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귀여움

라이언 구하기

by 하루오

한 아름하고도 넘치는 고릴라 인형이야 워낙 크다 보니 이사하며 버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언 쿠션은 대체 왜 버렸을까? 다소 시들해졌어도 그래도 라이언인데 말이다. 정품이든 가품이든 당근마켓에 팔면 과자 몇 봉지 값은 건질 텐데 원주인은 그마저도 번거로웠던 모양이었나 보다. 혹은 헤어진 연인에게서 받았던 선물이었거나. 라이언은 얼룩 한 점 없이 쓰레기 더미 위에 놓여 있었다. 살포시. 출근길이었다.


잠깐 망설였다가 들고 출근했다. 다 큰 사내가 라이언 쿠션을 들고 지하철을 타는 일은 흔하지 않아서 고릴라 때만큼 시선을 받았다. 알 바 아니었다. 이번에는 세탁할 때 비눗물 빠지는 게 수월하겠다는 정도만 생각했다.

빤 사실은 기억나지만 언제, 어떻게 빨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보통 30분~1시간 일찍, 아니면 아예 오전부터 출근한다. 이럴 경우 즉시 빨았을 거다. 내 머리도 밤에 빤다. 바깥에 있던 것을 실내에 들일 때는 정화 작업을 거쳐 ‘나’를 보존하는 것이 내향성 인간의 법칙이다. 만약 출근 시간 정시에 맞췄다면 베란다에 뒀다가 일과 후 빨았을 것이다. 아무튼 남향 베란다는 볕이 잘 들어 금방 말랐다.


“오, 쌤, 이런 것도 샀어요?”

“그럴 리가?”

“쟤(고릴라)처럼 나눔 받았어요?”

“오다 주웠다.”

“진짜요?”

“응.”

“왜요?”


나야말로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묻고 싶었다. 왜 주워오면 안 되나? 이 멀쩡한 걸. ‘얘랑 너 중에 뭐가 멀쩡하냐?’라고 되묻지는 않았다. 멀쩡함으로 말하자면, 너도, 나도 그다지 떳떳한 편은 아니다.


우리가 쓰레기가 아닌 이유는 단순하다.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언과 우리 중 생산 목적을 보다 잘 수행하는 쪽은 라이언일 것이다. 라이언은 쿠션으로 만들어져 쿠션의 기능을 무려, ‘귀엽게’ 수행한다. 내가 주워왔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면 아무 편견 없이 라이언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너는 뭘 수행하고 있는데? 네 목적이 있기는 하냐? 그저 부모님 그늘 아래서 먹고 싸는 거밖에 할 줄 모르잖아? 사교육비 양껏 삥 뜯어가면서, 때로는 대들어가면서. 라이언보다 귀엽지도 않은 주제에.’를 끝까지 속으로 생각만 했다고 여긴다면 나에 대한 오해다. 학생은 팩트로 두드려 패는 편이다. 맞은 남학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라이언을 껴안고 얼굴을 묻었다.


“떼 탄다.”

빼앗았다. 빨래는 귀찮다.


최근에 또 출근길, 미용실 주차장과 흡연장의 공유지쯤 되는 난간에 버려진 데드풀 인형을 발견했다. 텍도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취객이 인근 오락실에서 뽑았다가 버리고, 혹은 놓고 간 듯했다. 공부방과 어울리지 않아서 주워 오진 않았다. 단, 퇴근길에도 그 자리에 있으면 데려 오기로 했다. 멀쩡한데도 버려지는 것은 내 취준생 시절 같아서 지나치기 쉽지 않았다. 유기인형입양소, 꽤 괜찮았다.


퇴근길 데드풀은 없어져 있었다. 다행이었다.


‘유기인형입양소’는 ‘공부방’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가성비 추종자다. 무용성에 유용성을 부여하는 것만큼 높은 가성비도 없다. 내 아이들은 훗날 사회에서 높은 효율로 사용되길 바랐다. 단, 아이들이 라이언만큼 귀여워지려면 나는 카카오만큼 ( )해야 하겠지만, ( ) 안에 알맞은 말을 아직은 모르겠다.


역시, 귀여운 건 권력이다. 라이언은 인기가 좋다. 아이들은 품고, 나는 빼앗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빨 때가 되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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