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한 장의 가치
너는 늦은 퇴근길에 짠, 나타났다. 출근길에는 없었다. 출퇴근처럼 짠했다. 태어난 것은 우리가 모르는 이(異)세계에서 이 세계로 버려진 것일지도 몰랐다. 태어난 이유를 따져 보면 대답이 궁색했다. 내가 이색적 존재라는 믿음은 내색하지 않아도 구색을 갖춘 착각이라는 정도는 안다. 그저 사색에 인색함으로써 내 이름과 세계가 어색해지지 않을 따름이었다. 여름이었다. 너는 보통의 일상이 통통하게 살 오른 반복에게 던져진 돌이었다.
동족에 대한 도리였다. 내가 너의 다리가 되어주기로 했다. 달이 뜨지 못한 밤, 너를 주워들었다. 왜 하필 그곳에서, 생뚱맞았을 것이다. 나는 네게 딱 맞을 곳을 알았다. ‘나’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면, 세계를 상대로 이어온 눈치 잔치로 자치가 성치 않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쳐져야 할 것은 네가 아니라 네 자리였다. 나는 네가 있어야 할 곳을 직감했다. 내게 필요한 곳이기도 했다. 호우주의보로 비가 그치지 않던 밤, 주택가 이면도로 가운데에서 지그재그 모양으로 된 보도블록 하나를 주워들었다.
보도블록의 출처를 짐작할 수 없었다. 전방 20여 미터 앞 공원은 직사각형으로 된 보도블록이 깔려 있었다. 길옆 공터에 기념관 공사 중이었지만, 건물을 올리기는커녕 지반 다지는 중이라 아직 보도블록의 순서는 아니었다. 자재를 싣고 가던 트럭이 흘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우산을 쓰고 걸어도 허벅지가 다 젖는 날이 이어지는데 굳이. 너는 기능이 마비된 채로 멀뚱했다.
모든 존재는 엉뚱했다. 존재에 이유 따위는 없었다. 별안간 호명될 뿐이다.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다는 달달한 거짓말은 무능했다. 연봉으로 명명되는 성능들은 사랑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고비를 잇댈 뿐이다. 내가 나의 이유를 모르듯, 너도 너의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만에 하나 네가 원했다고 하더라도 이 길을 지나가는 운전자에게 성가시고 위험한 강렬함이 너의 마땅함은 아닐 것이다. 네가 그것을 고집한다면 나는 또 물을 수밖에 없다. 굳이.
존재는 자기주장으로 결의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승인으로 합의된다. 캐릭터는 타인을 설득해낸 성격의 경계다. ‘나’는 권능하지 못하므로 그 경계를 지키며 살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 나인 자’는 신의 정의일 뿐이다. 나의 정희는 12년 전에 결혼했고, 나는 줄곧 혼자다. 정희가 정의되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나는 기능했다, 고로 존재했다.
다만 정답이 아니었다. 나는 SNS로 추방된다. 그곳에서는 나다움의 권능을 부린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소통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의무감으로 교류하며 관심도 없는 서로의 일과에 습관적으로 ‘좋아요’를 눌러주며 공일오비(空日烏飛)의 난장일 뿐이다. 배 떨어지는 일은 드물다. 그저 부지런히 좋아요를 품앗이하며 타인의 승은(承恩)을 구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으로 자존감을 보존한다. ‘좋아요’의 공리만이 나를 나이게 만들어준다. 너를 제자리에 놓고 사진을 찍은 다음 다시 주워들었다.
너를 들고 50여 미터쯤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공원을 관통한 다음, 잔디로 관리되는 작은 언덕 중턱을 지나야 헸다. 사람들이 밟아가며 만들어낸 샛길이라서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흙길이었다. 비가 오면 언덕 상단에서부터 내려온 빗물이 언덕길 중간에 고였다. 찰방일 때는 그냥 걸었고, 운동화를 신은 날은 고인 물 사이를 건너뛰었고, 구두를 신은 날은 2분을 더 걸어 길을 우회했다. 그곳이 너의 자리였다.
내가 시작한 징검다리 사업은 아니다. 이 동네는 대학가와 농가의 점이지대라 노인 분들도 많다. 아마 나보다 뜀뛰는 폭이 더 짧고 나보다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 언젠가부터 주먹만 하고 평평한 돌이 박히기 시작했다. 도시화가 진행된 공간에 돌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 돌은 그리 크지 않았다. 발끝을 살짝 디디고 다음 돌을 디디면 아슬아슬하게 웅덩이를 지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는 근래 드물게 많이 와서 길이 질퍽해지며 돌이 흙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 버렸다. 온전한 웅덩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너는, 가장 믿을 만한 디딤돌이 되었다. 징검다리로 박힌 돌 중에서 너만큼 평평하고, 높은 돌은 없었다. 너는 독보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너를 보고서 안도했을 것이다. 50여 미터를 이동했을 때, 너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다.
이후 호프집 외벽으로 쓰였다가 부서져서 구석에 방치된 3센티 두께의 화강암 판석 조각들을 하나씩 옮겨 왔다. 오래되어 흙먼지가 더께로 쌓였지만, 어차피 퇴근길, 씻으면 그뿐이었다. 지도상에서 230미터쯤 되었고, 화강암은 보기보다 훨씬 무거워 중간에 한 번 쉬면서 드는 자세를 바꿔야 했다. 세 번을 들고 와 징검다리를 완성했다.
내가 한 일을 누가 몰라도 상관없었다. 내가 알았고, 매일 두 번, 내가 밟았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짠, 너희는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나타났다. 내가 직접 받을 수 없지만, 퐁당퐁당 밟히는 ‘좋아요’는 확실했다. 너는 그렇게 너였고, 네가 너여서 정희의 정의가 사라진 나도, 조금은 나였다.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길 위에 덩그런 보도블록을 떠올리며 그냥 웃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