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결핍증에 대하여
살아 온 시간과 할 수 있는 말이 달라 나와 글자는 서로 사맛디 아니했다. 내 이를 한심히 여겨 스스로 글자를 맹가노니 하루하루 실행해 존재하고자 할 따름이다. 시간은 서사로 실존하고, 서사는 글로 완성된다. 일단 썼다. - 18끼 연속으로 국밥을 먹었다. 모두 다른 가게, 다른 메뉴였다. - 시간에 서사를 채워 넣는 것은 현실의 내 몫이었다.
“평일엔 뭐하세요?”
필라테스 강사가 물었다. 평일 오후에 레슨을 받는 40대 남성의 정체가 일반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슨 당일만 쉬는 날이라고 얼버무렸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길었다.
살아도, 살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이나 ‘그럭저럭’에 수렴되었다. 2022년을 어떻게 살았느냐면, 그러게 말이다. 몇 편의 에세이는 읽혔으나 글 쓰던 시간을 ‘글 쓰고’로 요약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나머지 ‘오늘’들이 숫자 무늬 도장으로 찍히며 잇대졌다. 도장밥의 농도만 달라지며 매일 별일 없었다. 서사결핍이 지겨웠다.
서사결핍증은 내 오랜 인생 질환이었다. 노트북 바깥의 삶이 생략되는 것에 무심한 채 노트북 안에 글자만 쳐 넣은 결과 ‘노트북 앞에서 키보드를 토닥거렸다’ 외에는 읽힐 인생이 별로 없는 40대가 되어버렸다. 플레이하던 게임이 저장되지 않은 채 종료되었지만 따질 데가 없어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을 뿐이다.
서사는 인물 간 전류와 전압의 함수였다. 방정식이 성립되려면 x에게 y가 필요했지만, 나는 사람이 귀찮았다. ‘쓰다’ 이외의 많은 동사도 ‘귀찮다’, 이 한 마디에 우겨 넣었다. y도 없고, 기울기도 없고, 상수도 없으면서 함수이고자 하니, 삶은 간편하고 쉬워졌다. 전류도 전압도 미미해 심정지 온 것 같은 영원히 이어지는 x축의 모노드라마, 완벽히 지긋지긋했다. 벌써 시작된 엔딩 크레딧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사결핍증은 6-7년 전부터 내게 내린 진단이었고, ‘새로운 글자를 갖고 싶다’는 작년에 처음으로 구체화 되었다. ‘1년에 20kg 감량했다’를 가져보고 싶었다. 연초만 해도 1년에 15kg 감량도 까마득해 보였다. 그러나 10월까지 18kg을 감량해냈다. 특별한 의지를 갖고 수행했다기보다는 약간의 식습관 변경과 운동으로 그냥, 그럭저럭 꾸준히 빠졌다. 딱 떨어지는 20kg나 2022년이니 22kg을 내 글자에 편입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서사 결핍에 대응하는 기조가 ‘먹어서 응원하자’로 바뀌면서 틀어졌다. 평균 식비 1-10월 237,620원에서 11월-1월 평균 387,920원으로 급증했다. 2kg 증량되었고 삶은 여전히 시시했다. 맛있는 것들은 서사결핍의 진통제일 뿐, 궁극적 처방은 아니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살던 대로 살면 살던 만큼 살게 된다. 살아갈 시간의 정답을 내가 선택하지 않을 것에서 찾기로 했다. 스타벅스에 들락대기 시작했고, 필라테스 1:1 레슨을 등록했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 2회차 관람했다. 잔잔한 시간에 내게 없던 작은 동사 하나 던지면 파문이 퍼지면서 서사가 연출될 수 있을 것이었다. - 제게 경험을 주세요(정우성. 더 퍼스트 슬램덩크).
글을 먼저 쓰고 글대로 사는 것은,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학생들에게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미리 자기소개서를 써보면 얼마나 쓸 말이 없는지가 구체적으로 보인다. 그 빈틈을 채우는 인생을 살면 자소서 완성도가 높아진다. 내가 쓰고 싶은 자소서는 ‘서울 교보문고에서 출간 기념회를 가졌다.’거나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1회차 팬사인회를 개최했다.’지만, 내 의지로만 될 일은 아니어서 대안을 찾는 중이었다. 새로운 대안으로 ‘국밥 10끼를 먹어볼까?’였다. 10끼는 10진수의 습관이었고, 하필 국밥인 것은 국밥충의 무의식이었을 것이다. 한파 무렵이었다.
국밥을 검색해 메뉴를 수집하고, 내 예상 동선에 따라 배치했다. 계획을 짜니 메뉴가 추가되어 12끼로 수정되었다. 12는 하늘에 새겨진 ‘간지(干支)’나는 숫자였다. 하늘의 뜻보다 땅의 습관이 더 강해 이왕이면 5에 맞추고 싶었다. 메뉴를 늘리려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사실은 처음부터 했어야 하는 질문이었다. - 국밥이란 무엇인가?
물회를 메뉴에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국밥의 사전적 의미에서 어긋났다. 국밥은 ‘끓인 국에 밥을 만 음식’이었다. 물회는 끓인 음식도 아니고, 국이 아니라 육수를 쓰고, 물회 육수에는 육(肉)이 없었다. 물론, 국밥이 조선 시대 만들어진 개념이고, 물회가 1960년대 만들어진 개념이라면, 언어의 확장성을 적용하여 물회를 국밥 범주로 포함할 명분은 있었다. 언어는 사물의 변화를 수용하며 진화했다. 그러나 국밥 먹기 챌린지 언해본까지 기획한 이상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요컨대, 국밥은 국으로서 독립성을 갖춘 국물 음식에 밥을 만 형태로서 대체로 뚝배기 그릇에 나오는 음식이다. 잔뜩 성난 뚝배기의 정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정의에 의해 물회는 기각되었고, 복국과 짬뽕밥은 뚝배기에 담기지 않으므로 기로에 섰으나 수락했다.
복국은 비빔장에 비벼 먹는 음식에 가까웠지만, 나는 말아 먹었다. 즉, ‘내 맘’이다. 꼬우면 네들이 먼저 쓰고 반포하든가……는 진담이고, 또 다른 진담을 보태자면, 콩나물국밥이 국밥에 포함되는 마당에 콩나물국밥 상위호환에 해당하는 복국이 국밥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국밥의 정의에 ‘대체로’를 삽입했다.
짬뽕밥은 18에 맞추는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렸을 뿐이다. 21을 맞춰 일주일을 채울 수도 있었지만, <18끼 연속 국밥 먹기 챌린지> 마지막 문장으로, ‘내가 해냄, 18’을 쓰고 싶었다. 이보다 더 나은 마지막 문장을 생각할 수 없었으므로 18끼로 고정했다. 그래서 짬뽕밥뿐만 아니라 평양온반, 국밥으로서 정통성 네임드 곰탕(갈비탕/설렁탕과 무슨 차이?), 수구레국밥, 내장탕도 빠졌다. 물론, 끝까지 국밥 범주에 물회를 포함시켜야 하고, 복국을 빼야 한다면 당신이 옳다. 그게 국밥이다.
단, 이 챌린지에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단서를 더 붙였다. <운수 좋은 날>의 정신을 이어 받아 모든 국밥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김첨지 아내는 먹지 못했지만, 나는 아내가 없으므로 먹을 수 있었다. 집 근처든 직장 근처든 그곳을 중심으로 도보 거리의 국밥집만 이용해야 했다. 나는 국밥 때문에 하루 최장 15.8km를 걸었다.
난이도를 높이자면 모든 메뉴는 다른 가게에서 먹어야 한다. 애초에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획한 일이었다. 물론, 같은 가게에서 다른 메뉴를 먹으며 챌린지에 도전한다고 해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통할 것 같은 한 마디만 남긴다. - 쫄?
그렇게 2023년 1월 30일부터 2023년 2월 5일까지 18끼 연속 국밥 먹기 챌린지를 완수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시시한 도전이지만, 2022년 1-3월 일평균 식비(삼시 세끼뿐만 아니라 군것질 포함) 7000.5원이었던 인간이 챌린지 기간 동안 일평균 27,000원을 썼다. 내겐 파격이었고, 체중, 혈관, 신장엔 과격했다. 덕분에 훗날 누군가가 2023년에 뭐 했느냐고 묻는다면 ‘18끼 연속으로 (혼자) 국밥을 먹어 봤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서사로 된 글자를 갖고 싶었고, 가졌다.
방구석에서 예능, 드라마, 유튜브, 영화 등의 남의 이야기를 탐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이야기가 되고 싶다. 우리는 각자의 이름으로 된 소설이다. 나는 노트북 안쪽의 소설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노트북 바깥쪽 소설에는 재능이 필요 없다. 이야말로 하면, 된다. 될까? 귀찮음의 중심에 선 나를 아직 믿지 못한다.
다음 문장 중 하나는 ‘군인의 밥값을 대신 계산해줬다.’이다. 뼈다귀 해장국을 먹을 때 들어온 군인 세 명의 밥값을 내줄까 망설이다가 쑥스러워서 그만 뒀었다. 이젠 이렇게 공표해버렸으니 미래의 나는 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내가 감당 가능한 동사다. 퐁당퐁당 동사를 던질 테다. 시간이 퍼져서 누군가의 손등을 간질여 줄 때, 비로소 함수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