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

<책 나들이 서문>

by 하루오

모든 ‘나’들은 ‘고정된 나’를 참지 못한다. 자아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가만히 있는 것들은 경직된다. 누워 있는 편안함조차 뒤척임이 전제된다. 그러나 사회성에 충실한 페르소나들은 뒤척일 수 없다. 범인(凡人)들은 월화수목금토일, 부모나 직장인의 역할극에 감금되었다. 부모들이 자식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한다지만 자식이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부모를 수행하는 일은 육아 스트레스로 집적된다. 하물며 사랑하지 않는 대상으로부터 요청되는 역할까지 거행해야 한다. 관계는 배려와 의례의 대상으로서 내게 수동성을 강제하므로 타자는 사회적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지옥이다. 지옥을 덕지덕지 묻힌 채 질질 끌려다는 시간, 일상인 것이다. 일상 속에서 역할대로 살아지는 페르소나는 관습과 숫자로 응집된 돌덩이로 귀결된다. ‘나’는 무겁고, 답답하고, 피곤하다.


산 것들의 존재 양식은 동사다. 살아 있는 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생명은 0으로 향하는 우주의 엔탈피에 맞서는 극소(極小)빅뱅이므로 능동성은 개별 우주의 법칙으로서 생물학적 본능이다. 그러나 개별성은 사회성과 균형을 유지해야 했고, 절대다수는 돈의 중력권에서 사회적 압력을 강하게 받으므로 메인 페르소나에 함유된 수동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행이라도 해야 했다. 메인 페르소나의 세계에 없던 동사를 행하는 일, 여행은 메인 페르소나의 자살이다. 메인 페르소나만 죽이면 얽히고설킨 소소한 지옥까지 섬멸할 수 있다. 여행으로 나와 세계의 싸움에서 내가 나일 수 있는 권력이 회복된다. 여행하는 동안 쓰지 않던 자아의 근육들이 가동된다. 가동 범위가 늘어난 자아는 비 갠 후 여름 바다 바람이 온 몸을 쓰는 것 같은 청량감으로 인지된다. 살아 있는 즐거움을 납치/감금한 범인(犯人)으로부터 출소한 ‘나’는 보다 입체적이되 가볍고, 투명하게 인지된다. 나는 억압되었던 바람(want)의 현시다.


여행은 남들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주로 주말에 학생들을 상대하는 나의 사회성이란 혼자와 관계하는 자기비만을 방치하는 일이었다. 내 일상에 외부라고 할 만한 강제는 없다. 학생과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결벽증스러운 자아관에 기반한 비정상적 관념으로서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지 억압이라 할 수준은 아니다. 게다가 글을 쓰는 일은 고도로 능동적 작업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할 수 있을 때 꼭 여행하라고 했지만, 귓등으로 들었다. 나는 누구보다 자유로운 동시에 자유롭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가든 혼자 페르소나는 교체될 수 없으므로 내가 어디에 가든 포카리스웨트 ost 같은 산뜻한 생기는 off 되어 있을 게 뻔했다. 무엇보다도 귀찮았다. 평일에 수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고, 써야 할 것, 읽어야 할 것들로 나름 바빴다. 아니, 강박이었다. 내 주인이 된 강박이 나를 착취했다.


그날 포항 영일대로 간 것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쳤다기보다는, 아니 맞다, 땡벌 열 마리만큼 지쳤다. 밉지만, 당신을 너무 너무 사랑해서 기다리다 지쳤다. 작가는 고도처럼 오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수업은 늘었다. 학생 수만큼 변수도 늘어 스트레스도 늘었다. 불규칙하고 부족한 수면 때문에 짜증도 늘었다. 작년에 기적처럼 뺐던 체중도 늘었다. 글만 늘지 않아 자괴감도 늘었다. 이곳에 존재하고 싶지 않았다.


내 모든 페르소나 off, 자살은 가장 확실한 여행이다. 물론,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지만 돌아오고 싶은 페르소나가 없다면 합리적 여행이다. 하루오는 드문드문 이 여행을 떠올리지만, 조금 덜 지겨운 ‘아들’과 ‘선생’이 막아선다.


졸피뎀 70알 남짓 모았다. 입면장애는 개선되어서 졸피뎀을 빼고 수면유지를 위해 루나팜만 복용해도 되었다. 그러나 약 타러 갈 때 대기 환자들이 많아서 의사는 만나지 않고 기존에 받던 처방전만 받아 오느라 졸피뎀이 모였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모아 왔지만, 내 체중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졸피뎀이 2,000알쯤 된다는 것을 알고는 맥빠졌고, 쓸데없이 친절한 약리학의 발전이 서운했다. 그러나 어차피 자살하기엔 나이도 많았다. 죽음에 가까워진 나이들의 죽음은 자연사에 가깝다. 자살도 아니고 자연사도 아닌 조금 이른 죽음은 멋대가리 없었다.


내 주인님은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 주인님은 이동 시간에 낭비되는 시간도 혐오했다. 그러나 그날은 부처님 오신 날 연휴와 독감으로 휴강한 학생이 역대 최다를 기록해 관념이 아닌 실제 스트레스를 받았고, 연이은 낙선으로 주인님마저 맛이 간 상태였다. 격렬하게 자포자기 하고 싶은 날, 죽지도 못할 거면서 자살 주변만 맴돌이 하는 것도 지겨운 날, 내가 있던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고 싶지 않은 날, 나 보기가 역겨운 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는 꽥꽥, 오리무중이 첩첩산중, 육첩방은 남의 나라, 패배자란 슬픈 천명을 알면서도 밑져야 물회라는 생각으로 시외버스에 올랐다. 동네 버스 정류장이 시외버스 기착지를 겸한 덕분이었다.


영일대 정류장에 내렸을 때, 건물 틈 사이로 바다가 보인 순간, 손예진과 트와이스가 엘리스의 토끼처럼 샤방샤방 뛰어갔다. 나나나나나나나나, 날 좋아한다고, 손예진과 트와이스가 있는 곳이라면 따라갈 만했다. [늙은 자취생의 식문화]를 쓰면서 내 식문화가 바뀌었듯이, 나이 마흔 넘도록 비행기 한번 안 타본 내가 또 한번 변곡점에 들어섰음을 예감했다.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발을 뗐다. 쓸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생겨남에 씩, 하루오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