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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오 Oct 24. 2023

벗꽃 Anding

[순이 삼촌]을 읽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그 섬의 이름은 제주도. 뱃삯은 4.3 사건이다. 최근에 알았다. 무임승선한 사람들은 제주도를 예쁘다고 말한다. 혹은 귤의 세상이다. 예쁘지 않고 귤이 아닌 제주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중간한 공터에서 잊혔다. 공터에는 4.3 사건의 그림자들이 우글댔다. 불러주지 않아 몸짓이었다. 없는 척 눙쳐도 되는가?


기억한 적도 없었다, 나는. 애초에 4.3 사건을 몰랐다. 내가 배운 교과서에 『순이 삼촌』은 없었다. 4.3 사건과 관련된 것이라면 나는 들은 것은 흘리고, 눈 앞의 기사는 클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대의 보편적인 비참함을 막연하게 감지했지만, 꺼내 읽기는 칙칙했다. 『순이 삼촌』을 좀 더 일찍 읽었어야 했다.


6. 25 때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내가 겪지 않았다는 안도감은 구체적일지언정, 학살은 안타까운 추상일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주도에는 역사가 없었다. 몽골 항쟁의 강화도, 아리랑의 진도, 독도를 품은 울릉도가 주는 무게에 비하면 제주도는 가벼웠다. 보라카이에 귤이 난다면, 제주도는 다를 바 없었다. 어차피 나는 두 섬 모두 가본 적 없으므로 보라카이와 맞교환 한다고 해도 손익을 계산할 뿐, 감정적 동요는 없었다. 『순이 삼촌』은 제주도에서 보라카이를 지웠다. 제주도의 학살은 육지보다 비참했다. 4. 3 사건을 읽었을 때 제주도는 서글프고 아픈, ‘우리’였다.


지리산 빨치산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산줄기를 타고 먼 마을로 숨어들 수 있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끼고 있어 식량 보급도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다. 그러나 제주도 산사람들은 도망칠 데가 없었다. 한라산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섬이었다. 격천벽야를 버티기 더 힘들었을 것이다. 산사람과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각자 피가 말랐다. 이들의 노심초사가 구분되지 않을 때, 토벌대는 모두 죽였다. 도륙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평등해서 참혹했다.


당대 한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제주도민도 이념에 관심 없었다. 그저 먹고 살고자 했다. 이념은 「소드방놀이」의 지배계층처럼 자기 곳간을 채우기 위한 ‘오직 그들만의 독점물(아내와 개오동)’이었다. 내 곳간을 잘 채우는 이념이 정의였다. 서로 다른 정의의 싸움은 자연재해 같아서 ‘해룡’이라 칭했을 것이다.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처럼 제주도민은 해룡의 군대 앞에서 무력했다. 특히 섬과 육지가 가르는 이질성이 토벌군의 양심을 잉끄렸다. 육지에 온 토벌군은 섬사람들에게 마음껏 악독했다.


이질성이 배태한 폭력성은 언어에 투영되어 생생했다. 「순이 삼촌」의 고모부는 평안도 출신의 토벌군이었다. 고모와 결혼해 제주도에 눌러 살며 어느새 제주도 사투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영혼의 내남없는 식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4.3 사건 이야기를 하다가는 평안도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그때 좌중은 침묵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섞여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통 불가능한 사안이더라도 침묵이 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순이 삼촌은 소통을 시도하려 했지만 서울내기 아내와 아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해룡 이야기」의 중호는 말했다. 


오죽 서울말이 답답하면 저렇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사투리로 푸닥거리를 할까? 녀석들이 부럽다. 옆자리 손님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건만 전혀 개의치 않고 방약무인으로 고래고래 사투리를 내지르는 걸 보니 속이 다 후련하다. p.134-135


그들이 하지 못한 말, 중호도 사실은 하고 싶은 말, 말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아 침묵할 수밖에 없는 말, 4.3 사건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4.3 사건의 서사 기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PTSD의 기록이었다. 수라장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수라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순이 삼촌은 학살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와 자살했고, 「초혼굿」의 진호와 익수도 자살했다. 이들에게 제주도와 제주도 아닌 곳은 구분되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그날의 그곳이었다. 생존한 삶도 온전치 않았다. 「아내와 개오동」의 개처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부에 틀어박혔다. 진실을 말하려다 실직한 석규도 마찬가지였다. 4.3 사건의 주범들이 권력을 유지한 상황에서 진실은 묻혔다. 하지 못한 일들은 자의식을 갉아먹어 마음도 발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PTSD는 극복가능성은 없어보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룡 이야기」의 중호처럼 제주를 잊으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현실에 타협하지 못하면, 「동냥꾼」의 양일이나 「겨울 앞에서」의 나처럼 비루하게 현실에 좇길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섬이었다. 자신에게 온전히 담을 수 없고, 타인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는 무엇. 이러한 마음의 좌표가 「아버지」에서 형상화되었다. 화자는 연못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완실의 팔매질 때문이었다. 제주도민의 마음 풍경인 듯했다.


원 안에 움짝달싹 못하게 갇혀버렸다. 물 가운데를 벗어날 수 없는 나는 옛날 죄수처럼 원형의 커다란 칼을 써버린 셈이다. 몸은 굳게 닫혀 썩은 물과 싸우고 있다. 구멍이란 구멍 수없이 열려 있는 땀구멍 같은 것들이 입을 오므리고 굳게 닫혔다. 그렇지만 얼마나 견텨낼 수 있을 건가? 물에 뜬 나무토막처럼 점점 썩어가리라. 닫힌 구멍들이 물에 영합하여 열리게 될 때가 반드시 오고 마는 거다. 문덩문덩 썩어가리라. 벌써 연못들은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데. 이제 비밀은 푹푹 썩은 냄새가 났다. p.297-8


제주도는 「꽃샘바람」의 ‘너’ 같았다. 네가 준식이 남긴 아이를 지우듯 제주도는 역사가 남기고 간 4.3 사건을 지웠다. 아니, 지움을 당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오래 묵었다. 묵힐 이유가 없었다는 사실이 역사의 체증을 증명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었다. 이 그림자를 볼 수 있을 때, 제주도가 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낙태의 비밀을 썩히지 않아도 되었다. 역사의 줄기가 바꿨다. 70여 년 만에 국방부와 경찰이 애도를 표명했다. 『순이 삼촌』에서 내내 불통이던 제주말과 서울말이 통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어지며 비로소 제주도가 열린 것이다. 이 행보가 얼마나 놀라운 역사인지 『순이 삼촌』 덕분에 체감할 수 있었다. 제주도도 독도와 같은 체온의 우리땅이 되었다.


어쩌면 시간이 ‘테라마이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3 사건을 직접 겪은 세대들의 PTSD도 저물어 가 4.3 사건을 역사로 이해하는 세대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조금 편하게, 그러나 진중하게 제주도를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 섬 제주도는 아름다울 자격이 있다. 왕벚나무 원산지의 섬에서 ‘봄바람 휘날리며 흔들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4월 3일에 걷는 건 어떨까. (끝)



한때, 이런 게 독후감인지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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