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독서(廢家讀書)

우리 동네 폐가 투어

by 하루오

이 글이 공개되었다면 내가 무사하다는 것이다. 아픈 데도 없고, 잠도 평소만큼만 못 잤고, 꿈이 사납지도 않았다. 당일 늦은 밤 귀가길, 급똥이 역대급으로 위험했지만 내 괄약근의 파이팅은 대단했다. 내 괄약근을 풀지 못하는 귀신이라면 별 볼 일 없는 농담이 분명했다. 역시, 세상은 과학적이다. 끝까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지만 나의 평범성을 발견한 것은 소소한 소득이다. 그날의 소름은 남아 있지 않다. 그저 기억을 기록할 뿐이다.


폐가독서(廢家讀書). 이름 그대로 폐가에서 책을 읽는 일이다. 사전을 찾아 봐야 소용없다. 내가 만든 사건이므로 구글에도 없다. 국밥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무식하게 밀어붙였던 것이고, 폐가독서는 여자 친구 등 뒤에서 간신히 [장화, 홍련]을 본 이후 공포 영화조차 보지 않은 나의 우발적 우격다짐이었다. 그러나 국밥왕 때와 본질은 같다. 사라지는 시간을 존재로 붙들어 두기 위해서는 사건이 필요했다.


도서관에 빌린 책 반납하러 가는 길이었다. 대로변 오토바이 가게와 연결된 가정 집 대문이 사라져 있었다. 내장이 헤집어진 시신의 복부 같은 내부가 드러났다. 대로변이라 차 소리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으므로 드러낸 내부 자체가 강력한 결계였다. 일대가 재건축 중이니 여기도 곧 헐리겠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그런데 30여 초도 지나지 않아 문득, 폐가독서가 떠올랐다. 마침『순례주택』을 따로 들고 다니던 참이었다. 책 내용은 모르지만, ‘주택’은 폐가와 궁합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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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계획을 짜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하철 세 정거장 거리 도서관을 걸어서 왕복하고 점심을 먹는 한 시간 남짓한 동안 나름 계획을 짰다. 내가 아는 동네 폐가는 세 곳이므로 각각에서 30분에서 한 시간쯤 머무르며 책을 읽으면 뭐든 쓸 이야기가 생길 것 같았다. 혹시라도 ‘(알 수 없음)’에게서 ‘재밌니?’라고 카톡이 오면 섬뜩할 것 같아서 데이터를 꺼야 하나 싶다가도 데이터가 꺼졌는데도 카톡이 오면 더 곤란해질 것이므로 그냥 두기로 했다. 먹을 걸 사 가서 고수레할 계획은 미신에 굴복하는 것 같아서 관뒀다. 투어를 마친 후 나 혼자 평소보다 맛있는 걸 먹기로 했다. 깔고 앉으려고 병원에서 버린 달력 한 장만 뜯어 갔다.


귀신과 나의 궁합도 생각했다. 음기는 양기를 선호할 테고, 나는 양기 충만했다. 범해진지 오래된 양기는 귀신의 입맛에 맞을 듯했다. 그러나 양기를 테스토스테론이 만들어 내는 무모한 활력으로 정의한다면, 아닐 듯도 했다. 나는 처녀귀신이라도 고픈 10대, 20대가 아니다. 결혼해 본 적도 없으면서 유부남의 ‘의무방어전’을 공감한 지 오래다. 내 입장에서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므로 서늘한 당신은 취향이 아니었다. 우리, 만나진 말자.


돌아와서 다시 폐가 앞. 오후 2시 6분, 양기 충만한 시간이었다. 신호를 대기하는 차들을 등지고, 9와 3/4 승강장에 들어가는 해리포터처럼 발을 내딛었다. 이곳은 사람들의 부주의 맹시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일종의 마법 공간이긴 했다. 단, 슬리데린 퇴학생조차도 처음에는 혼자 들어서기 망설이지 않을까 싶었다. 환한 대낮 대로변에서 이런 묘사는 과장이다 싶을 것이다. 나도 TV에서 연예인들이 폐가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며 연출된 호들갑이라 콧방귀를 뀌었었다. 그러나 공간에 냄새가 더해지면 공포는 질감을 가진 실체로 닥쳐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좁은 마당은 천장이 뚫려 있어 환기가 될 터인데도 우거진 나뭇잎과 잡목이 습기를 붙들어 두는 듯 공기는 무겁고 쾨쾨했다. 창고를 지나 계단 네 개 위의 본 건물 앞에 섰다. 90년대 초 세 들어 살던 집 구조도 이랬다. 마당이 있고, 마당을 향한 벽은 새시로 창을 내어 마루 채광을 극대화 했다. 집을 ‘채’ 단위로 구분하고, 마당의 반사광을 이용하던 한옥의 흔적에서 처녀 귀신의 흰 소복이 떠올랐다. 지금은 문과 창이 모두 뜯겨 나가 있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마루가 처녀귀신의 품속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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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공포의 불씨만 던져주면,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서 상상력으로 공포를 극단적으로 가공했다. 고물값으로 상당할 가스통이 마루에 있는 사연을 추측할 수 없었지만 괜찮았다. 문제는 닫혀 있는 정면 방문 두 개였다. 너덧 평도 안 될 저 방 하나하나마다 불온한 상상력이 우주 단위로 팽창했다. 과연 내가 저 문을 열 수 있을까?


건물 내부에 발을 들이기 전 새시가 있던 자리에서 고개만 살짝 들이밀었다. 청국장보다는 연하지만 존재감이 선명한 꼬릿한 냄새가 났다. 냄새는 온기를 담고 있어서 눅진눅진했다. 냄새 자체는 불쾌하지 않았지만, 정면과 측면이 뚫려 있음에도 환기되지 못한 채 냄새가 덩어리질 수 있는 의문과 고독사 처리하는 사람의 책에서 묘사되었던 시신 썩는 냄새가 뒤섞여 으스스했다. 150미터 남짓한 곳에 경찰서도 있고, 문도 열려 사실상 개방된 곳에 시신이 있을 리 없으니 죽은 개나 고양이일 것이고 어쩌면 누군가 몰래 싸둔 똥이 숙성된 것일 수도 있다는 합리성은 왼쪽 방에 널브러진 이부자리와 슬리퍼에서 무너졌다. 정리되지 못한 생활감 주위를 맴도는 파리 떼가 주는 사실성에, 눈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차분한 척 뒤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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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폐가는 훨씬 개방적인 공간에 나무도 없어 채광도 잘 되니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헐려 없어졌다. 남은 세 번째 폐가는 애매했다. 이곳은 내 일상 공간에서 자주 지나쳤다. 오래된 농가로, 내가 이곳에 살기 이전부터 폐가였던 것으로 추정했다. 자투리땅도 원룸으로 알뜰살뜰 증축되는 동네에서, 원룸촌 한가운데 오래도록 깊은 그늘처럼 방치된 묘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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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사자 문고리가 겨우 사자 형상을 유지한 대문은 우거진 나무줄기 때문에 잘 열리지 않았다. 힘줘 밀어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어 몸을 우겨 넣었다. ‘끼이익’ 철문 씹히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들은 것 같았다. 대문 뒤편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비온 직후라 쓰레기들은 깨끗해 보였다. 막걸리 병에 빛바램이 연한 걸 보면 최근에 버려진 듯했다. 어떻게 최근일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애초에 그늘져 볕이 들지 않았으니 빛이 바랄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혹시 노숙자라도 머물고 있다면 서로 머쓱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시 사위의 소리에 귀기울였다. 인기척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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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목에 잠식당한 마당보다 오른쪽 어둠의 존재감이 더 컸다. 계단 서너 개 낮은 지대에 아궁이가 있을 법한 부엌 하나와 방 두 개가 나란했다. 맞은 편 창고와 지붕이 포개져 있어 안쪽 어둠이 더 깊어 보였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는 무섭지 않았지만 굳이 그곳으로 내려가고 싶진 않았다. 왼쪽에는 사랑채쯤 될 만한 외딴 방 한 칸이 있었다. 쪽마루라고 하기에는 낮고, 디딤돌이라고 하기에는 높은 평평한 시멘트 바닥이면 걸터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책 읽기 적당해 보였다.


문제는 등 뒤였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서나 보던 창호지 문에 창호지는 없고 빗살 뼈대만 남아 있었다. 안쪽에 물건이 있는 것 같았지만, 어두워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냥 무시했으면 좋았을 텐데, 기어이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은 광량을 조절해 안쪽을 밝게 보여줬다. 사진에는 또, 널브러진 이부자리가 찍혔다. 왜 그것이 공포의 발짝 버튼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책 사진을 찍고, 이번에는 뛰쳐나왔다. 이날 낮 최고기온 28도, 나는 털이 서도록 서늘했다.


폐가독서는 실패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교회에서 나눠주는 휴지를 받았다. 평소라면 ‘ㅇㅋ 휴지 득템.’ 정도로 그쳤겠지만, 그날은 ‘오늘만큼은 하느님 아멘이십니다.’였다. 전도하던 아주머니들이 ‘학생’이라 불러준 것도 다독다독 아멘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소금 들고 복도로 나와서 내 몸에 뿌렸다. 어처구니없는 미신적 감정과 행위는 인간적이었다.


독서여행은 나와 사람 사이에 긋는 선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내 인생에 사람이 없어도 괜찮다는 확신이 무르 익어갔다. 사람도 한 권의 책이라지만, 그 책은 대체로 내 취향이 아니었고, 막무가내로 정돈되지 않은 자아를 돌출해 가독성도 떨어졌고 유지비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사람이 필요해졌다.


SNS에서 폐가독서 원정대를 모집했다. 폐가에서 조용히 각자 책 읽다 오는 것이다. 내가 힐러로서 밥은 댈 테니, 앞장서서 닫힌 문을 열어 줄 탱커와 딜러가 필요했다. 고등학생 하나가 물었다. 흰소리 하는 녀석은 아니고, 이 녀석 사촌동생도 내 수업 듣고 있으니 3인 한 팀은 꾸려진다. 이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순진한 학생들 꼬셔서 음, 할 일이 생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