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똥을 누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당근을 많이 먹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배추를 많이 먹는 것이다. 끼니만큼 먹어야 한다. 체질마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확실했다. 하루 한 번, 변기 안에 내 건강한 자존감이 똬리 튼다. 이 칙칙한 몸뚱이가 저런 빛깔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내 쓸모가 영롱해진다. 내가 유치원생이라면 엄마라도 불러 자랑했을지도 모른다.
주황과 노랑을 확보한 김에 빨주노초파남보를 수집해 무지개를 완성해 볼 생각은 뭉갰다. 이래 뵈도 마흔 살 넘었다. 인증 사진 공유도 못할뿐더러 불닭볶음면으로 만드는 빨강은 항문을 내준 굴욕적 거래라 내키지 않았다. 초파남보는 대안도 없었다. 죠스바 20개쯤 먹으면 남색이나 보라색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기각했다. 찬 것에 골 깨지는 건 나였고, 단 것에 혈당을 의식해야 하는 나이였다. 내 몸에서 나온 무지개가 건강하지 않으면 무의미했다.
5월 말, 건강해지기 좋을 때다. 양배추가 제철이기 때문이다. 생육의 자연사와 무관하게 양배추는 한 통에 3000원 초반대로 떨어지면 내게 제철이었다. 암 예방, 혈액 순환, 해독작용, 변비 개선의 사실관계는 큰 관심 없다. 장에 좋아서 장이 약한 내게 좋았다. 양배추를 먹을 때, 변기는 매번 황금빛을 품었다. 풍부한 식이섬유가 풍성한 방귀를 만들지만 냄새는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다음 뿌뿌뿌, 뿌잉, 내장이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환기된 기분이 개운했다. 이웃 방엔 좀 미안했다.
양배추는 내가 아는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이다. 별의 별 다이어트 식품들은 양배추 앞에서 부리는 양심 없는 객기였다. 호들갑 떨지 마시고, 밥이나 잘 먹길 바란다. 양배추 쌈이면 삼시세끼 배부르게 먹어도 1500칼로리가 안 되므로 한 달에 2kg 감량은 확정적이다. 식이섬유가 포만감을 주는 건 가스의 부피가 만든 착각은 아닐까 싶지만 허기를 지울 수 있다면 흰 방귀든 검은 방귀든 상관없다.
그렇다고 자주 먹을 순 없었다. 손질하기 귀찮았다. 귀찮음을 반복하는 것은 더 귀찮으므로, 양배추는 절반을 따로 보관하며 그때그때 칼질해 쓰기보다는 한 번에 해체했다. 겉잎은 꾹꾹 찜기에 눌러 담아 쪘고, 알맹이는 채 썰었다. 채 써는 게 귀찮아 1/4로 자른 양배추를 엎어서 찐 적 있었다. 겹겹이 쌓여 있는 잎 틈으로 뜨거운 증기가 파고들길 바랐다. 평소보다 오래 쪘지만 증기는 생각보다 무능했다. 양배추 겉이 눅진눅진해져도 속은 뜨겁게 아삭아삭했다. 그냥 정석대로 찌고 채 썰었다.
채 써는 데는 심리적 장벽이 있다. 15년 된 칼날이 무디다 보니 양배추는 힘으로 조각내야 했다. 양배추를 반으로 쪼갤 때, 줄기를 도려낼 때, 내 손목은 우악스러웠다. 칼질도 못해 내가 채 썬 양배추 폭은 0.5cm가 넘었다. 채 썬다고 썰어도 먹기 불편하니 채 썰 맛이 나지 않았다. 칼질도 늘지 않았다. 새 칼과 채칼을 사면 해결될 문제지만, 어, 그러게 말이다. 아무튼 채 썬 것들은 김치 통에 넣어 보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칼질이 귀찮아 한 번은 손에 들고 과일처럼 베어 먹었다. 배도 여차하면 깎지 않고 껍질째 먹기도 했으니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입, 두 입, 세 입, 이건 아니었다. 양배추는 베어 먹어지기보다는 뜯어 먹어졌다. 문명의 최소 방지턱 같은 것에 걸린 기분이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그 비슷한 이물감 때문에 그 후로는 꼬박꼬박 썰었다.
어차피 찌면서 잔류 농약들은 씻길 것이므로 양배추를 따로 세척하지는 않았다. 알맹이는 속에 숨겨져 있었으니 깨끗할 거라 여겨 세척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려고 양배추를 검색하고 보니 ‘먼저 겉잎을 제거한 후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1차로 세척하고, 식초를 탄 물에 1~2분 정도 담근 다음 흐르는 물에 2차 세척하면 잔류 농약을 제거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아차 싶었다. 양배추 먹는 횟수가 줄어들 듯했다.
양배추 한 통은 1인 가구에게 벅차다. 양배추를 사는 순간 타임어택이 시작된다. 음식을 남기거나 버리는 것을 싫어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죽음이 헛되어서는 안 되므로 생명이었던 것을 다 먹어치우는 것이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믿었다. ‘다듬어 놓은 양배추를 상하기 전에 다 먹어야 한다.’는 과제로 내몰린다. 삼시세끼 양배추는 다이어트할 때나 유효할 뿐, 일상적 상황에서는 물린다. 그래서 양배추를 살 때는 질려도 꺾이지 않을 식욕을 각오한다.
우선 쌈밥으로 먹었다. 찌고 나면 빨리 쉬기 때문에 두세 끼는 무조건이다. 밥 두세 숟갈 줄이는 대신 양배추 섭취량을 늘려 음식물 부피를 대체했다. 손바닥보다 넓은 양배추 잎에 밥 반 숟갈에 양념간장이나 쌈장을 찍어 먹었다. 참치나 구운 햄을 더하면 영양학의 조상님도 후손의 균형 감각을 기특히 여길 법했다. 미나리, 다시마, 풋고추 등 맛있고 건강한 짝들도 많으니 맛은 자기 하기 나름이다.
채 썬 양배추는 세 가지 방식으로 소비했다. 첫째, 간식이나 야식으로 소비했다. 코우슬로 드레싱을 뿌려 비벼 먹었다. 샐러드라 부르기는 민망했다. 오직 양. 대접을 고봉밥처럼 채운 양배추 무더기는 잘 비벼지지도 않아 드레싱에 무쳐 먹는다기보다는 묻혀 먹었다. 이때 시리얼을 조금 더하면 탄수화물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챙길 수 있었다.
둘째, 라면에 김치 대신 먹었다. 어느 순간 라면과 김치 조합은 나트륨에 나트륨을 더하는 무모한 식문화로 읽혔다. 양배추가 없을 때는 다른 밑반찬을 먹지 않았고, 양배추가 있을 때는 접시에 한 뭉텅이 덜어서 손으로 주워 먹었다. 라면 끓일 때 양배추를 넣는 것이 먹기 편하겠지만, 마시지도 않을 국물에 양분을 빼앗기고 싶진 않았다. 면은 부드럽되 텁텁했고, 양배추는 아삭하되 깔끔해서 극단이 순환되는 궁합이 좋았다.
셋째, 가뭄에 콩 나듯,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나도 요리 비슷한 걸 했다. 대패 삼겹살을 굽다가 돼지기름이 나온다 싶으면 양배추를 넣고 볶았다. 간장을 캐러멜라이징해서 간을 맞췄다. 돼지기름을 머금고 간이 밴 양배추는 엄마를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았다. 이건 좀 먹을 만했지만 간장 한통 다 쓰는 데 13년 안팎이 걸린 만큼, 또 간장을 사 봐야 언제 다 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유예되고 있다. 대신 간고등어 구울 때 사이드로 구웠다. 물론, 많이. 빨리 소비해야 하므로 밥 대신 먹어도 괜찮을 만큼 많이.
양배추를 먹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징조다. 양배추 한 통이 소화되는 시간 동안 칼로리 득실이 다이어트에 유리하게 매겨졌다. 외식이나 치킨을 생각하다가도 ‘빨리 없애야 한다’는 강박이 식욕을 무마했다. 두 통을 연이어 먹으면 외식과 치킨을 물리칠 수 있는 약한 의지가 태동한다. 올해 4kg이 불었으니 양배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두 통은 치통만큼 쉽지 않다. 좋은 음식 먹는 것과 좋은 똥 사는 것의 답을 알기에 두둥,
간장을 샀다. 채칼도. 다이어트 시즌2(feat.당근)가 시작되었다, ~는 뻥이다. 초고에 이렇게 써넣으면 실행할지 알았는데 귀찮다. 필라테스 강사분이 배를 누를 때 방귀 참는 것도 곤혹스럽다. 양배추, 당분간 안녕이다. 내 똥 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