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기근 시절, 감자는 구원이었다. 오직 감자만이 기근의 난세를 평정했다. 천하제일 기근지존, 감자의 길은 곧 생명의 길이었다. 그러다 풍요의 시대, 감자는 튀겨짐으로써 혈교(血脈)처럼 은밀하게 침투해 와 콜레스테롤로 생명을 갉아 먹었다. 그러나 비만의 난세, 감자는 구황(救荒)도 아니고, 구황(救皇)도 아니고 지존이었다. 극음(極陰)의 기근과 극양(極陽)의 비만이 수습되는 형태는 태극의 묘리를 닮아 무당(無黨)도 한 수 접어야 한다. 이제는 내 몸의 무당(無糖), 다이어트계의 천하무적 지존무상, 감자다.
1황. 저 포드맵(Fermentable Oligosaccharides, Disaccharides, Monosaccharides, and Polyols) :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위하여
처음에는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풍부한 식이섬유에 달달한 맛까지 갖춰 초식(草食)의 초식(招式)이 화려한 사파의 거두였다. 그러나 소화기가 약한 나는 쉽게 가스가 찼다. 공공장소나 수업 시간에 방귀를 참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배출하려 해도 단전과 명치 사이에서 저들끼리 부글댈 때는 난감했다. 길을 걸으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소리 없이 내기(內氣)를 붕붕 내지를 때, 완연한 아저씨가 된 기분도 싫었다. 혼자 있는 내 방을 가득 채운 일합필살 방귀는 지나치게 늠름해서 내 아저씨됨을 꾸짓는 것 같았다. 감자로 바꿨다. 감자를 베어 물면, 확실히 ‘식량’이었다. 맛 없는 부피를 내 몸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배가 편안했다.
2황. 저칼로리
좋게 말하면 중립적이고, 중립적으로 말하면 맛 자체가 없다. 덕분에 다양한 요리에서 맛이 밸 몸체로 활용되었다. 찜닭, 수제비, 짜글이를 비롯한 조림 요리에서 감자는 국물을 씹을 수 있는 고체였다. 하지만 나는 요리를 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100g당 86칼로리는 고구마보다 57칼로리 더 낮은 수치였다. 이 정도 칼로리 격차라면 나는 진작에 감자를 따랐어야 했다. 내가 아는 한 단위 칼로리당 포만감의 지존, 감자야말로 다이어트의 정파다.
3황. 편의성
반쯤 세척해서 나온 감자를 그대로 쪘다. 껍질은 먹기 전에 까는 것보다 먹을 때 까는 게 더 수월했다. 껍질을 깐 채 찌면 양분이 빠져 나가는 건 내 바람일 뿐, 사실은 껍질 까기 귀찮았다. 어차피 찜통 안에서 스팀 세척될 것이고 스팀 세척된 흙이라면 체내에 흡수되어도 뭐 어떠랴 싶었다. 갓 찐 감자는 뜨거워서 먹기 불편하므로 자기 전에 쪄 두었다. 잠도 덜 깬 아침, 감자와 토마토, 감자와 커피나 우유는 잘 어울렸다. 가끔은 도시락 대신 비닐 봉지에 싸들고 가서 수업과 수업 사이의 점심, 저녁으로 먹기도 했다. 소금을 찍어 먹진 않았다. 소금을 꺼내기 귀찮았다. 내가 감자를 구워 먹거나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리 없었다. 감자는 ‘찌다’를 내포한 ‘살 찌다’의 안티테제였다.
4황. 경제성
2023년 기준 연평균 고구마(밤) 상품 1kg은 5,526원이고, 감자(수미 노지)는 3,730원이다. 성인 한 끼 음식 섭취량 500g으로 환산하면 고구마는 2,763원(715칼로리), 감자는 1,865원(430칼로리)이다. 감자는 독보적으로 저렴하다. 현실적으로 한 끼에 고구마나 감자 500g을 먹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마트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박스 단위로 살 때 큰 금액 때문에 망설여지더라도 사는 게 이득이다. 한 끼 2,000원 안팎이다. 특히 감자는 재배 시 환경 영향도 덜 받아 평균 가격도 저렴해 고구마에 비해 가격이 균질하다. 식습관을 고정하기 위해 이보다 안정적인 채소는 없다.
5황. 혈압 조절 보조
영양 과잉의 부작용이 내 몸뚱이다. 아니, 오해다. 내 몸뚱이는 영양 과잉이 아니라 칼로리 과잉의 주작용이다. 다이어트는 칼로리의 산수이지 영양의 산수가 아니어서 칼로리를 줄일 때, 영양이 고려되지 못했다. 어렸을 때야 영양을 광합성이라도 하는 듯했지만, 나이 들고 보니 뭔지 모를 것들이 부족함을 몸의 부실함으로 체감한다. 영양제 복용 문화에 동의하지 않으므로 나는 결국 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해야 했다. 예일대학 그린핀예방연구소에서 식품이 가진 건강 가치를 100으로 했을 때, 감자는 93(현미 82)이었다고 한다. 철분, 칼륨, 마그네슘, 비타민 B1, B2, C, 나이아신이 풍부하다. 무슨 작용을 하는지 몰라도 많이 써 져 있으니 좋아 보인다. 특히 칼륨은 혈압을 떨어뜨린다고 하니 혈압약 달고 사는 내게 좋다. 단위 그램 당 고구마보다 25%쯤 더 들어 있으니 감자는 내게 확실한 당위였다.
6황. 노화 파이터
노화란 비타민C 친화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쉽게 피로해지고, 자주 아프고, 한 번 아프면 쉽게 낫지 않는 현상은 비타민C의 영역이었다. 삶은 감자 100g에 비타민C 10mg이 들어 있다. 1일 권장량의 약 10%다. 필요 이상의 비타민C는 체외로 배출되므로 많이 섭취할 필요없다. 셀레늄도 1일 권장량의 10%가 들어 있고, 폴레페놀도 풍부하다. 감자를 주기적으로 먹은 후 내 몸이 극적으로 달라진 것은 모르겠다. 그러나 스킨로션에 안티에이징 문구를 기웃거리기 시작하므로 플라시보 효과라도 맛있게 먹는다.
7황. 단백질
100g당 단백질이 많은 채소로는 브로콜리(4.3g), 시금치(3g), 감자(2.5g)가 있다. 고구마가 1.4g인 것을 감안하면 감자의 단백질 함량은 상대적으로 높다. 평범한 인간이 브로콜리나 시금치를 100g씩 먹을 일은 드물테니, 현실적으로 감자가 채소로 흡수할 수 있는 다량의 단백질이다. 하루 적정 단백질 섭취량은 0.8g/체중이니 감자 두 알이면 절반 이상은 해결한 셈이다. 칼로리를 줄이더라도 근손실은 없다. 중년으로 넘어간 이상 머리털만큼 소중한 근육이다. (콩은 채소가 아니라 사실상 고기니까 제외. 100g당 16-20g)
8황. GI지수의 역설
혈당은 중년을 노리는 살수다. 은밀히 침투하되 목숨을 바로 끊지 않는다. 합병증으로 남은 생을 옭아 매므로 꼼꼼하게 잔인하다. 합병증을 남기지 않더라도 환자는 끼니 때마다 자신의 병약함을 상기해야 한다. 생은 ‘단 맛이 사라진 질병’으로 재규정된다. 그러나 감자의 GI지수는 85로 높은 편이다. 고구마가 50이니 혈당 조절해야 하는 사람들은 감자보다 고구마를 먹는 게 낫다. 다행히 나는 아직 혈당으로부터 자유롭다. 내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포만감이다. 감자는 GI지수가 높아서 빠르게 포만감을 주면서도 맛이 없어 적정량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구마나 바나나(51-60)는 GI지수가 낮고, 맛있어서 한 자리에서 많이 먹었다. 나는 일단 끼니 시간에 뭔가를 먹으면 다음 끼니까지 기다리는 편이므로 일단 끼니를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달달해서 주섬주섬 처묵처묵 되는 고구마나 바나나보다 세 개는 먹고 싶지 않은 감자가 내 습관에 잘 맞았다.
9황. 우울을 무찌르는 내공
맛있는 일 하나가 제거된 다이어터와 우울의 인과성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상관성은 추측 가능하다. 본격적 우울은 아니더라도 기분 좋을 리 없다. 우울은 현대인의 필수 그늘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노력한 사람들은 좌절이 합성한 우울의 자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럭키비키’는 20살에 수십 억 자산을 쌓고 앞으로 그보다 나은 미래가 그려지는 자의 특권이다. 절대다수는 ‘k-’가 아니라 스마트폰 안에서나 ‘ㅋㅋ’로 존재한다. 우울에 필요한 것은 ‘소마’ 같은 비타민 B6다. 신경전달 물질 합성에 관여한다. 감자에 포함된 비타민 B6는 100g 당 0.3mg이다. 성인 일일 권장 섭취량의 약 20%에 해당한다. 감자보다 많은 채소는 마늘 1.2mg이다. 사람될 곰이 아닌 한 마늘을 100g씩 먹을 일은 없으므로 현실적인 채소는 역시 감자다. 감자로 감정의 기근을 버틴다.
감마신군(-魔神君) 광명신교(光明神教). 제8 흑풍회 하루오, 주군의 명 받듭니다.