능적 결함에 의한 자연사였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쏟아지는 물 사진이라도 찍어볼 요량으로 보에 올랐다. 강을 경계로 나뉜 땅은 이어졌으나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 물은 흐르려 했으나 막혔다. 모순의 한 가운데가 드디어 뚫려서 물이 쏟아지는 중이었던 것이다. 떨어지는 물은 가까이에서 보니 사나웠다. 녹조 거품이 무질서하게 휘돌았다. 물살은 이합집산하며 소용돌이를 만들기도 했다. 소용돌이는 표면을 아래로 집어 삼키다 사라졌고, 소용돌이의 여운들은 새로운 소용돌이를 만들며 물을 뒤집었다. 물의 난장에서 밀려나 물은 끝내 흘렀지만, 내가 저 난장 속에 빠졌다면 빠져나올 자신이 없었다. 비로소 강이 조금 아찔해졌고, 왔던 곳으로, 걸었다.
만남의 광장을 지날 때 자전거 타고 쉬던 장년의 아저씨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때서야 추리링에 사무용 팩백을 메고 양산을 쓴 내 차림새가 이질적이었음을 인지했다. 이런 시선은 또 즐기는 편이라 휘리릭, 양산을 한번 돌려줬다.
매점에서, 나중에 물통으로 쓸 요량으로 500ml 페트병에 든 커피를 사서 다이크로 향했다. 다이크는 내 눈에 고래처럼 보여 강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멋지긴 했다. 밤에 조명까지 받는다면 훨씬 볼 만하겠다 싶었다. 내부는 전시관이었다. 강을 주제로 한 전시관, 인근 기억 학교 노인들의 그림, 사진, 시 전시는 의미 있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박물관, 미술관도 늘 심심했다. 남의 과시는 관심 없었다. 파리에 가더라도 루브르 박물관에 가기보다는 몽마르트 언덕에 앉아 이것이야말로 ‘파리 바게트’라며 내적으로 낄낄대면서 바게트를 뜯어 먹을 것이다. 3층 전망대도 오직 ‘이 멋진 날 봐!’ 할 뿐이었다.
새 그늘을 찾아 다이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강변에 영일대 해수욕장 해상 구조물만큼 완벽한 독서 맛집을 발견했다. 강 바로 옆에 두 아름은 될 것 같은 나무가 만든 두꺼운 그늘 아래 벤치가 있었다. 그러나 오리배 정박장의 사유지였다. 줄만 걸어 놓았으면 무시하고 넘어갔겠지만, cctv와 민형사상의 책임은 넘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벌금을 물더라도 넘었어야 했다. 강정고령보의 모든 의미는 그곳에 있었다. 또, 실패의 기억을 머물게 해버렸다. 회복할 기약은 없었다.
다시 평상 겸 벤치로 돌아와 책을 읽었다. 3시쯤 대실 역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읽을 50여 페이지를 남길 요량으로 읽다보니 3시 40분을 넘겼다. 더 읽어야 했지만 비가 오기 시작해서 자리를 떴다. 양산은 우산을 겸할 수 있었다.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오게 될지는 몰라도, 문양역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일은 다시없을 것 같았다. 내게 다시없을 길이자, 강물을 향한 역류이자, 돌아오기 위한 멀어짐은 걸어볼 만했다. 작은 우산으로 비를 헤치며 걸었다. 생각만큼 의미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언젠가 걸었던 한갓진 길을 또 걷는 조금 지루한 시간이었다. 이 글의 초안을 생각했고, 배고팠다.
메기 매운탕과 오리 백숙 사이에서 ‘짬뽕 순두부’를 발견했을 때 쾌재를 불렀다. 비로 서늘해진 오늘에 찍을 수 있는 맛있는 마침표였다. 그러나 휴일이었다. 역 입구 정면에 잔치국수 집이 있었으나 이곳에서 평범해지고 싶지 않아 물만 마셨다.
문양역은 ‘노인건강테마역’이었다. 이용객 52%가 노인이랬다. 굳이 둘러보지 않고 55분 후, 영남대역이었다. 이용객 52% 이상이 20대일 것이다. 회춘의 지하에서 잠시 머물렀다. 지하철을 보내고 벤치에 앉아 『눈물을 마시는 새』4권 마지막 15 페이지를 읽었다. 지하철 하나를 더 보내고 나서야 일주일의 이(異)세계 여정을 끝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어떤 가능성도 없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남을까?”
“내일을 계속 오늘로 만들면 돼.”
“오늘이 솟아나는 샘은 내일이야. 키다리 아저씨. 샘물이 샘으로 환유될 수 있는 건가? 논점을 회피하지 마.”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을 속이는 방법도 있다.” - 『눈물을 마시는 새』4권 331-332쪽
속지 않고 살아왔지만, 속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케이건이 말했으므로. 죽기 전까지 내일은 100% 오늘이 된다. 그저 딱 한 번 거짓말 할 뿐이다. 0.01%도 안 되는 확률의 거짓말이면 무시하면 그뿐이었다. 논점을 회피하며 인간들의 지긋지긋한 난장, 지상으로 올라왔다.
현세계의 오늘 속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대학생을 보며 속으로 미소지었다. 나도 너희들만큼의 거짓말이 있다. 그래서 집에서 강물을 마시는 보의 기분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집으로 오는 길의 식당가와 유흥가의 맛있는 유혹을 무시, 할 수 있었다. 흐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바닥에 뒹구는 시체 몇 구쯤은 알 바 아니다. 썩고, 흐르고, 흐르면 그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