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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Feb 06. 2023

18끼 연속 국밥 먹기 챌린지 - 실전본

국밥왕의 탄생

18끼 연속으로 국밥을 먹었다. 모두 다른 가게, 다른 메뉴였다. 자기 끼니 결정권과 아침부터 영업하는 국밥집 확보가 성패의 관건이었다. 24시간 영업하는 곳도 있지만 도보 생활권 안에 6일 아침 확보는 쉽지 않았다. 국밥은 더 이상 프렌차이즈 햄버거를 발라버리던 가성비 음식이 아니므로 소소히 사치할 각오도 필요했다. 국밥 한 그릇 먹겠다고 영하 7도의 아침에 2km를 걸어가는 무모함, 그래 이 맛이다.


나는 이제 국밥충(蟲)이 아니다. 국밥충(忠)을 거느린 국밥왕(王)이다. 관종의 시대, 전국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병(病)맛 충만 왕 중 왕이 있겠지만, 내 주변에는 18끼 연속 국밥 먹기는 상상할 사람도 없다. 폐관수련 끝에 천마신공 9성을 체득한 무림지존처럼 사자후를 날린다.

“(우걱우걱 우걱우걱) 크으아! ……emiya muljomdao.”



1. 2023년 1월 31일 월요일 점심 추어탕(8,000)

스타벅스 휴지로 접은 하트로 인증 시작

<슬램덩크> 2회차 관람 전 극장 근처에서 먹었다. 간판에는 추어탕을 내걸었지만 이것저것 팔았다. 브랜드 아파트 상권 변두리에서 할머니 사장님 혼자 운영했다. 내가 방문한 12시 30분쯤에는 세 테이블을 치우지 못한 채 사장님은 오픈 주방에서 요리 중이었다.


추어탕은 기대보다 허옜다. 추어탕 맛 자체는 가물가물했지만, 이날 나는 미꾸라지보다 갈치 살을 더 많이 먹은 건 분명했다. 밑반찬으로 갈치가 구워져 나왔다. 밑반찬이 모두 맛있는 걸 보면 사장님 손맛이 괜찮은 집이었다. 단골인 중년 사내와 사장님의 대화를 들었다. 사장님은 5년 전 1만 원이던 산초가 일본에 수출하느라 3만 원으로 올랐다고 푸념하셨다. 나는 산초를 조금만 넣었다.



2. 2023년 1월 31일 월요일 저녁 갈비탕(12,000)

<슬램덩크>를 보고 나서도 극장 대기실에 앉아 배가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대기실이 한산에 오래 뻗대고 있기 민망해 17시를 조금 넘겨서 나왔다. 점찍었던 황태해장국집은 휴일도 아닌데 문이 닫혀 있었다. 인근에서 ‘무슨면옥’을 본 기억이 있어서 무작정 갔다. 냉면과 갈비탕이 주메뉴였다.


국물 바닥에 똬리 튼 당면을 후루룩 거릴 때, 최근 십 년 이내에 갈비탕을 먹은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소금 간 대신 깍두기를 크게 베어 물었다. 깍두기를 먹든 갈비뼈를 뜯든, 손이나 젓가락을 쓰는 것보다 집게를 쓰니 편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솥 단위로 끓여 주시던 건데, 가격은 엄마가 없어서 좀 놀랐다. 맛있지만 재방문 의사는 없다.



3. 2023년 1월 31일 화요일 아침 양평해장국(9,000)

도보 2.0km를 7시 30분에 굳이? 차가 있다 한들 영하 7도에 굳이? 내적 ‘굳이’를 굳이 떨쳐내고 굳이 걸어갔다. 이 가게 주변에는 택배 물류센터와 공장이 있어 휑했다. 임대가 붙은 2층에는 뭐가 들어서야 할지 각이 서지 않았다. 8시 조금 넘은 시간,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팔순은 넘어 보이는 노모와 사장님인 듯한 딸이 식사 중이었다. 사장님은 다른 손님도 없다며 연근과 두부 튀김을 덤으로 주셨다.


양평해장국은 ‘18끼 연속 국밥 챌린지’를 기획하고, 국밥 종류를 검색하다가 처음 안 음식이었다. 선지를 메인으로 창자와 걸레 같은 부속물이 들어있었다. 얼큰하게 잘 먹었으나 내 일상 동선의 역방향에 있어서 재방문 여부는 모르겠다. 코로나 전에 있던 온천만 폐업하지지 않았다면 무조건 목욕 후 먹을 음식인데 아쉬웠다. 든든하게 먹고 스타벅스에 와서 이 글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4. 2023년 1월 31일 화요일 점심 고디탕(9,000)

슬램덩크 보고 받은 스티커 굿즈의 '투닥투닥'

이발하고, 검색을 통해서 0.9km 거리의 고디탕 집을 찾았다. 고디탕은 먹어 본 적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먹은 기억은 없었다. 아침에 먹은 양평해장국이 짰는지 국밥을 먹기 전에 종이컵으로 물 세 잔을 들이켰다. 이때만 해도 ‘물 좀 다오 챌린지’가 될지는 몰랐다.


남자 사장님은 자신만만함과 거들먹거림 사이의 애매한 스타일이었다. 고디탕을 다 먹은 후에는, 자신만만함으로 보였다. 재방문 의사는 강하지만, 집에서 3.4km 거리를 굳이 걸어갈지는 모르겠다. 차도 없지만, 차가 있다한들, 나 혼자 뭐 하나 먹자고 육중한 쇳덩이를 움직이는 것은 지구에 대한 반칙이다.



5. 2023년 1월 31일 화요일 저녁 황태해장국(9,000)

반찬은 셀프라서 제가 한 접시에 담아왔을 뿐입니다.

어제 문 닫아서 못 갔던 그 가게였다. 꼭 이 가게일 필요는 없지만 18끼 메뉴 열여덟 개를 채우려면 하나라도 비면 곤란했다. 더군다나 황태해장국은 이곳이 유일했다. 이번에는 미리 전화해서 영업 여부를 확인했다.


식전에 종이컵으로 물 네 잔 반을 마셨다. 필라테스 후 2.0km를 걸어갔으니 갈증이 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입 안이 계속 짰다. 버텨라 혈관 군. 아, 그리고 신장 군. 약과 물은 꼬박꼬박 먹어 줄 테니.


이 식당 메뉴의 정식 명칭은 황태곰국이었다. 나는 황태해장국을 먹어 본 적 없으니, 그냥 황태해장국이라고 명명할 것이다. 어차피 국밥의 조건에 충족하면 그만이다. 상상했던 진한 북엇국 맛에서 어긋났다. 맛을 표현할 방법을 몰라 언젠가 재방문 예정이다.


무릎 위 허벅지 근육이 뭉쳤다. 극단적 한파가 풀리며 낮에 오랜만에 포근해서 개처럼 질주한 부작용이다. 도합 15.8km를 걸었으니 칼로리 적자를 적당히 만회했다.



6. 2023년 2월 1일 수요일 아침 콩나물해장국(8,000)

사진 각도를 바꾸기 시작함

오전 8시 조금 넘은 시간, 정류장을 착각해서 한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 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재수종합 학원 앞을 지날 때, 교복 입은 학생들도 몇 지나쳤다. 나는 콩나물국밥집에 가는 중이었다. 굳이 이곳이어야 했다. 구체적인 사연은 여기를 보시고.


7시에 문을 연다기에 법원과 검찰청 등을 상대로 아침 장사라도 하는지 알았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남부식으로 토렴한 국밥을 먹는 동안 세 명으로 이뤄진 두 팀이 들어왔다. 한 팀은 아버지뻘 상관과 군기가 바짝 든 병사로 이뤄진 군인들이었고, 다른 팀은 블루칼라 노동자인 듯했다. 1년 전 비싸다고 생각했던 8,000원이 이제는 예의발라 보였다.


계산하려고 보니 지갑이 없었다. 이러려고 이 짓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잃고 보니, 헌혈 기념품으로 받은 머니클립의 15년과 엄마가 어느 절에서 담아왔을 부적 안 정성이 아쉬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갑을 사지 않기로 했다.


대면 거래에서도 계좌 이체가 보편화 돼서 다행이었다.



7. 2023년 2월 1일 수요일 점심 소머리국밥(8,000)

반찬이 정갈했던.

9시에 맞춰 버스 회사에 연락했다. 경산과 대구를 순환하는 버스라 누가 집어가도 집어갈 시간이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일단 해볼 참이었다. 9시 30분이 되기 전에 기사님이 습득해서 보관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경산 깊숙이 있는 사무실까지 가야 해서 챌린지 계획이 꼬였다. 소머리국밥은 본래 저녁에 먹기로 계획한 메뉴였다.


챌린지 기획 당시에는 후보에 없던 메뉴였다. 소머리국밥은 소고기국밥의 오기(誤記)로서 유재석이 정준하 유튜브 채널 이름을 붙여 줄 때는 그저 놀리는 용도로 쓴다고 생각했다. 소머리로 국물을 우려낼지는 상상도 못했다. 먹어 봐도 맛 차이를 모르겠다.


옆 테이블에서는 여고생 2명이 재잘대며 느리게 먹고 있었다. A가 자기들 나이에 모쏠은 흠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10년 넘게 연애가 결핍된 채 국밥이나 먹고 다니는 게 흠이었다. B는 A가 결혼까지 갈 것 같다고 했다. A가 이유를 물으니 B는 촉이 왔다고 했다. 깍두기가 필요 없는 촉촉한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으며 여고생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


B : 나도 연애하겠지?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내가 몇 살이게?



8. 2023년 2월 1일 수요일 저녁 매생이굴국밥(8,000)

지갑을 찾고 경산 시장 근처에서 내렸다. 버스의 순환 노선만 보고 탔는데, 내가 생각한 길과 반대로 순환했다. 알고 보니 우리 집 165m 지점에서 정차하는 마을 버스였지만, 굴국밥을 먹으려면 다시 3.4km를 걸어야 해서 집에 들리는 것은 번거로워졌다. 목표 식당 1.3km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웠다. 희미했던 <18끼 연속 국밥 챌린지 - 언해본> 아이디어에 윤곽을 입혔다.


지도 한 번 보고, 여기쯤이겠지 하며 대충 가다가 길을 헤맸다. 도착하고 보니 전날 점심에 먹었던 고디탕집 인근이었다. 여자 사장님 혼자 운영했다. 고깃집을 하다가 그 자리에 그대로 메뉴만 바꾼 듯 불판이 멀뚱했다. 반찬은 평범했고, 사장님은 불친절하다기보다는 사나워 보였다. 그러나 재방문을 확신한다. 매생이의 콧물 같은 식감이 좋았고, 굴이 그만큼 들어 있으면 사장님은 무언으로 친절한 셈이었다. 우리 동네에 있었다면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퇴근길 음식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9.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아침 따로국밥(10,000)

밥 넣었다가 아차 싶어서 수습한 후 다시 사진 찍음

평일 아침 7시 50분, 내가 동성로에 존재해 본 가장 이른 시간이었다. 중앙파출소에서 교보문고로 이어지는 길을 관통하는 동안 목격한 사람은 청소하는 분 둘에 행인 둘인가 셋인가. 단지 국밥 때문이었다.


상봉(相逢)의 허물없음을 연출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 국밥에는 후줄근함이 어울렸다. 세수, 면도, 양치도 생략하고 나왔다. 사람들이 동성로에 나올 때 대체로 외형 풀아머(full-armor)를 갖추기에 어깃장 놓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동성로에서 수업 하던 시절 자주 가던 곳이었으나 작년에는 동성로에 갈 일이 없었다. 텅 빈 홀은 처음 봤다.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앉아서 겉옷을 벗고 자리를 정리하는 사이에 국밥이 나왔다. 거의 동시에 수험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왔다. 가방 없는 맨몸이었다. 긴 머리 높이 묶고, 양팔 걷어붙이고 야무지게 먹었다. 나는 멍청하게 먹었다. 습관적으로 밥을 국에 말았다. 국물이 넘쳐서야 ‘따로’ 국밥임을 인지하고 밥을 걷어냈다.


한 끼 10,000원은 내게 비싸다. 그러나 별 수 없다. 맛이 인질이다.


지도상 5.2km를 걸어 출근했다. 어제 지갑을 잃어버린 채 걷던 그 길로 우회했으니 100여 미터는 더 걸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10.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점심 복국(9,000)

9,000원짜리 식사에 가성비를 붙일 줄은 몰랐다. 작년 10월 이후 이 가게 20번째 방문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잔반과 국물을 남긴 적 없었다. 매주 평일 점심 한 끼는 꼬박꼬박 먹고 있다. - 복국 좋아하세요? 네, 복국이 먹고 싶어요. 입 안에서 폭발하는 영광의 순간, 설명은 거들 뿐, 이곳은 7879만큼 진리다.



11.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저녁 설렁탕(11,000)

동성로에서 본 그 분 72세 생일 축하 현수막이 복선이었던 듯하다. 뉴스가 아닌 현실에서 ‘박정희’와 ‘박근혜’를 육성으로 듣기는 퍽 오랜만이었다. 두 테이블 건너 할아버지 예닐곱 분이 괄괄하게 정치 이야기 중이었다. 음성이 뭉개져 전체 의미가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으나, 당신들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밥알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 울끈불끈 솟았다.


설렁탕과 소머리국밥의 차이를 모르겠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육수도 마셔본 놈이 마시는 모양이었다. 내 입에는 그 맛이 그 맛이었다. 국밥 맛이 깍두기나 김치로 최종 결정된다면 국밥으로서 분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설렁탕에는 소면이 들어가는 것만 달랐다. 재방문 의사는 없다. 설렁탕이 먹고 싶을 때는 비슷한 거리에 있는 소머리국밥집에 갈 테다.



12.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아침 순대국밥(8,000)

다이어트 중 발길을 끊었을 뿐, 늘 마음에 두던 식당이었다. 마지막으로 먹었을 때 6,000원이었다. 런치플레이션에 과하게 올라탄 것은 괘씸했지만, 순대국밥이라고 하면 이 식당부터 떠올랐다. 푸짐한 들깨 가루가 충격적으로 구수했었다.


방학 중 대학가 국밥집 아침에 손님은 없었다.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두 테이블 옆에서 사장님만 스마트폰을 만지작댈 뿐이었다.


국밥 12끼째, 미각세포가 맛 가버렸다. 무언가를 먹고 있지 않을 때도 입 안이 짰다. 미각 세포가 흥분되어 있는 것인지, 잔뜩 주눅 들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극단적인 상태였다. 순대국밥은 짠데 밍밍한 모순으로 입 안을 한가득 채웠다. 굳이 18끼를 채워야 하나 자괴감 들었지만 매몰 비용이 컸다.



13.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점심 육개장(7,000)

“엄마, 식당 차려줄까요?”

“맛 없더나?”

“여기 꺼 7,000원이면 엄마 꺼는 15,000원은 받아도 돼요.”


식당을 나오며 전화 드렸다. 육개장은 설 연휴에 엄마가 끓여 주셨었다. 얼린 채로 가져와 네 끼는 더 먹었다. 우리 엄마 육개장 15,000원이 과할지 모르나 엄마가 끓여 주신 육개장이 더 맛있는 것에 내 전 재산과 남은 수명을 모두 걸 수 있다. 엄마 요리 잘하는 것도 복이다.


이 식당 육개장 잘못은 없다. 대진 운이 나빴을 뿐이다. 상대가 우리 엄마였다. 지금까지 방문한 국밥집 중 유일하게 수저를 개별 포장한 곳이었고, 육개장 맛도 깔끔했다. 분명, 7,000원의 최선이었다. 집 근처에 있으면 종종 들렸을 것이고, 우리 엄마를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권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재방문 의사는 없다. 나는 전화 한 통이면 이삼일 후,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두 배 이상 맛있는 걸로.


육개장을 먹을 때, 우리 엄마를 보유하지 못한 당신들이 측은하다.



14.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저녁 들깨시래기국밥(8,000)

필라테스 후, 3.7km를 걸어가서 출출한 채로 먹었지만, 재방문 의사 없다. 우리 집 인근 6,000원이면 1년에 한두 번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가 잔치국수 하나에 붕어빵 두 개를 합쳐보니 한두 번도 뭉개진다. 식당에서 독립된 메뉴로 파는 음식이므로 콩나물국밥처럼 내 편견을 깨줄지 알았다. 그러나 그냥 보통의 시래기국에 밥만 만 음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왜 굳이 돈 써가며 맛없어져야 하나 싶었다. 한 끼, 한 끼, 매일 하루의 중심에 설 만한 반짝임들인데, 이들이 반복되니 감흥이 없었다. 괜히 끼니의 눈높이만 높여 놓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제부터 징후가 보이더니, 기어이 족저근막염이 왔다.



15. 2023년 2월 4일 토요일 아침 뼈다귀해장국(9,000)

2022년 1월 9일 7,000원에 먹었고, 다이어트 이후 2023년 1월 9일 1주년으로 먹으려 하다가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 하루 미뤘는데 10일에는 식당이 사장님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아서 11일에 8,000원을 주고 먹었고, 그 사이 1,000원이 올라 결국 9,000원에 먹었다. 하긴 순대국밥도 8,000원인 시대다. BHC 프라이드 실질 구매가가 13,000원이었으므로 이제 적정 음식 값을 모르겠다.


내가 갔을 때는 중국인 커플 한 테이블뿐이었다. 내가 먹는 사이 군인 세 명이 들어왔고, 뒤이어 할아버지 한 명이 더 왔다. TV에서는 이연복 쉐프가 제자 가게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재방송 중이었다. 모처럼 스마트폰 대신 TV를 보면서 먹었다. 뼈다귀 해장국은 역시 내 미각세포 컨디션과 무관하게 맛없기 힘들었다. 힘내라, 혈관 군.



16. 2023년 2월 4일 토요일 점심 돼지국밥(9,000)

수업과 수업 사이 여유 시간은 30분이었다. 서둘렀다. 왕복하고 먹은 시간 포함해서 20분 남짓 걸렸다. 그저 가까워서 갔다가 가격보고 놀랐다. 이 동네가 우리 동네보다 물가가 비싼 편이지만 길 건너편 복국이 9,000원인 걸 감안하면 바가지 쓴 기분이었다. 우리 동네 돼지국밥 최저가는 5,500원이었다.


이미 국밥에 질려 있고, 미각도 MSG인지 나트륨인지에 절여져 있어 그저 ‘18’을 향해 달리는 마라톤이 되어버렸는데, 왜, 맛있지? 의문을 품은 채 먹었다. 영혼이 국밥에 절여진 건가, 꿀꿀, 하긴 이 기간 동안 1kg 꿀꿀, 혹은 2kg 꿀꿀 증량되었으니 꿀꿀. 어쩌면 국물이 오래 우려진 덕분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국밥들은 부글부글 잔뜩 성난 채로 나왔지만, 이 돼지국밥은 적당히 뜨거웠다. 충분히 우려진 국물을 데워준 느낌이었다. 맛있어서 억울했지만, 재방문 의사는 없다. 그 돈이면 복국이다. 돼지국밥은 우리 동네에서 먹는 걸로.



17. 2023년 2월 4일 토요일 저녁 닭곰탕(9,000)

평소보다 한 시간 넘게 늦어진 퇴근길에 먹었다. 집에서 2.6km 떨어진 곳이었다. 작년에 다른 식당에서 닭칼국수를 두 번 먹었지만 닭곰탕은 생에 처음이었다. 파장한 시장은 성인 남자에게도 을씨년스러웠다. 식당은 어둠 끝 등대처럼 환했다. MSG인지 나트륨인지에 절여진 미각도 환하게 되살려 줬다. 재방문할 것이다.


식당에서는 생수병 500ml짜리를 줬다. 식전에 2/3을 마시고 식후에는 비웠다. 끼니마다 그 정도를 마셨다. 화장실에 자주 갔다. 귀찮았다. 다 끝나 가니 힘내라, 신장 군.


사람들과 밥 먹을 때, 내가 식당을 권하지 않는다. 나와 밥 먹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보다 잘 먹고 다녀서 나름의 맛 기준이 높거나 섬세했다. 가성비로 다듬어진 내 입맛은 무던했다. 아니, 같은 엄마 손에서 자란 동생이 까탈스러워진 것을 보면 내 미각이 무능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런 미각 수준에서, 여기 꽤 괜찮았다.



18. 2023년 2월 5일 일요일 아침 소고기국밥(11,000)

마지막을 향하는 발걸음은 이토록 가벼웠다. 소고기국밥을 먹는 것보다는 완성된다는 사실에 설렜다. 그릇이 모두 방자유기로 되어 있어서 대접 받는 맛이 났다. 국밥 맛도 챌린지 화룡점정으로 적합했다. 점심시간에는 줄 서 기다려야 할 정도의 인근 맛집이었다.


맛은 내 미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손님 수로 검증하면 될 듯했다. 일요일 8시 30분, 내가 갔을 때 이미 1인 두 테이블, 2인 세 테이블이 식사 중이었다. 내가 먹는 동안 손님은 18명으로 늘어났고, 내가 계산하고 나올 때는 16명이었다. 그중 2명은 여자였고, 남녀 할 것 없이 내가 가장 어려 보였다.


서빙 직원 두 명은 모두 여자였고, 여자 치고는 덩치가 있었다. 방자유기를 옮겨야 했으니 체력이 좋아야 했을 것이다. 외형이 이국적이다 싶었는데,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다. 내 입 안은 완성된 한국이었다. 식후 믹스커피를 든 채 출근을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가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내가 해냄, 18.




쿠키. 2023년 2월 5일 일요일 늦은 점심 : 튜닝의 끝은 순정이다. 

정월대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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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가 : <18끼 연속 국밥 먹기 챌린지 - 언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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